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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길 위에 스러지는 집배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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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적 평판이 좋은 직업 가운데 하나가 집배원이다. 어느 나라든 집배원은 착하고 친절하고 온화하고 평화로운 존재다. 정부 또는 공기업이라고 하면 ‘철밥통’, ‘복지부동’, ‘집단이기주의’ 같은 부정적 단어를 떠올리는 우리 국민들도 집배원이라고 하면 ‘친절 배달부’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표현을 떠올린다. 집배원도 공무원이지만 국민 머릿속에 새겨진 이미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폭우에 휩쓸려 숨진 용인우체국 차선우 집배원의 영결식 장면.

예술작품 속에 등장하는 집배원도 우호적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집배원이 나쁜 배역으로 나오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으며, 시나 음악에서는 종종 동화처럼 그려진다. 고 신현정 시인의 ‘길 위의 우체부’라는 시다.

“세상은 온통 나비떼//초인종은 세 번을 눌렀다//(~)//마감일까지 소인이 찍힌 것은 유효했다//요즘 와서는 거의가 빠른 우편이었다//민들레 피고//나는 어깨에 멘 행낭을 내리고 지퍼를 활짝 열어젖혔다//세상은 온통 나비떼//나비떼//(~)//민들레 옆에 자전거를 모로 눕히고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운다//아, 나는 선량했다”

1997년 나온 장필순의 노래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 아저씨’의 노랫말은 무척 정겹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소포 한 뭉치 한 손엔 편지/몇 통 몇 반 작은 글씨는 돋보기 넘어 희뿌연 풍경/~/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빨간 자전거 타는 아저씨~”

집배원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따스하지만 현실 속 집배원들의 삶은 차갑고 고단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배달가방을 짊어지고 길 위로 나서다보면 때론 윤화(輪禍)에, 때론 수마(水魔)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7월 27일, 경기 용인우체국의 차선우 집배원은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한 마을에서 배달을 하던 중이었다. 이곳은 차씨에게 낯선 구역. 동료의 빈 자리로 인사 이동되어 온 지 닷새밖에 안 된 때문이다. 그가 포곡읍 금어리 인근을 지날 때였다. 도로에 불어난 물이 차씨의 몸을 휩쓸었다. 위험을 느낀 차씨는 함께 가던 선임 집배원 남모씨에게 우편물을 건네고 빠져나오려 했으나 거센 물살에 떠밀리면서 하수구로 빨려들어가버렸다. 차씨는 사고 발생 사흘뒤 청담대교 남단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고 지점에서 60㎞ 떨어진 곳이었다. 몇 년을 비정규직으로 일한 끝에 6개월 전 정규직이 된 차씨는 올해 스물아홉의 꽃다운 청춘. 이제 안정된 직장을 가진 만큼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소박한 꿈이 한순간에 떠내려가버린 것이다.

지난 6월에는 강원 인제군 기린면 국도 31호선상에서 덤프트럭과 오토바이가 충돌해 오토바이를 몰던 기린우체국 박상권 집배원이 숨졌다. 박 집배원이 마을 입구에서 좌회전할 때 뒤에서 오던 덤프트럭이 보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박 집배원의 올해 나이 스물다섯. 지난해 8월 집배원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같은 우체국에서 부자(父子) 집배원으로 일하다 며칠 전 아버지가 명예퇴직을 하자 대를 이어 우편배달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청년이다. 아직 비정규직이지만 머지않아 정규직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젊은이, 그 또한 길 위에서 속절없이 스러졌다.

최근 집배원의 여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집배원이라는 직업, 가족 외에는 아무도 고충을 모릅니다. 새벽에 나가 어두워야 들어오고, 눈이 오면 오지 산간마을에 두부·파·부식 사다주고, 은행 심부름에, 복권 바꿔달라는 심부름까지 해주는 우리 오빠…. 겨울이면 자식들 찾아 떠난 노인 빈 집에서 몇날 며칠 굶는 개가 불쌍해 개밥까지 챙겨주는 오빠…. 늘 부족한 인원으로 시간에 쫓겨, 집배구역에 쫓겨, 점심도 못먹고 집배하는 우리 오빠….”

거울에 비친 모습은 한겨울 눈처럼 희어도, 돌아서서 마주보면 눈물 나게 하는 사람들이 집배원이다.


<이종탁 출판국장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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