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6·2 지방선거, 이름 덕 좀 보셨나요?

“뛰어난 능력, 강력한 추진력.”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꾼!” 지방선거 기간에 흔히 보이는 구호다. 그러나 정작 관심을 끈 것은 구호를 내건 후보의 이름이다. 고기판. 실제 인물이다. 누리꾼은 고 후보의 선거사무실 펼침막 사진을 ‘증거’로 내밀었다. 선거 펼침막 바로 옆의 ‘거북이 삼겹살’ 입간판과 묘한 조화가 눈에 띈다. “중·고등학교 때 많이 시달렸죠. 사춘기 때 조금 힘들었습니다.” 고기판 서울 영등포구 구의원 후보(51)가 밝히는 이름에 얽힌 애환(?)이다. 이름은 할아버지가 면사무소에 신고하러 가는 길에 작명소에 들러 지었다. “그 당시는 못 먹던 시절 아닙니까. 고기판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고 후보는 그래도 이름을 바꿀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누리꾼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고기판 후보의 선거 펼침막. |루리웹

2002년부터 그는 구의원이었다. 식당에서 명함을 돌릴 때면 “고기는 바꿔도 고기판은 바꾸지 말자”라고 말한다.

누리꾼은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 가운데 특이한 이름을 모았다. 국민참여당의 충북도의원 비례후보는 갈바드라크 체체그수렌(37). 학력이 조금 무섭다. 몽골의 ‘노동 공훈 붉은 기발 훈장의 사범대학’을 나왔다. 경력을 보면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몽골어 통역사를 하고 있다.

자칫 핸디캡이 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선거에 활용하는 후보들도 있다. 서울 관악구 현미경 구의원 후보(42)는 ‘현미경처럼 꼼꼼하게 구정 살림을 살피는 아줌마’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서울 용산구에서 시의원으로 출마한 김제리 후보(50)는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 덕을 봤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글로벌 네임처럼 들리는지 이름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그의 이름은 한자 이름이다. 구할 제(濟)에 이치 리(理)다.

신체의 ‘특정부위’가 연상되는 후보들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 ‘고오환’ 도의원 후보(56)는 “학교 다닐 때 놀림을 많이 받아 20여 년 동안 고영일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썼다”면서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기에 1998년 시의원에 출마하면서부터 본명을 썼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경북 문경 시의원 출마자 가운데 동명이인(58)이 있다. 고 후보는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선거가 끝나면 한번 만나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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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는 후보도 있다. 서울 강남구 ‘이판국’ 구청장 후보(54), 충남 홍성군 ‘한기권’ 군수 후보(56), 경기 성남시 ‘전이만’ 시의원 후보(70), 인천 연수구 ‘이인자’ 구의원 후보(54) 등이다. 상대 후보로부터 네거티브 공세를 받았을 법도 한데 이판국 후보는 ‘이 판국에 왜 이판국인가’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전이만 후보 관계자는 “거취와 관련해 이상한 소문을 내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2만 표’를 얻겠다고 응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기권 후보 관계자는 “지역에서 정치활동을 오래 해 와서 이름 때문에 불리한 것은 거의 없다”면서 “주위에서 ‘한당선으로 바꿔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고 웃었다. 이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갈 쯤에는 당선자 윤곽은 다 드러나 있을 것이다.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출마 때의 초심을 잃지 않기를.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