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넷]체르노빌 거대 지렁이 사진의 진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또 모르겠지만, 기자는 지렁이에 대한 공포증 같은 게 있다. 한 마디로 무섭다. 길가다 발 밑에서 우연히 지렁이를 발견하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체르노빌 지렁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체르노빌 인근에서 발견되었다는 5m짜리 거대한 메기 사진과 함께 실린 이 지렁이는 방사능이 야기한 유전적 돌연변이라는 것이다.

누리꾼의 화제를 모은 체르노빌 거대 지렁이 사진.

그냥 보통의 지렁이도 그런데, 거대한 지렁이라니…. 사진만 봐도 소름이 끼친다. 누리꾼 반응도 엇비슷하다. “완전 뱀이네.” (누리꾼 어쩌라는거야), “역시 무섭구나.” (누리꾼 애플망고)

그런데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다. 이 사진이 한 커뮤니티의 유머게시판에 게시된 이유는 여기에 한 남자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어 그릴스다. 칼 한 자루로 사막이든 정글이든 살아남는 남자. 누리꾼은 그에게 ‘생존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한 다큐멘터리 전문 케이블에 그가 출연한 <맨vs.와일드>라는 프로그램이 누리꾼의 인기를 끌면서다. 베어 그릴스 사진 밑에 붙은 말은 이렇다. “저녁식사 해결!” 그 거대 지렁이 한 마리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체르노빌 원폭사건 후 정말 돌연변이로 이런 지렁이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일까. 후쿠시마 사건 후 사진이 다시 유행했지만, 이 ‘거대 지렁이’ 사진 시리즈는 사건 전에도 때때로 인터넷에서 돌았던 것이다.

1997년 무렵이던가, 한국에서도 개봉된 ‘고질라’(일본영화 고지라의 서양 리메이크 판)에도 이 이야기는 언급되어 있다. 일본에서 제작된 오리지널 ‘고지라’(1954)도 비키니섬 수폭 실험 후, 깊은 바닷속에 살던 고대 공룡이 방사능의 영향으로 초능력 파워를 획득했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체르노빌 지렁이’(Chernobyl earthworms)라는 검색어로 해외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구글 검색엔진 맨위에 뜬 글은 야후에서 오간 질문과 답. “방사능의 영향으로 그렇게 지렁이가 거대해질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자신이 생물학 교사라고 밝힌 답변자는 “방사능 노출로 기형이 되거나 왜소해진다든가 질병에 걸릴 수는 있겠지만 커지진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보다 전문적인 과학 관련 토론 사이트를 검색해봤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발 보도’(코리아타임스에서 누리꾼 화제 소식으로 이 거대한 지렁이 소식을 다뤘다)라면서 거대 지렁이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한 토론자는 “그 사진이 체르노빌의 지렁이 사진이 아니라 ‘Megascolides australis’라는 학명을 갖고 있는 호주의 거대 깁스랜드 지렁이 사진이 아니겠냐”고 글을 올렸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종류의 지렁이는 보통 2㎝의 두께에 평균 100㎝에 이르는데, 3m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유포된 종류의 사진과는 다르지만, 실제 저 깁스랜드 지렁이의 사진을 보면 만만치 않다.

언더그라운드.넷

‘체르노빌 지렁이’ 사진을 소개하는 글엔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 지렁이를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주요 포털에 지렁이의 식생에 대한 글을 기고한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에게 문의해봤다. “원래 달팽이 전공자이기 때문에 실제 지렁이의 종류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전제하면서 김 교수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방사능의 영향으로 거대화된 지렁이가 있을 것은 같다”고 말했다. 어쨌든 체르노빌 사건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사진이 조작된 것 같진 않다. 방사능으로 이런 지렁이가 한반도에도 출현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