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100년전 이 땅의 우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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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9일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삼킨 지 꼭 100년 되는 날이다. 1910년 이날 한·일간에 체결된 병합조약 1조는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폐하에게 넘겨준다’고 돼 있다. 이로써 지구상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사라졌다. 물론 그 전, 그러니까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11월 이후부터 조선의 통치는 실질적으로 일본이 좌우했지만 국가 주권이 통째로 넘어간 역사적 사건은 100년 전 한 여름에 일어난 것이다.

위 _ 구 한국시대의 통신원 관원. 왼쪽 _ 통신원 초대 총판 민상호. 오른쪽 _ 통신원 마지막 총판 장화식.


이 때는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근대화가 막 시작되던 시기. 가장 중요한 부문 중 하나가 우정이었다. 일본은 한국의 우정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찍이 주한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는 1904년 한·일친선을 내세우며 방한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우편·전신에 관한 특권은 일본 정부의 특권으로 하고 그 경영을 확장하여 획득하는 것이 가하다”고 건의했다. 이에 일본은 그해 4월1일 한국측을 압박해 한·일 통신기관협정을 맺었다. 이 협정서는 제 1조에 “한국은 우편·전신·전화사업의 관리를 일본 정부에 위탁한다”고 돼 있다. 한마디로 우정의 주권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말이니, 정신 제대로 박힌 한국인이라면 찬동할 리 없는 협정이다. 당연히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우정업무를 통할하는 기관인 통신원의 총판(總辦·지금의 장관격) 민상호는 이 협정에 반대하다가 해직당했고, 민상호에 이어 대한제국의 마지막 총판이 된 장화식은 “통신은 나라의 이목(耳目)이다. 이목이 없으면 어찌 사람이 사람이겠는가”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화식은 이 협정을 근거로 일본이 통신권을 넘겨달라고 했을 때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끝까지 거부했다. 우정의 총수가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현장의 우정인들도 울분을 토하며 일본 관리들과 맞섰다. 일본이 가장 먼저 인수하려 한 한성우체총사와 전보총사에서는 전 직원이 “우리는 일본 관리로 살지 않겠다”며 총사직을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인 직원이 없어 20일간 한글전보 취급이 중단되기도 됐다. 광주우체사 직원들은 일본의 접수요원이 방문할 때마다 “상부의 명령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며 거부했다. 이렇게 전국 곳곳에서 버틴다고 버텼지만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의 무력을 끝내 이길 수는 없었다. 일본측은 “경찰을 동원한 끝에 접수를 완료했다”고 일본 본국에 보고했다.

강제 접수를 완료한 일본은 자국의 우정제도를 그대로 가져와 시행했다. 가장 먼저 취한 조치가 한국 우표 말살정책이다. 한국의 통신원을 흡수해 설립한 통감부(統監府)에서 “한국에서 사용할 우표는 별도로 발행하자”고 건의했으나 묵살하고 1905년 7월1일부터 한국우표 판매금지를 강행했다. 동시에 한·일 양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李花)과 국화가 도안된 ‘일한통신업무합동기념’ 우표를 찍어 각 도의 군수나 각국 공사관 등에 보냈다. 1909년 8월 31일부터는 한국우표 사용 자체를 전면 금지시켰다. 한국 땅에서 한국 우표를 영원히 추방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100년 전 이 날 이 땅에서 편지를 부치려면 일본 우표를 써야했다. 대한제국에서 발행한 어극40년 기념우표나 독수리우표가 집안 장롱에 쌓여 있다 해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한국 돈도 사용할 수 없었다. 한국 돈은 일본 돈에 비해 절반 값으로 교환됐다. 우편요금이 하루 아침에 2~3배 오른 셈이지만 우편 장악의 목적이 식민지 대륙경영에 있었던 일본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이후 일제 36년간 한국 우정은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우정용어부터 일본식으로 둔갑했다. ‘우표’가 ‘우편절수’(郵便切手)로, ‘우체’(郵遞)가 ‘우편’(郵便)으로, ‘등기’(登記)가 ‘서류’(書留)로 바뀌었다. 당시 전국 곳곳에 있던 우체사(郵遞司)는 일제히 우편국이 됐다. 우편국은 광복 이후 일본식 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1949년 8월 우체국으로 개칭됐으나, 우편물, 우편법, 우편엽서 등 우편과 관련된 다른 용어는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100년 전 나라 잃은 상흔이 뿌리깊게 남아있는 셈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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