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오드리 헵번 우표, 이번엔 6억7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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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태생의 영화배우 고(故)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담은 우표 전지 한 장이 독일 베를린의 자선경매에서 43만 유로(미화 60만6000 달러), 우리 돈으로 6억7000만원에 팔렸다는 소식이 외신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이 지면(2009년 6월 30일 발행한 위클리경향 831호)에서 헵번 우표가 1억2000만원에 팔렸다는 이야기를 쓴 필자로서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혹시 1년 전 기사를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다소 헷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헵번 우표와 이번 헵번 우표가 같은 건가, 다른 건가. 만약 같다면 1년 사이 5배 이상 비싸진단 말인가 하는 혼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드리 헵번 전지우표.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두 우표는 디자인이 같지만 동일제품은 아니다. 지난해 팔린 것은 한 장짜리 우표이고, 이번에 팔린 것은 우표 10장이 낱장으로 뜯어지지 않은 채 한 묶음으로 붙어 있는 전지다. 단순화시킬 수는 없지만 낱장으로 있는 게 10장 묶음 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그래도 우표 전문가들은 이번 경매 낙찰가가 100만 달러 이상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다소 실망스러워하는 눈치다.

이번에 팔린 전지우표는 낙찰가보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의 스토리가 더 흥미진진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전지우표는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표의 탄생 배경부터 거슬러올라가보자.

2001년 독일 우정당국은 유명 배우 특별기획 시리즈 우표를 발행했다. 헵번을 포함해 찰리 채플린, 마릴린 먼로, 그레타 가르보 등 세계적인 배우들이 여기에 포함됐다. 문제는 헵번의 사진이었다. 독일 우정은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 나오는 헵번의 모습을 우표에 담았으나 헵번의 초상권을 가진 아들 숀 페러는 “어머니가 암으로 죽었는데 담배 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며 사진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1400만장의 우표를 발행한 상태였다. 독일 우정은 사전에 동의받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이들 우표를 폐기처분했다. 이 때 딱 10장짜리 전지 2장을 남겨놓았는데, 하나는 인쇄소, 하나는 우정박물관 보관용이었다. 이게 독일 우정의 공식 발표다. 

그런데 3년 뒤 편지봉투에 붙어 소인이 찍힌 사용필 헵번 우표가 경매시장에 등장했다. 독일 우정은 “그럴리가”하며 놀랐지만 감정 결과 진품으로 확인됐다. 폐기처분되는 과정에서 유출되었던 것이다. 이 우표가 희소가치가 있어 비싼 값에 팔리자 여기 저기서 “나에게도 그런 우표가 있다”며 쏟아내 지금까지 5장이 확인됐다. 지난해 1억2000만원에 팔린 우표는 이 5장 중 한 장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에 나온 전지우표 또한 독일 우정이 기록용으로 남겨놓은 2장 중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전지의 출현과정은 이렇다. 지난해 낱장짜리 헵번 우표를 매매중개한 슐레겔이라는 경매인은 헵번의 아들 숀을 찾아가 이색 제안을 했다. 

“초상권을 가진 유족으로서 독일 정부가 보관중인 헵번 전지우표 두 장 중 한 장을 자선경매에 내놓자고 독일 정부에 제안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슐레겔을 깜짝 놀라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보다 독일 우정이 2001년 나에게 보냈던 본래의 우표전지는 어떤가요. 나는 그걸 아직 갖고 있거든요.”

독일 우정이 어머니 사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며 보낸 그 우표전지를 지금껏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숀은 이후 독일 재무부와 접촉해 자신이 보관중인 우표 전지 매각권리가 자신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자선용으로 팔되 독일 정부가 보관중인 전지 2장은 2040년까지 매각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 자선용 판매 우표의 시장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민·관이 합의한 것이다. 실제 이번 매각대금은 3분의 2는 오드리 헵번 아동기금에, 나머지는 헵번이 숨지기 전까지 홍보대사로 지낸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배분되는 방식으로 모두 공익을 위해 쓰이게 된다. 헵번의 곱고 예쁜 이미지를 사후에도 지켜내려는 아들의 지극 정성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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