[톱스타 성공 키워드]방송인 박·미·선

세상사 초월한 아줌마의 미덕

박미선은 세상을 발치 아래로 보며 관조하는 듯한 은근함과 인간적인 매력으로 십수 년째 무난한 사랑을 받고 있다. <경향신문>

사람들은 TV 화면 속에 나타난 ‘우악스럽고 억척스러운’ 엄마 이미지에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한 부류는 그 우악스러움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다른 한 부류는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만 해도 지치니 굳이 애써 찾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군말 없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다.

무심코 툭툭 내뱉는 짧은 말에 현실이 응어리져 압축된 내공이 있으면서 한편으로 부드러운 아줌마다. 목에 핏대 세우는 ‘하드고어’, 이따금 도인의 경지로, 세상을 발치 아래로 보며 관조하는 듯한 은근함이 진정한 아줌마의 포스가 아닐까. 선우용녀, 김자옥, 박미선, 김지선 등이 가지고 있는 기묘한 매력이다.

그 중 개그우먼 박미선이 딱 이런 부류의 대표주자다. 지나친 열성팬도 없고, 그렇다고 안티도 없이 까다로운 대중에 십수년째 무난한 사랑을 받고 있다(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까다로운 네티즌에게 언제나 트집을 전혀 잡히지 않고 롱런하는 방송인이다.

시부모님 깎듯이 모신 지 10년
“박미선? 인간적이잖아.”
방송인과 주변인을 대상으로 50여 명에게 박미선에 대해 설문조사를 직접 해봤다.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질리지 않잖아” “너무 나서지도, 너무 숨어 있지도 않잖아” “편하잖아” “남을 비하하는 유머는 잘 안 하잖아” “너무 쎄서, 밉상인 아줌마들하고는 뭔가 달라서 좋아” 그리고 이 모든 답변을 압도한 공통된 답변이 있는데 “왠지 인간적일 것 같아”였다. 빙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향기가 있는데, 직접 겪지 않고도 어쩜 그렇게 사람들이 정확하게 읽어낼까 신기할 따름이다. 프로그램을 함께 했을 때 박미선에게 느꼈던 감정은 ‘인간적’이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 섭외 전화에 이골이 난다. 전화기 너머로 온갖 변명과 냉대와 홀대를 받다 보니 섭외 전화에 어떻게 대하느냐가 상대방의 인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경험상 ‘사람 좋은’ 연예인은 전화 한 통에도 심성이 묻어나는 법이다. 박미선이 그랬다.
작가: 미선 언니~ 이번만큼은 꼭 나와 주세요~.
박미선: 그렇지, 내가 나가야지. 내가 나가면 얼마나 좋겠어. 그런데 내가 이번엔 진짜~ 못 나가.
작가: 그래도 이번 한 번만 스케줄 좀 어떻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박미선: 어유, 미안해 작가언니~. 정말 미안해. 다음에 또 봐~.
“아니 뭘 이정도로 고마워 하냐”고 반문하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스타들의 냉정함과 팍팍함이 얼마나 서러운지, 밤새도록 붙잡고 설명해줄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거절에도 매너가 있지만, 방송계에서 어디 상식이 통할 수 있나. 이렇게 적당히 상대방을 배려하며 거절할 줄 아는 박미선은 방송 안팎에서 인간적인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인간적이면 느슨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박미선과 약 2년 가까이 프로그램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그녀는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공중파 프로그램만 다섯 개. 교육방송부터 토크쇼 안방마님, 버라이어티 진행에 각종 특집까지. 한동안은 시트콤과 드라마를 오가더니 잊을 만하면 개그프로에 나와 “저, 개그우먼이에요”를 인식시켜주는 여자.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백도 슬럼프도 없이 그녀는 바쁘게 걸어왔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 중 누구 하나 그녀의 활동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방송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중 ‘똑 소리 나는 가정주부’라는 칭찬이 많았다. 시부모님을 깎듯이 모신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유리·상엽 두 아이의 엄마 역할에, (되는 일이 없는) 남편 이봉원을 내조하는 것까지 척척 해낸다. 그런데도 그녀는 불평불만이 없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아무리 남편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해도 ‘절대로’ ‘절대로’ 남편을 버릴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함께하는 진행 파트너건, 가족이건, 동료건,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보살피며 살 여자라고.

박미선은 아줌마들의 통쾌한 수다로 사랑받고 있는 MBC의 ‘세상을 바꾸는 퀴즈’의 MC를 맡고 있다. 그녀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출연자의 ‘위험한’ 행동과 발언을 현명하게 조율하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녹화가 있는 날이면, 늘 새벽 6시에 가장 먼저 방송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일산에서 여의도 오는 길이 출근시간에 막힌다”며 항상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더구나 그 이른 새벽에도 할 일을 다 하고 나오는 워킹 맘이었다. 개그보다 진행에 더 타고난 소질이 있지 싶을 정도로 매끄러운 진행과, 상대 MC의 실수까지 유머로 넘기는 순발력, 그리고 화면에서 보이는 그대로 ‘거리감이 없는’ 스타였다.

제 자신은 웃음을 주는 개그맨인데도 왜 그리 웃음이 많은지. 그녀는 후배 개그맨들과 인사만 주고받아도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주변의 다른 연예인과 비교해볼 때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참 잘 살아가는 편이다. 그녀 덕분에 다른 연예인을 섭외할 때 “미선 언니 때문에라도 한 번 나갈게요”라고 하는 아군이 많았다. 언젠가 캐나다에 있는 이성미의 생일 때 메시지를 보낸다며 방송국 동료들에게 영상을 따기도 했고, 후배를 후원하기 위해 성금을 모으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웃는 얼굴에서 피곤함 엿보이기도
SBS 가정솔루션 프로그램 ‘잘살아봅시다’를 할 때였다. 당시 한 집 안을 죄다 샅샅이 훑는 코너가 있었다. 그때 섭외한 한 집에서 털실이 많이 나왔는데, 한때 털실 공장을 했기 때문이다. 박미선은 양해를 구한 후에 털실을 약간 가져갔다. 자기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뜨개질을 좋아하는데 그분께 드리고 싶다며 형형색색 털실을 챙긴 것.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오래도록 방송에서 사랑받는 박미선의 ‘키워드’는 인간성 좋고, 거리감 없는, 편안함이 주는 힘이 아닐까. 하지만 웃는 얼굴에서 항상 피곤이 엿보이고 왠지 모르게 안쓰럽고 애처로운 마음도 든다. 또 톱스타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어느 순간 거울을 보는 것이 두려워지고, 뭔가 알게 되는 나이인 불혹의 여스타는 대체로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데 왠지 자신감이 없고, 줄곧 변화했지만 그것이 일관된 성장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고, 원인 모를 삶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톱스타 성공 키워드

하지만 불혹을 넘긴 박미선은 불안에서 비껴난 내공이랄까. 세상사에 초월한 아줌마의 담담한 여유가 있다.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기대고 싶을 만큼 매력이 있긴 있나 보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