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천안함 침몰은 물수제비 어뢰가 일으킨 것?

“내 북한의 군사력이 강한 줄은 진즉 알았다만 이토록 가공할 만한 것이었는지는 오늘에야 깨닫는 구나.” 신혼부부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누리꾼의 찬탄이다. 미궁에 빠져 있는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한 누리꾼의 ‘개념도’를 본 반응이다. ‘쓰엉포아’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이 ‘천안함은 ‘물수제비어뢰’로 침몰한 것이다?’라는 글을 올린 것은 지난 4월 23일. 이 게시 글은 1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누리꾼의 인기를 끌었다. 이 누리꾼이 주장하는 천안함 침몰 원인은 뭘까. 북한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개발한 ‘물수제비어뢰’ 때문이다. 어찌됐던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는데, 최첨단 버블제트니 인간어뢰 같을 걸 동원할 필요까지 있을까. 보통 사람이 물수제비를 하면 많아 봐야 5~6회 물에서 튀었다가 빠지고 말겠지만 혹시 아는가. 수십 년 동안 이 특훈만 되풀이해 온 정예병사라면 한 5㎞쯤 탄두를 물수제비로 던지는 것이 가능할지도.

누리꾼 쓰엉포아가 올린 ‘물수제비어뢰설’의 개념도. |다음 즐보드

‘쓰엉포아’라는 누리꾼이 ‘물수제비어뢰’설을 제기한 건 전날 조선일보가 내놓은 ‘北 인간어뢰-바닷속 자살폭탄’이라는 기사에서 받은 ‘영감’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1면과 4면에 걸쳐 이 ‘설’을 대서특필했다. 기사는 북한 국가 표식을 한 미사일을 올라탄 사람이 직접 조종해 천안함에 접근하는 내용의 그림까지 덧붙여 놓았다. 쓰앙포아는 이렇게 적었다. “니들만 상상력 있냐.”

‘물수제비어뢰’는 누리꾼의 상상력을 폭발시켰다. ‘꼬부기’라는 누리꾼은 ‘북한 대롱어뢰’라는 걸 내놓았다. 대롱에 어뢰를 넣고 불어 탄두를 발사했다는 것이다. ‘제중원’이라는 누리꾼은 ‘나도 해 볼래!’라는 제목으로 ‘북한 골프어뢰 개념도’를 내놓았다.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공작원이 골프채로 탄두를 천안함을 향해 날렸다는 내용이다. ‘곱등이어뢰’도 있다. 그림으로 보아 유전조작으로 거대화된 곱등이의 등에 어뢰를 실어 내보냈다는 주장인 듯하다. 물론 이 주장들을 내놓는 누리꾼들이 진짜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설의 진화는 계속된다. 4월 28일에는 애초 물수제비어뢰설 그림을 다시 패러디해 ‘북한 트리플악셀 어뢰’라는 것도 나왔다. 훈련받은 북한 특수공작원이 몸에 어뢰를 단 채 뭍 가장자리에서 도약해 빙글빙글 돌아 천안함까지 날아 갔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사건을 희화화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 그러나 ‘북한 소행’을 주장하기 위해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로 지면을 도배하는 언론 역시 희화화의 측면에서는 도긴개긴이다. 미국 언론 LA타임스는 4월 26일 서울발 기사의 제목을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 한국에서 제임스 본드류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라고 뽑았다. ‘007영화’에서나 볼 법한 SF적 발상을 일부 언론이 천연덕스럽게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넷

언론운동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에서 신문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는 송민희 활동가는 “언론이라면 최소한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며 보도하는 것이 당연한 임무인데 일부 언론의 최근 보도 태도를 보면 웃지 못할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훗날 언론학 교과서는 이 사건 보도를 어떤 사례로 가르치게 될까.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