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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넷]도처에 출몰하는 M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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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7일 KBS 뮤직뱅크 생방송 장면. 진행자 뒤 한 관중이 MBOUT이라고 적힌 노트를 들고 있다. | KBS

30, 40대는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V’라는 외화미니시리즈가 있었다. 1980년대 초반이다. 위장잠입한 파충류 외계인의 지구정복 음모를 서민들이 일치단결해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그리고 부작용(?)도 있었다. 저항군들은 자신의 표시로 스프레이로 V자를 그린다. 파충류 외계인과 이들의 앞잡이들은 이 표시에 호들갑을 떤다.

V자는 저항이 살아있음을, 그리고 지구인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을 상징하는 표시다. 부작용은 이 외화 시리즈가 끝난 한참 뒤까지 한국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 스프레이 V 표시가 유행이었다는 것이다. 한 집 건너 하나, 가게 셔터마다 누군가 급히 휘갈겨 쓴 V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 21세기 초에 등장한 이른바 ‘그래피티’운동의 선구자들이었다. 십중팔구는 장난이겠지만 넓은 틀에서는 군사독재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항으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초의 V가 모호했다면 지금 심심찮게 목격되는 낙서의 뜻은 명확하다. 호프집 화장실에서, 버스정류장 버스노선도에서, 심지어 새로 조성된 광화문 광장의 화분에서 이 낙서는 목격된다. MBOUT. 지난해 촛불시위 손 팻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문구다. 한국의 거리뿐 아니다. 전 세계 도처에서 이 문구는 발견된다. 8월11일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포크스 가면을 쓰고, 저승사자 복장을 한 남자가 MBOUT이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등장했다. 이 남자의 MBOUT 시위는 문화예술 관련 인터넷 웹페이지 One& Another를 통해 이날 한 시간 가량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올해 3월에는 만화영화에도 등장했다. 일본TV애니메이션 <라이드백> 9화의 차량번호판이 2MBOUT이었던 것. 당시 확인 결과 이 애니메이션의 채색 부분을 국내의 한 업체가 맡은 것으로 밝혀졌다. 누가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는지는 미궁으로 남았다. 인터넷 낙서 사이트도 예외는 아니다. 보통 이런 사이트가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통해 알려지면 정중앙에 떡하니 태극기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수천 누리꾼이 합심한 결과다.

드로볼(DrawBall)이라는 낙서사이트도 마찬가지다. 과거와 한 가지 다른 점은 태극기 위에 선명한 MBOUT이라는 구호다. 사건은 지난 8월7일 KBS <뮤직뱅크> 생방송 현장에서도 일어났다. 캡처된 이미지를 보면 미리부터 준비한 것 같진 않다. 캡처 사진을 본 한 누리꾼은 “뒤끝 좋으신 ‘가카’께서 이 프로그램 보면 바로 폐지하라 하실 듯”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설마했지만 반은 맞았다. KBS 사측은 “향후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청석을 카메라에 담지 마라”는 조치를 내렸다. 허둥지둥 V자 낙서를 지우던 미니시리즈 속 파충류 외계인과 그 하수인이 생각난 건 왜일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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