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부부젤라, 악마의 응원 도구?

“플라스틱으로 만든 1m 남짓의 코끼리 울음소리를 내는 이 밝은 색상의 물건은 무엇일까요?…(중략)…이건 악기이지만 항상 음악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식 사이트에 소개된 한 악기에 대한 소개다. 이 소개 글의 제목은 이렇다. ‘부부젤라: 남아공 축구의 아름다운 소리.’ 그러나 월드컵 중계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안다. 저게 아름다운 소리라고?
‘부부젤라’는 이번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전 세계 누리꾼의 공적(公敵)이 된 것 같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부부젤라를 부는 남아공 시민들’ 사진을 두고선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는 하소연이 잇따라 올라왔다. 코끼리 울음소리라고 했지만 벌떼나 파리가 내는 소리처럼 들린다. 일각에서는 한국 응원 때 “‘꽹과리’도 비슷한 취급을 받지 않았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꽹과리는 응원단을 이끄는 일부 사람들만 쳤을 뿐 저렇게 떼거리로 나와 불진 않았다”는 반론이 즉각 튀어 나왔다. ‘남아프리카의 전통악기’라는 설명도 무색하게 ‘그동안 접해 보지 못한 특이한 저음을 내는, 싸구려 플라스틱 사출물로 추정’(이글루스 블로거 바셋)되는 이 응원 도구 퇴출 주장이 전 세계 누리꾼을 휩쓸었다.

이 ‘악마의 응원 도구’를 만들어 낸 주범은 누구일까. ‘매슨시든 스포츠’라는 남아공의 스포츠용품 회사가 2001년 플라스틱으로 대량 생산하면서부터 대중화됐다. 초기 판의 부부젤라엔 “귀에다 불지 마세요”라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의 부부젤라 공식 사이트(?)에는 이 회사의 홈페이지 링크가 소개돼 있지만 클릭하면 도메인 장사꾼이 점령한 사이트다.(역시 뭔가에 휘둘린 느낌이다) 아르헨티나전이 열리던 날 인터넷에는 부부젤라응원가 악보라는 것이 나돌았다. 이 악보를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부부젤라를 아무 리듬 없이 그저 뿌뿌 불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착각입니다. 소음처럼 들리지만 제대로 된 응원가입니다.” 악보를 찬찬히 뜯어보면 알겠지만 물론 진지한 언급이 아니다. 한 누리꾼의 반론. “파리와 모기, 그리고 기타 곤충의 소음으로 치부되는 부부젤라가… 그렇다면 역발상으로 곤충들도 화음을 낼 수 있다는 게 되는 건가요.” 자살용 악보라는 해석도 있다. 악보를 보면 4분 숨표 4개 이후에는 계속 “부” “부” “부”거린다는 것이다.

전통 타악기 전문가는 거의 테러에 가까운 듯한 이 부부젤라를 어떻게 볼까. “물론 보는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낯선 소리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속한다고 했을 때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 경기라는 의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김동원 원광디지털대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는 “나는 비판하지 않는 입장”이라며 운을 뗐다. 김 교수는 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와 함께 응원을 펼친 김덕수 사물놀이패에서 꽹과리와 장구를 쳤다. 그는 “응원문화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면서 “연주하는 것이 물론 시끄럽고 방해가 되더라도 다른 문화권 응원단이나 선수단이 ‘적응’해야지 그곳의 응원문화를 금지시키거나 할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부부젤라 소리는 TV 중계를 통해서는 벌레나 곤충 소리같지만 현장에선 코끼리 울음소리처럼 들린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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