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방송인 박·경·림

친절을 넘어 ‘감동’을 선사하다

박경림은 절제되고 센스 있는 진행자로 성장했다. 대신 몸을 던져 망가졌던 그녀만의 화끈한 유머는 사라졌다. <경향신문>

연예인 토크쇼를 하다 보면, 해당 연예인의 평소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알게 된다. 화면의 모습이 실제인지 포장된 이미지인지, 세상에 대해 인색한지 너그러운지는 토크쇼 한 편만 해봐도 어렴풋이 예측 가능하다.

화면에선 분명 친한 사람처럼 보인 사람에게 그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단번에 거절당하는 일도 많다. 실제로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방송 인터뷰를 한달음에 해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박경림과 관련한 인터뷰라면 어느 누구 한 명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 바쁘다고 단칼에 거절해놓고도 “아, 박경림씨요? 그럼 해야죠”라며 스케줄을 빼서 해주는 이도 많다. 결혼식에 1000여 명이 넘는 하객이 오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 편’으로 만드는 힘.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 비교되면서까지 널리 알려진 박경림만의 ‘인맥 네트워킹’에는 이 시대 대인관계의 매뉴얼이라고 해도 될 만큼 탄탄한 기본기가 있다.

아니, 나한테 이렇게까지?
상식적인 친절에서만 그치면 누가 상대를 기억할까. 그렇다면 박경림의 친절은 상식을 넘어선다는 얘기? 그렇다. 박경림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넘어서 ‘감동’을 선사한다. 그 감동이 불편하든 편하든 간에 받는 입장에선 황송할 따름이다. 히딩크에게 비행기 안에서 심심할 때 눈요깃거리로 하라며 PMP 안에 축구 영상을 담아 선물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 방송 진행에 차질이 생긴 아나운서 김성주의 방송을 듣다가, 누가 전화 한 통 하지도 않았는데 차를 돌려 대신 진행하러 갔다는 감동 스토리도 한동안 화제가 됐다.

최근 동료 작가가 지나가는 말로 대기실에 있는 박경림에게 “경림씨, 귀걸이가 예뻐요”라고 했더니 “아, 이거 언니 드릴까요?”라며 곧바로 코디에게 귀걸이 주문을 하는 민첩한 센스를 발휘했단다. 과연 박경림답다.

몇 년 전, 그녀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 식구를 모아놓고 토크쇼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요란한 메인작가 밑에서 일하던 조용한 서브작가였다. 박경림에게 살가움이나 포근함도 없는 스태프 정도의 인상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한 차례의 인터뷰를 하고, 그렇게 한 번 방송했을 뿐인데 몇 달이 지나 길에서 마주친 그녀.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고 ‘설마 알아볼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하고 알아보는 모습을 보며 내심 놀란 적이 있다. 게다가 기억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이후로도 남다른 눈썰미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한 후배 작가는 5년 전에 잠깐 일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한 번 일한 적 있죠?”라며 웃으며 말을 거는 박경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 번 보면 잊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건 먼저 인사를 거는 사람. 마음 상하게 해도 면전에서 방긋 웃어보이는 사람. 문자 한 통에도 정성과 마음을 다해 답신을 보내는 사람이 박경림이다.
당시 필자가 느낀 박경림의 인상은 ‘하늘이 내린 복덩이’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였다.

재치는 어디 가고, 예의만 남아 있나.
그런데 이쯤에서 의문하나. 외로워도 슬퍼도 캔디는 왜 울지 않을까. 때로는 아픔을 좀 내려놓고 울면 안 되나? 가끔 우는 모습도 솔직하고 예쁜데, 굳이 이 악물고 “나 괜찮아요” 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함이 있다. 가끔 박경림에게 그런 오기를 발견한다. 프로페셔널한 자기 관리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천사 같은 모습으로만 대할 수야 없지 않은가. 한 번쯤, 언제나 웃는 그녀를 보면 “경림씨 괜찮아요, 화내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에겐 폭풍처럼 거센 일도 비껴가지만, 그 속을 알 수 없는 불안함도 있다는 사실. 겉으로는 심드렁해도 속은 광란일 때도 있는 게 사람이련만. 4~5살 어린 매니저에게도 깍듯하게 존대를 쓰고, 그 누구도 극존칭하는 사람. 그녀를 아는 방송인이 한결같이 말하는 한계는 ‘적당히 친하면서 사람 좋으나 질펀하게 속 깊이 친해지기는 힘든 유형’이 바로 박경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확실히 그녀는 진행자로서 성장했다. 성숙한 진행자를 위한 박경림의 노력은 나날이 진화했다. 하루 전날 급히 섭외해도 새벽에 전화기 너머로 2~3시간 회의를 하는 타고난 노력까지 지니고 있다.

톱스타 성공 키워드

하지만 차분하고 정리된 박경림에게 언제부턴가 화끈한 유머가 사라졌다. 몸을 던지며 망가지는 대신 품위가 생겼다. 하지만 절제된 진행자, 센스가 있는 진행자의 모습에 스스로 흡족할지 모르겠지만 약간은 되바라지고, 겁 없던 시절의 박경림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성숙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라면 아름다운 일임에 분명하지만.
사람들과 관계에서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상대에게 모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 내가 한 것처럼 상대가 나에게 행동했을 때 감당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박경림의 대인관계 태도는 교과서적이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귀 쫑긋 세우며 그녀를 눈여겨봤던 이유는 거침없이 정곡을 찌르는 화끈한 유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 참, 이상한 일이다. 세상 사람 모두 자기편으로 만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갈수록 부드럽고 너그러워지는 박경림을 두고, 왜 나는 그녀의 거친 과거를 향수할까. 왜 나는 지난 시절의 박경림이 그리운 걸까.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