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페이퍼 타워리 요기잉네?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한국어 대사가 등장하는 TV시리즈 <로스트>의 한 장면.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두 남자. 하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영어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뒤돌아선 이 남자는 갑자기 국적불명의 말을 한다. “아 페어퍼 타워리 요기잉네?” 거울로 그 남자를 쳐다본 동양계 남자는 깜짝 놀라며 말한다. “머라고요?” 하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는 ‘페이퍼 타월’을 뽑아 손을 닦으며 말한다. “좌눼으을 장이니신… 백… 회장님 미테서 이라고 이치.” 동양계 남자의 답. “요태카지 날 미앵한 고야?” 비장한 음악이 깔리며 ‘하와이 셔츠’는 답한다. “몰논. 그리고 짜네가 또망가료는 굿또…알고 잇치.” 하와이 셔츠의 ‘협박’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논…자유의 모미 아냐. 여태까지 그래 와꼬, 아패로도 개속!”

인기 TV시리즈 <로스트>의 ‘엑소더스 2부’ 에피소드의 한 장면이다. 로스트에서 설정된 저 국적불명의 말은 한국어다. 동양계 남자는 극중 권선아로 나온 김윤진의 상대역 권진수다. 상황을 간단히 말하면 시드니공항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하와이 셔츠’(존 월컷이 연기했으며, <로스트>에서는 극중 이름이 끝까지 안나온다)는 권선아의 아버지 백 회장에게 고용된 인물이다.

극중 설정은 외모는 서양 사람이지만 한국어에는 유능한 인물이다. 당최 하와이 셔츠의 한국어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다. 이것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유머의 포인트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유머 시초는 존 랜디스 감독의 <켄터키 프라이드 무비>(1977)다. 영화에 등장하는 동양인 악당은 갑자기 한국말로 말하기 시작한다. “한국말로 무조건 말하라고 하니 한심하군. 우리 한국 사람이 들으면 정신 나갔다고 할 것 아니야. 이런 미국에서 영화생활 하려고 하니 한심하군 그래…. 아무튼 한국의 팬들에겐 실례가 되겠습니다.” 물론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 사람들은 이 ‘악당’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 수 없다.

‘…페이퍼 타워리 요기잉네?’는 누군가 들리는 대로 자막을 만들어 유포하면서 대유행이 됐다. 구글 검색은 2010년 2월 현재 약 ‘23만건’의 관련 게시물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수많은 패러디도 양산했다.

그나저나 권진수 역으로 나온 이는 재미교포 배우 대니얼 대 김이다. 그런데 그의 발음 역시 ‘하와이 셔츠’와 비교해 만만치 않다는 평가를 듣는다. 본인으로서는 조금 억울할 만도 하다. 그러나 ‘김’의 발음에 대한 비판은 교포사회에서도 비등했던 모양이다. 결국 대니얼 대 김이 자신의 웹사이트에 영어로 사과문을 올렸다. “제 발음이 안 좋다는 비판을 많이 접했습니다. 저도 표준적인 한국어 억양을 익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산 출신인 제 가족과 친구들은 이해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요.” 확실히 이 에피소드 이후 김의 ‘억양’은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누리꾼이 캡처한 다른 <로스트> 에피소드에서 뜻대로 골프가 쳐지지 않는 진수는 소리친다. “왜 나 꽈찌쭈는 햄보칼수가업서! (왜 나 권진수는 행복할 수가 없어!) 너 이러케 드러가야 되는거야 이마(너 이렇게 들어가야 되는 거야 인마).” ‘…페이퍼 타워리 요기잉네?’만큼은 아니지만 ‘햄보칼수가업서’ 역시 꽤 퍼졌다. 구글에 따르면 ‘햄보칼수…’에는 약 1만6000건의 웹 페이지가 존재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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