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집배원복의 진화

이상봉 디자이너가 유일하게 즐기는 운동이 탁구다. 그는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가 입는 유니폼이 일본에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현정화 감독의 얘기를 듣고는 흥분했다. 일본에서 만드는 것만도 자존심 상하는데, 일본 국가대표의 것보다 디자인이 촌스러워 속상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런던 올림픽에 입고 갈 탁구선수의 유니폼을 그가 자청해서 다자인하게 된 사연이다.

유니폼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규율과 권위다. 예컨대 수인복(囚人服)은 규율의 성격이 강하고, 법복(法服)은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제복은 이 두 요소를 다 갖고 있다.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서, 또는 그 모양과 품질에 의해서 어느 한쪽의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똑같은 교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탈선하려는 학생은 속박감을, 모범생은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그 학교가 학생을 잘 가르쳐 명예를 드높이거나 교복이 입기 편하고 멋까지 있다면 자부심을 느끼는 학생이 더 많고, 그 강도도 클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배원복 거리 워킹쇼에서 이상봉 디자이너(가운데)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집배원 모델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6월 13일 새 집배원복의 디자인을 공개했다. 이상봉 디자이너와 함께 서울 청계광장에서 여름용과 겨울용 각각 6종씩 약 50피스에 이르는 집배원복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열었다. 새 집배원복 디자인은 우정본부 블로그와 SNS를 통한 국민 선호도 조사와 집배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6월 말 확정한다. 집배원은 오는 10월부터 새로 채택한 유니폼을 입고 우편물을 배달하게 된다.

새 집배원복은 한글 문양으로 유명한 이상봉 디자이너가 약 5개월 동안 작업해서 탄생한 것이다. 집배원복은 실용성이 생명이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도시부터 시골마을까지 어디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집배원의 업무 특성상 기능성과 편리성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즉 질기고 때가 덜 타고 보온이 잘 되고 땀 배출이 잘 되고 활동하기 편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이제까지 집배원복은 대개 10년 정도마다 기능성 위주로 개선이 돼 왔고, 그러다 보니 품위나 세련미를 높이는 데는 상대적으로 덜 신경을 썼던 게 사실이다. 국민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집배원의 옷이 촌스러워서야 되겠는가. 이상봉 디자이너는 4개월 전 가진 인터뷰에서 탁구 국가대표 유니폼과 더불어 집배원복을 디자인하는 데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긍심이다. 그는 “사랑의 전달자로서 묵묵히 일하는 집배원을 위해서 실용성뿐만 아니라 멋과 의미를 담고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유니폼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체국 문양과 우정사업본부 CI 색상(빨강·주황·노랑)뿐 아니라 한글 문양, 편지봉투와 우체통 형상, 야간의 안전성을 위한 야광효과 등 여러 요소를 디자인에 적용했다.

우정이야기 구독

옷이 날개라는 말 속에는 남 보기에 좋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가짐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인 새 집배원복이 1만7000여 집배원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진정한 ‘날개’가 되었으면 한다.

<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