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솔로부대의 오프라인 도발, 결과는?

2009년 12월 26일 열린 명동삼겹살 퍼포먼스 동영상 캡쳐 이미지. blog.naver.com/honillusion

“아 큰일 났다. 크리스마스 날 서울 올라가게 생겼네….” 대구에 사는 조영석씨(25)가 지난해 12월 4일 자신의 싸이월드에 남긴 말이다. 조씨보다 한 살 많은 김성근씨는 같은 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난… 베플이 됐을 뿐이고…일은 커졌을 뿐이고…지켜야할 뿐이고…ㅠ.” 이들이 난감해하는 까닭은?

2009년 성탄절. 누리꾼의 관심은 세 명의 누리꾼이 내건 ‘공약’이 지켜질지 여부에 모아졌다. 발단은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 전송된 기사에 이들이 단 댓글. 네이트는 글에 달린 댓글에 대해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을 상단에 노출하는 ‘베플(베스트 리플)’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발단은 이날 낮 3시쯤 김성근씨가 “제가 베플이 된다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 한복판에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누리꾼의 장난기 어린 ‘집단지성’이 발동됐다. 김성근씨가 올린 리플은 곧바로 ‘베플’로 등록됐다. 조씨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제가 베플이 된다면 김성근씨가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며 흥을 돋구겠습니다.” 물론 ‘베플’행. “그 옆에서 탬버린을 치겠다”는 김명관씨의 댓글도 ‘베플’로 직행했다. 성탄절이 되기 20일 전부터 누리꾼들은 이들 ‘베플’에 다시 댓글을 남기며 반드시 공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일면식도 없던 세 사람은 싸이월드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결과는?

명동 측에서 허락을 못 받아 성탄절 당일에는 모이지 못했고, 이튿날 저녁 이들 세 명은 수백명의 관중 앞에서 이 퍼포먼스를 실행했다. 한 누리꾼이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취재 나온 매체도 제법 많았다. 들리는 뒷이야기에 따르면 이날 장소를 섭외한 데는 이 퍼포먼스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한 모 케이블TV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약속대로 김성근씨는 불판에 삼겹살을 구웠고, 조씨는 구경꾼들의 환호 속에 ‘비 내리는 호남선’을 불렀으며, 김명관씨는 탬버린을 쳤다.

사실 이들의 퍼포먼스엔 더 깊은 맥락이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성탄절을 정점으로 가시화되는 두 집단 간 ‘물밑전쟁’의 연장선이자 오프라인 진출이다. 그 두 집단은 이른바 솔로부대와 커플부대다. 하물며 성탄절까지도 독신으로 보내야 하는 쪽과 연인으로서 데이트하며 보내는 커플 쪽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언더그라운드 넷

‘자기 쪽이 더 낫다’며 나름대로 치열한 넷 상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듯하지만 현실세계에서 눈물짓는 쪽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솔로부대의 도발’을 기세 좋게 오프라인까지 잇겠다는 것이다. 즉 성탄절 데이트 장소의 성지(聖地) 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명동의 한가운데에서 솔로부대원 세 사람이 “혼자라도 잘산다!”는 취지의 시위를 벌였다. 정작 커플부대 쪽이 어떤 응전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성탄절 이튿날 포털 검색어를 장악한 ‘배란일’이라는 단어에서 그들 가운데 일부의 전날 행적(?)이 추측될 뿐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