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대답 없는 ‘1000일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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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투쟁 사업장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쓰는 말이 됐다. 비단 쌍용차만이 아니다. 재능교육, 콜트-콜텍도 대표적인 장기투쟁 사업장들이다. 이들은 거리에서, 천막에서, 문닫은 공장에서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에 대해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아,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곳이 이게 무슨 생지옥이냐. 자고 나면 잘리고 죽이고 불안해서 도대체 못살겠다.”

2월 15일 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의 구성진 노랫소리가 강남대로에 울려퍼졌다. 트로트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들썩이는 김 지부장의 노래에 촛불을 들고 모인 120여명의 사람들은 웃음과 환호로 그의 노래에 답했다. 

이날은 집단 정리해고에 반대해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 지 1000일째 되던 날이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도 역삼동 마힌드라 사무실 앞에 모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촛불을 들었다. 도로 건너편의 행인들은 고개를 돌려 집회현장을 바라보다 이내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했다. 3년 전 늘 퇴근하던 공장에서 쫓겨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지난 1000일의 기억은 김 지부장의 노랫말처럼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2월 11일 오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희망텐트 3차 포위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쌍용차 투쟁 1000일 째, 대답 없는 사측
2009년 5월 25일, 쌍용차 노동자들은 곧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파업에 참여했다. 77일간의 파업 끝에 8·6 노사대타협이 이루어졌다. 무급휴직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19명의 복직이 약속됐다. 그러나 1000일이 지난 지금까지 공장으로 돌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쟁과도 같았던 파업과 그에 따른 후유증으로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는 신체적·정신적 상처만 깊이 남았다. 그러는 사이 세상을 등진 쌍용차 해고노동자만 21명이다. 1000일을 이틀 앞둔 2월 13일에도 희망퇴직자 한 명이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집회장소 한편에서는 ‘쌍용차 희생자 21명 제위’ 위패가 놓여진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애써 유쾌한 듯한 집회 분위기에도 이따금 향냄새가 묻어났다.

잇따른 해고노동자들의 죽음과 해고자 가족의 위기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이 문제에 대답해야 할 정부와 회사는 아직 아무런 답이 없다. 권지영 쌍용차가족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1000일 동안 일상이 너덜너덜해지고 파괴됐다”며 “천하루, 천이틀. 이 날짜를 더는 세지 않도록 이제는 회사가 답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기투쟁 사업장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쓰는 말이 됐다. 비단 쌍용차만이 아니다. 재능교육, 콜트-콜텍도 대표적인 장기투쟁 사업장들이다. 이들은 거리에서, 천막에서, 문닫은 공장에서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에 대해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1000일을 넘어 1500일, 1800일이 지나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들의 물음과 이를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침묵은 2012년 한국 사회의 노동현실을 보여주는 현주소다. 장기투쟁 사업장의 싸움은 비단 해당 개별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1500일을 넘긴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의 싸움은 재능교육을 넘어 가짜회원제 등 부당노동을 강요하는 학습지 회사와의 싸움이다. 나아가 화물 노동자, 덤프트럭 노동자, 학습지 교사 등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특수고용직으로 분류하고 있는 제도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2007년 12월 21일에 투쟁을 시작한 재능교육 특수고용직 노동자 12명은 2월 15일 현재 1518일째 서울광장 앞에서 천막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노조가 회사에 요구한 것은 노조활동 과정에서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과 노조 및 단체협약에 대한 회사 측의 인정이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

1월 28일 해고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이 복직 등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500일을 맞았다. | 연합뉴스


그러나 회사는 학습지 교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노조 및 단체협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가 기대고 있는 법적 근거는 특수고용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고 규정해버린 2005년 대법원 판결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이전에 학습지 노조는 이미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오수영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은 “1999년에 재능교육에서 노조를 만들었고 그해 겨울에 노조설립필증을 받았다. 노조 대표가 바뀌고 사무실이 바뀔 때마다 설립필증도 갱신받았다”며 “실제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것은 10년이 넘은 역사인데 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느냐”고 비판했다. 현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레미콘 기사, 보험설계사, 택배, 퀵서비스 기사 등의 특수고용노동자는 약 200만명으로 사업자 성격보다 노동자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법적으로 자영업자 신분이라 법정근로시간과 4대보험, 고용보험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특수고용노동자가 처해 있는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학습지 교사의 경우 ‘가짜회원’ 같은 부정영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업을 하지 않는 회원들의 명단을 임의로 올려놓고 회사가 교사 급여에서 유령회원의 회비를 빼가는 식이다. 회비를 학부모가 내지 못했을 때에는 그 회비를 교사에게 전가해 급여에서 빼가기도 한다. 오 국장은 “노조가 사내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는 그런 제도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난 10년 사이에 그런 제도들이 당연한 것처럼 시행되고 있다”며 “현장 교사들의 불만이 누적돼 있어 노조가 생기면 이런 불만이 폭발하는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회사는 더더욱 노조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국장은 이 싸움이 재능교육이라는 개별 자본과의 싸움만은 아니라고 전했다. 

그는 “회사와 단체협상을 체결한 노조가 인정을 못받고 있는 것은 단지 그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의 한 축이다”라고 말했다.

1800일이 넘게 생산을 멈춘 공장에서 천막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콜트-콜텍 노조의 싸움도 개별사업장만의 투쟁이 아니다. 콜트-콜텍은 기타 생산업체로, 콜트 기타는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한다. 콜트-콜텍 노조의 싸움은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기지를 돌리고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막연한 핑계로 노동자들을 부당해고하는 국내 제조업체 자본과의 싸움이다. 익숙한 이야기다. 이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309일 동안 크레인에 올라가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건설하고 그곳으로 선박 수주 물량을 집중하면서 영도조선소의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됐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희망텐트’ | 연합뉴스


콜트-콜텍은 10년째 흑자경영을 해오다 2006년에 8억5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입는다. 2007년 3월 회사는 이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공장 문을 닫아버렸다. 방종운 콜트노조지회장은 이를 “위장폐업”이라며 “1995년에 이미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한 회사가 해외 공장이 정상궤도에 올라서자 폐업을 가장해 노동자들을 해고했다”고 말했다.

공장 해외 이전 후 노동자 해고
법원도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방종운 지회장은 수북이 쌓여 있는 판결문과 서류더미들을 보여줬다. 회사의 위장폐업과 부당해고를 입증해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난 1800여일 동안 46건의 재판을 거쳐왔다. 노조는 대부분의 재판에서 이겼다. 회사의 정리해고는 부당하며 이에 따른 해고무효를 확인하는 판결이 잇따라 내려졌다. 그러나 회사 측은 계속해서 항소를 이어가며 버티고 있다.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마지막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게 벌써 2년 5개월째다.

방 지회장은 “만약 재판에서 회사 측이 이기게 되면 다른 국내 제조업체 기업들도 해외에다 공장을 짓고 국내 공장의 문은 닫아버리는 식으로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할 것”이라며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해고의 범위가 넓어지거나 좁아질 수 있기 때문에 콜트-콜텍의 싸움은 다른 사업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회사가 이기게 된다면 국내 공장은 사실상 남아나는 데가 없을 것”이라며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국내 제조업체 노동자들은 파리목숨이 된다”고 말했다.

장기투쟁의 날짜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싸움도 계속된다. 오수영 사무국장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노동현장에서 멀어지고 노동조건이 악화되면서 이 싸움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1000일이 넘고 1500일 되면서 이 숫자가 우리에게 중압감을 준다. 이 숫자가 가지는 사회적 책임감이 커져서 지금은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방종운 지회장도 “무언가 정지되어 있고 우리를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자본도 끈질기지만 우리가 더 끈질기기에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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