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극한직업 우체국 집배원

아찔한 절벽에서 버섯을 따는 석이꾼, 수심 30~40m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머구리, 60~70m 상공의 전선 위에서 작업하는 송전전기원,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방진복을 입고 땀 흘리는 석면해체기사…. TV 프로그램 <극한직업>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고난도의 숙련이 필요하거나 보통 사람은 견디기 힘든 악조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이런 극한직업군에 우체국 집배원이 포함된다면 믿겠는가.

우편 집배가 평온한 업무처럼 보이지만 데이터를 놓고 살피면 그렇지 않다. 올 들어 2명의 집배원이 순직했다. 지난 6월 10일 강원 인제군 기린우체국 소속 박상권 집배원(25)이 교통사고로, 7월 27일 경기 용인우체국 차선우 집배원(29)이 급류에 휩쓸려 각각 숨졌다. 이렇게 순직한 집배원이 2003년부터 지금까지 22명에 이른다. 매년 2~3명이 업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셈이다.

김명룡 우정사업본부장(가운데)과 이항구 전국 우정노조위원장(오른쪽), 백헌기 한국산업안전 보건공단 이사장(왼쪽)이 지난 11월 10일 우체국 종사원의 안전과 재해율 감소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부상이나 질병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의 재해자는 328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85%인 278명이 집배원이다. 집배원 재해율(1.79%)은 국내 전체 업종 재해율(0.69%)의 약 2.6배에 이른다.(실제로 EBS는 지난 9월 14일과 15일 2회에 걸쳐 <극한직업>에서 우체국 집배원 편을 방영했다.)

집배원 재해의 대부분은 많은 우편물을 신속하게 배달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전국 3700여개 우체국에는 4만5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집배원은 1만7000여명이다. 연간 처리해야 할 우편물이 약 50억건이라고 하니 집배원 한 명이 하루 1000건 이상을 배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편물 배달에는 1만4000여대의 오토바이(이륜자동차)와 3800여대의 우편차량이 동원된다. 오토바이 사고는 집배원 재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기린우체국 박 집배원도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가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트럭에 치여 화를 당했다.

집배원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위험 요소는 건강이다. 늘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놓치거나 거를 때가 적지 않다. 자칫 위장이나 뇌·심혈관 및 근골격계 질환 등에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전자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소포·택배 물량이 갈수록 늘어나고 대형화하고 있어 집배원의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재해 위험도 그만큼 커지는 추세다.

이러한 극한직업 종사자를 조합원으로 둔 전국우정노동조합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조합원의 건강과 안전일 것이다. 우정노조는 각종 교육과 실태조사, 현장 개선활동 등을 통해 2008년 503명이던 재해자 수를 지난해 328명으로 35%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 11월 10일 사용자인 우정사업본부와 더불어 위험직종 직원에 대한 재해율 감소와 사회적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체결했다. 산업안전보건 활동을 위해 노사가 공동으로 관계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한 것은 정부 부처로는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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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 노사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체결한 협약의 내용은 △위험작업과 직종에 대한 유해·위험요인 제거 노력 △뇌·심혈관 및 근골격계 질환 예방 등을 위한 건강증진활동 지원 △각종 재해의 정확한 원인 분석과 예방 대책 수립을 위한 자료 공유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교육, 안전문화 캠페인 지원 및 공동 추진 등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체계적인 재해 예방 프로그램을 도입, 재해율이 더욱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항구 우정노조 위원장은 “이번 협약이 안전하고 쾌적한 일터를 구현하고 사회적 안전문화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