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소리만 질러도 웃긴 남자, 박명수

성실과 노력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박명수는 혼자 있을 때 어느 누구보다 노력하는 개그맨이다.

방송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만이 지닌 어떤 노련함이나 통찰력은 찾아볼 수 없지만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진심이 보이는 사람. 개그맨 박명수를 볼 때마다 ‘툭’ 하고 던지는 짜증 끝에 묻어나는 그의 속내를 보았다. 의외로 수줍음 많고 쭈뼛쭈뼛한 심정을 호통으로 위장하는 남자, 듣는 이는 나 몰라라 밤낮없이 샤우팅을 하는데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을 느끼기는커녕 웃음짓게 하는 그다. 방송에서 바보 소리를 좀 듣더라도, 단 한 사람의 인생에 많은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 웃을 일 없는 세상사, 우리는 또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공짜 위로를 받고 있나. MC몽, 노홍철, 지상렬, 박명수를 이어온 고만고만한 바보 콘셉트를 지닌 이들을 실제로 만나보니, 그들은 또 얼마나 스마트하고 시대의 고민을 안고 있었던가. 자고로, 좋은 코미디언, 좋은 개그맨이란 사람을 웃기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위안을 주는 힘이 있어야 한다.

무성의한 생활 개그? 알고 보면 대기만성형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것’ 사람들은 타고난 천재의 재능에 매료되지만, 필자는 오히려 차곡차곡 순간의 게으름 없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 얘기가 훨씬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큐 150인 아이가 10분이면 해내는 것을 밤새도록 눈이 충혈돼가며 외워댄 열등생의 노력을 보면 (결과를 떠나) 그 과정만으로 더 예쁘고, 안아주고 싶다.

초창기 박명수는 하늘로부터 웃기는 재능을 부여받은 ‘타고난’ 개그맨은 아닌 것 같다. 그 시절의 박명수는 너무 웃기지 않아서 안쓰러운, 하지만 ‘열심히만 하는’ 개그맨이었다. 데뷔 10여 년이 지나고서야 처음 그가 주목받기 시작할 때, 평소 그는 주목받는 데 익숙하지 않았음이 눈빛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온전한 캐릭터 없이, 뜰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계를 비껴가도, 좌절하면서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박명수는 조금은 측은하고, 한편으론 답답했다.

그러던 그가, 벼멸구, 거성, 2인자, (특채 개그맨을 패러디한) 흑채 개그맨, 제8의 전성기 등 여러 개의 별칭을 가지며 자신의 때를 발견해낸 지금이 대견하다.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의 때가 오지 않나. 평생을 기다린 전원주도, 연륜이 경쟁력인 80세의 송해 아저씨도, 반면 기다린 시간 한 번 없이 무대에 오르자마자 스타가 된 아이돌도 다 자신만의 시즌이 있는 법이다. 박명수의 최고 시즌은 바야흐로 지금이다.

하지만 박명수에게 노력과 성실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다. 그러나 정석권 실장과 동료 개그맨들의 말에 따르면 그도 혼자 있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노력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지금이 오기까지 헌책방을 돌며, 중학교 시절의 헌 교과서를 별도로 구입해 통째로 달달 외워 개그에 인용해보기도 했고(덕분에 뜬금없이 중학교 학습 단어를 자주 들먹여 주변을 웃게 한다고) 유명 드라마 패러디와, 정치인 패러디까지 개그맨의 생명을 위해 해보지 않은 게 없었다고. 물론 대본에 충실하고 사전에 계산을 치밀하게 해가는 타입이기보다는 상황을 잘 만들어내는 애드리브와 그날그날의 분위기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감각이 더 뛰어난 편이다. 물론 그런 감각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리가 없다. 이 모두 10여 년의 ‘어중간한’ 시절을 견뎌내며 훈련한 내공 덕분이 아닐까.

박명수를 아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박명수가 ‘낯가림이 있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너무 수줍어하다 보니 더 호통을 치는 편이라는 얘기다. 한정없이 거침없는 것이 아닌가 보다. 안 그런 듯한데 은근히 마음을 많이 쓰고, 또 그걸 제대로 표현하는 데 어색함을 느끼는 것일까. 계산할 줄 모르고,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사람. 화면에서와 다를 바 없이 짜증을 참지는 않지만, 그것은 성품이 괴이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트집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타입에 가깝다는 증언 일색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위해, 까나리 액젓까지 원샷
언젠가 박명수가 매니저에게 대하는 안하무인의 모습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진 적이 있었다. 호통 개그라도 저건 심하다 싶었다. 짜증을 웃어넘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그런 모습을 본다면 스트레스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잔소리 심한 박명수지만 회사 직원들의 미래를 생각해, 큰형님처럼 꼬박꼬박 적금을 들어 건네는 면모도 있다고 한다. 덩달아 유명해진 정 실장은, 박명수처럼 인간적인 연예인도 드물다고 했다. ‘애증’의 관계가 될 법도 한데 잔소리 심한 ‘진짜 형님’ 정도라고.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작가에겐 음식 하나 더 먹이려고 호통을 치고, 호통 뒤에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일면 몰래 다가와 “우씨. 아까 미안했다 야” 하고 슬그머니 또 사라진단다.

박명수의 호흡형 개그에는 누군가 그의 개그를 받아주고 이끌어주는 파트너가 있어야 더욱 빛을 발한다는 한계가 있다. 사진은 <무한도전> 멤버들.

대본 없이 상황 설정만으로 가는 <무한도전>에서 박명수는 자신의 캐릭터를 온전히 굳혔다. 정해진 상황의 어색함보다 큰 방향만 제시하면 상황 안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사람이 박명수다. MBC 라디오 <두 시의 데이트>를 맡으며 그를 지켜본 김빛나 작가는 박명수는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존재할 줄 아는 구성진 스타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순간 재치가 있어요. 특별히 박명수씨가 잘 하는 분야는, 청취자들과 어울리거나 전화 연결, 문자를 주고받는 것처럼 사람들과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끌어내는 진행자예요. 라디오에 대한 의욕이 많은 편인데, 저희 코너 중에 ‘우쥴라익썸씽투드링크’라는 코너가 있거든요. 뭔가를 마시면서 진행하는 코너인데 라디오다 보니 후루룩 하는 소리만 나가요. 그런데도 박명수씨는 실제로 다 마시면서 전혀 효과음을 못 쓰게 해요. 방송이 끝나면 얼마나 마셨는지 배가 빵빵할 정도예요. 보이는 라디오도 아닌데 심지어 까나리 액젓을 원샷한 적도 있으니까요.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죠. 그만큼 웃음을 주는 상황에서는 청취자에게 100%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걸 보고 사람을 다시 봤어요.”

욱 하는 설정과 과한 캐릭터가 실제의 모습을 극화한 거지만, 평소 아내에게만큼은 누구보다 자상한 모습이라고. 호통 뒤에 숨은 배려와 진국 같은 모습에서 아내가 왜 박명수와 결혼했는지 알 것 같다는 김빛나 작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으로만 그를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인품과 성품은 별개의 문제라고 전했다.

그가 하면 냉소도 웃기고, 호통도 웃기다. 개그맨으로서 이보다 더한 기회가 어디 있을까. 단, ‘호흡형 개그’에는 던지면 누군가 꼭 받아주고 이끌어주는 파트너가 있어야 더욱 빛을 발한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기다린 만큼 바야흐로 당신의 때가 왔으니 자신 있게 소리지르며, 세상을 호령하기를.

톱스타 성공 키워드

이왕 소리지르는 김에 만인 앞에 평등하게 호통하기를. 호통으로만 그치지 말고 상대를 위로해주는 미덕을 갖추시기를! 그리고 앞으로 10년은 지금보다도 진솔함을 더해 노력하기를, 야야야!!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