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세계경제 ‘퍼펙트 스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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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미국 재정위기·유럽 채무위기·중국 성장둔화·일본 경기침체 ‘악재’ 겹쳐

지난 6월 11일 싱가포르 기자회견장.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세계 경제가 2013년 퍼펙트 스톰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퍼펙트 스톰이란 개별적으로 보면 위력이 크지 않지만 몇개가 합쳐져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완벽한 태풍이라는 뜻이다.

그는 “세계 경제는 이미 금이 갔다”며 “많은 사람들이 공공부문과 개인 부채로 깡통을 차게 될 것이며, 그 깡통은 점점 더 커지고 무거워져 2013년에 최악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 경고 두 달만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싱가포르의 한 포럼장에서 2013년 세계 경제가 ‘퍼펙트 스톰’을 맞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루비니 교수가 든 근거는 네 가지다. 미국의 재정위기, 유럽 채무위기, 중국의 성장둔화, 대지진 후 일본의 경기침체 등으로 이런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져 ‘퍼펙트 스톰’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미국 경제에 대해 “유가상승과 고용시장 불황, 주택시장의 더블딥, 연방·지방정부의 재정문제 등이 이어지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도 미국경제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가 지난 6월 ‘퍼펙트 스톰’을 제기할 때 이에 동조한 경제전문가들은 별로 없었다. 세계 경제가 나쁘긴 해도 ‘충분히 예견이 되는 만큼’ 헤어나지 못할 정도의 위기는 오기 어렵다고 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맞힌 루비니 교수가 ‘또 언론플레이를 한다’는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세계 주가가 일제히 폭락한 8월 3일을 기해 모든 것이 변했다. 루비니 교수가 맞았다. 자신의 발언 뒤 두달도 채 안돼 새로운 패닉이 찾아오리라고는 루비니 교수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경제는 비관론자인 루비니 교수보다도 더 비관적이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김병권 부원장은 “이번 금융시장 패닉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어 발생한 것”이라며 “알면서도 손 놓을 수밖에 없는 공포가 더 무서울 수 있다는 점을 경제전문가들이 간과했다”고 말했다.

패닉의 시작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7월 31일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진통 끝에 채무한도 협상을 타결했다. 이는 호재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향후 10년 동안 2조 4000억 달러(약 2640조원)의 부채를 감축하기로 한 것이다. 연간 긴축액은 2400억 달러. 이는 최근 3년간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부은 자금과 비슷한 규모다. 긴축 우려가 확대됐다. 당장 더블딥(경기가 잠시 회복했다 다시 침체하는 현상) 공포가 커졌다. 때마침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의 9월 위기설, 스페인의 10월 위기설이 제기됐다. 두 나라의 국채금리가 6%를 넘어서면서 유럽 전체로 국가부도 우려가 확대됐다.

8월 3일 주요국의 주가가 기다렸다는 듯 폭락하기 시작했다. 8월 5일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인 S&P가 미국 증시가 문을 닫은 직후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주말을 지난 8월 8일 세계 증시는 블랙먼데이를 맞았다.

세계가 이번 패닉에 놀라는 것은 ‘몰랐던’ 사태가 아니라 ‘언젠가는 올’ 사태인데 ‘그게 오늘’이었다는 점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이번 사태는 금융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실물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한꺼번에 크게 나타나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나올 것으로 봤는데 의외로 빨리 왔다”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가 제기한 4대 악재를 사안별로 들여다 보자. 먼저 미국의 재정위기. 미국은 지난 3년간 막대한 재정을 퍼부으면서 실물경기 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그 결과는 별게 없었다. 지난 6개월 간 미국 연간 경제성장률은 0.8%에 그쳤다. 고용, 소득, 산업생산 등 주요 경제지표는 2007년 12월보다 더 악화됐다고 뉴욕타임스는 밝혔다. 재정위기는 미국 신용등급을 끌어내렸다. 국가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자 1만1500여개 지방채 신용등급도 떨어졌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을 믿었다. 하지만 달러비중은 지난 10여년간 지속적으로 약화됐다. 1999년 3월 말 전세계 외환보유액의 71.3%를 차지했던 달러는 2011년 3월에는 60.7%까지 떨어졌다.

미국 실물경기 부양 지지부진
유럽의 채무위기는 미국 재정위기보다 더 위험하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을 넘어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번져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최근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9월에 687억 유로(약 106조4850억원), 스페인은 282억 유로(약 43조7100억원)의 원리금 상환이 예정돼 있다. 향후 2년 내 월별기준으로는 최대 수준의 만기도래 자금이다. 유럽 주채권자인 프랑스와 영국에 대해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금융위기 당시 4조 위안(약 640조원)을 풀었던 중국도 인플레이션에다 경기둔화로 정신이 없다. 미국 국채의 24%를 보유한 중국이 미 국채를 내다 팔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지경이다. 실제 중국의 경기선행지수는 2010년 12월 이후 6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일본의 상황은 더 나쁘다. 미국 국채의 19%를 보유했지만 이미 제2경제대국 자리에서 내려온 지 오래다. 자국의 정치불안, 대지진 등으로 인한 충격을 벗어나는 것이 더 바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실물경제의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11월 입주율이 50%를 채우지 못한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 당시 전국 미분양 주택은 16만 가구를 넘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연합뉴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양적완화를 두 번째 했을 때부터 별로 약발이 없었다”며 “수요가 있어야 돈을 빌려 투자를 하는데 지금은 과도한 부채 때문에 가계가 지갑을 닫고 있어 유동성을 풀어놔봤자 투기자금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퍼펙트 스톰은 4D의 공포로도 읽힌다. 더블딥(Double Dip), 채무(Debt), 신뢰상실(Distrust), 달러(Dollar)의 위기라는 것이다.

한국판 퍼펙트 스톰도 우려된다. 우리나라 금융위기는 5∼6년에 한번씩 닥친다는 특성이 있다. 이른바 5년 주기설이다. 위기는 때로는 내부에서, 때로는 외부에서 촉발됐다. 당초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2013년께 가계와 기업, 정부 부채가 동시에 밀려오는 한국판 ‘퍼펙트 스톰’이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관측해왔다.

2013년엔 한국판 퍼펙트 스톰?
1997년 외환위기는 과도한 기업들의 부채가 국가부도를 불러오는 이유가 됐다. 당시 국내 대기업들은 막대한 차입을 통해 덩치 불리기에 나섰고, 때마침 무역적자로 외환이 고갈되면서 미증유의 국가 부도사태를 불렀다. 2003년 위기의 핵심은 가계부채였다. 2000년 초반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수진작의 일환으로 카드 사용을 장려하면서 이를 갚지 못한 가계의 빚이 눈덩이처럼 늘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동산에 물려 있던 가계와 기업을 동시에 덮쳤다. 2005∼2006년 부동산 버블로 인해 은행에서 빌렸던 주택담보대출 부담이 눈덩이로 늘어난 상태에서 땅값이 폭락하자 가계는 대번에 위기를 맞았다.

다음 위기는 기업과 가계에다 정부 부채가 동시에 겹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부동산으로 인해 가계 지출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더블딥이 오면 기업들의 수익이 급감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과 공공기관은 이미 많은 재정을 투입해 추가 지원이 어려운 상태다.

신제윤 금융위 부위원장은 8월 10일 “이번 위기는 실물 부문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시작돼 단기적인 해결이 어렵다”며 “지속적으로 세계와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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