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장서희, ‘막장 드라마’도 보게 하는 힘

장서희는 연기를 위해, ‘미련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고, 그 순간을 위해 모든 시간을 바치는 연기자다.

비판하면서도 일단 몇 번 보기 시작하면 빠져들게 되는 것이 ‘통속극’의 뻔한 매력이다. 만화보다 더 억지스러운 전개에 분개하면서도 “저런 천하의 몹쓸 X”이라며 어느 순간 몰입하게 만드는 힘. 어느 누리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보다 더 ‘상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드라마가 어디 있겠는가.

도대체 관조하고 볼 수가 없다. 그런 류의 드라마에서 가장 진가를 발휘하는 건 영상미도 스토리도 아니요, 순전히 연기자들의 극대화된 연기다. 드라마의 새로운 문법이나 전형을 제시하는 웰메이드 통속극은 아니더라도, 적당히 ‘말이 되는 드라마’에서 장서희를 보기 바랐지만. ‘막장드라마의 끝’이라며 맹비난을 받고 있는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도 결국 장서희 때문에 보기 시작했다.

<아내의 유혹>에서 초창기 구은재(장서희)는 정작 자신의 상처는 방관한 채, 무조건적인 순종과 헌신을 쏟아붓는다. 때문에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답답함을 유발하는 캐릭터였다. 이후, 남편과 친구에게 버림받고 죽을 뻔한 위기에서 구사일생한 은재의 처절한 복수극이 극의 주 내용이다. 구글이 바닷 속까지 생중계하는 시대에 이렇게 촌티나는 드라마라니. 세련된 치정극이라도 볼까말까한 까다로운 시청자들에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악’이 아니다. 시작부터 ‘악’과 ‘선’을 구분짓는 듯한 흑백논리는 웃음까지 났다.

‘인어아가씨’에서 한 서린 연기 호평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캐릭터라도 장서희는 언제나 그렇듯, 혼신을 다해 연기자까지 ‘우습게’ 만들지 않는다. 한때 제법 파급이 컸던 MBC 드라마 <인어아가씨>의 ‘은아리영’도 지금의 ‘구은재’도 장서희가 아니면 이만큼 빛이 났을까.

아역탤런트부터 시작한 그녀는 오랫동안, 특별한 이슈가 없는 연기자 중 하나였다. 그럭저럭 성실하고 마냥 착한 연기자 정도.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시간에도 연기 내공을 착실히 쌓아온 결과 <인어아가씨>에 당당히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당시에는 캐스팅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뜬금없던 캐스팅이었다.

그러나 <인어아가씨>에서 통쾌한 복수를 해내는 방송작가 ‘은아리영’의 그 한 서린 연기가 모든 논란을 잠식시켰다. 그녀는 올인할 수 있는 역할을 만나, 이제야 숨이 트인 연기자처럼 보였다. 캐릭터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여태껏 저 에너지를 폭발시키지 못하고, 지금까지 어찌 살았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녀의 연기에는 ‘노력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필자는 장서희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때, 스타들의 일상을 담은 <스타 다큐>에 섭외하고자 6개월 정도를 끈질기게 찾아다닌 적이 있다. 여기저기서 장서희를 섭외하지 못해 안달이 난 때였다. 드라마 세트장을 찾아가고, 틈만 나면 전화하기를 여러 달, 한결같이 친절하게 고사하던 그녀는, 거짓말처럼 “작가 때문에 하겠다”며 출연을 승낙했다. 소속사의 방침에는 고려 대상도 안 되는 프로그램이지만, 정성을 들여 찾아온 그 마음에 감사하다고 연기자 본인이 승낙한 것이었다. 게다가 PD에게 당당히 “저 이거 작가님 때문에 하는 거예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랜 시간 귀찮았을 텐데, 그 마음이 또 고마웠다. 섭외는 당연히 작가 몫이라며 한 발 빼고 방관하던 연출자에게, 장서희는 작가들의 서러움까지 헤아려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프로그램 제작을 명분으로, 약 한 달 반가량 그녀의 일상을 지켜볼 수 있었다.

미련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
장서희는 연기를 위해, ‘미련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다. 요령이나 요행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그 순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치는 사람. 이를테면, 드라마에서 드럼을 치는 장면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나 혹독한 연습을 했는지, 드럼 연습장 카펫에는 그 당시 발가락이 짓물러 흘린 핏자국의 흔적이 희미하게 있었다. 세상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을 하다니. “어머, 아직도 있네!”라며 핏자국 흔적을 반가워하던 그 모습이 ‘독한사람’의 표정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한 데서 오는 뿌듯함인 양. 아이 같고 천진하기까지 했던 인상이었다.

드라마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칠 수 있게, 그가 절대자에게 마음을 다해 빌었던 얘기는 유명하다. 장서희가 삼천배를 했다는 절을 함께 찾은 적이 있다. 종래에는 무릎이 아파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는 그 자리. 삼천배를 했던 곳을 가리키며 눈가가 촉촉해지는 장서희를 보면서, 그 간절함이, 연기에 대한 사무침이 전해졌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다 부었던 <인어아가씨>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인어아가씨>를 대신할 만한 후속작은 쉽게 오지 않았다. 잠시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진행을 보기도 했고, 코믹 영화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고만고만했다. 그러나 컴백작으로 선택한 <아내의 유혹>에서 그녀는 또 한 번 장서희표 혼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들을 때 팬의 입장에서 그녀를 걱정했다. <인어아가씨>의 아류로 보이는 캐릭터에, 고만고만한 복수의 화신은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또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통속드라마만의 자극적인 연기로, 장서희만한 연기자가 또 있겠나 싶다.

안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는 그녀는, 독한 캐릭터와 달리 실제로는 답답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다. 도도함이 곧 스타가 지녀야 할 덕목인 양 착각하는 사람 사이에서 곧고 착한 심성이 눈에 띄었던 장서희. 그녀는 겸손함이 빛나는 배우다. 솔직함을 벗어난 되바라짐도 없거니와 누구 위에 군림하지도 않는 그 정중한 태도가 나는 참 좋았다.

다만 “그게 장서희의 한계야”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이제 <미워도 다시 한 번> 종류의 통속적인 드라마는 잠시 쉬고, 깊이로 사람들을 울리는 또 다른 변신을 꾀하는 것이 필요하다.

톱스타 성공 키워드

연기자들이 너무 열심히 해서 그나마 용서가 되는(?) 드라마. 아무려면 어떤가. 참고 살아서 속 답답한 사람들. 세상 향해 큰 소리 한 번 못 친 사람들. 너무 ‘당해서’ 가슴이 꽉 막히는 사람들에게 요즘 <아내의 유혹>에서 보이는 구은재의 통쾌한 복수 연기를 추천한다. 작품의 완성도는 둘째 치더라도, 말 못할 스트레스에는 이만한 ‘해독제’가 없다.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