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우취인 손기정’

우취(郵趣)란 우표를 수집·연구하는 취미를 말한다. 우취를 뜻하는 영어 philately는 그리스어 philos(사랑하다)와 a(부정), telein(세금을 부과하다)의 합성어로서, ‘우편세를 납부한 증지를 사랑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단순히 우표를 모으는 차원을 넘어 우표 및 관련 자료를 심층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이 분야에서 우표수집이나 우표수집가 대신 우취나 우취인이라는 표현을 보편적으로 쓴다.

우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1931년에 창설된 국제우취연맹(FIP)이 정해놓은 수집 방법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전통우취, 테마틱우취, 우정사, 항공우취. 맥시마필리, 스테이셔너리, 우취문헌, 청소년우취, 현대우취 등 여러 분야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 전문적으로 모으는 게 좋다. 전통우취는 특정한 나라의 특정한 시기의 우표를 수집·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기념우표나 시리즈우표보다 보통우표를 대상으로 해서 인쇄와 관련한 기술적인 세부사항, 즉 천공·용지·쇄색·풀·제판 등의 차이점을 수집·분류하는 방법이다. 테마틱우취는 개인적인 흥미나 관심에 따라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계획적으로 수집한 우표류와 우취자료를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한국우취연합은 이 두 가지 방법을 가장 대표적인 수집 방법으로 꼽는다.

지난 8월 9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2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서 김명룡 우정사업본부장(맨 오른쪽)과 어린이들이 손기정 선수의 청동투구, 메달, 기념우표를 관람하고 있다.

지난 8월 9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2012 대한민국 우표전시회’가 열렸다. 우정사업본부가 주최하고 한국우취연합과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연례행사다. 올해로 54회째인 이 행사에 12개 부문 187점의 우취 작품이 출품돼 91점이 선정돼 전시됐다.

대상작은 한국인터넷우취 김기훈씨가 출품한 테마틱우취 부문의 ‘맛의 역사’다. 요리에 대한 세계적인 희귀자료를 망라해 역사적 사건과 맛의 연관성을 우취적으로 잘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막일인 8월 9일은 76년 전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날이다. 올해가 2002년 작고한 손 선수의 탄신 100주년이기도 하다. 그는 베를린올림픽 최고 영웅이었지만 시상대에서 고개를 떨구고 망국의 한을 삼켰다. 태극기를 들고 처음으로 참석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기수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성화 최종 주자로 뛰었다. 그는 우취인이기도 해서 스포츠와 역사 등 다양한 방면의 우표와 관련 기록을 남겼다.

더욱이 올림픽은 우취문화와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개최국이 반드시 올림픽우표 전시회를 열도록 명문화해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시행한 바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이번 전시회에 올림픽기념관이 따로 마련돼 손 선수의 수집품과 유품을 함께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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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손 선수의 손때 묻은 우표첩과 76년 세월에 변색된 축하 전보, 마라톤 우승 메달, 부상으로 받은 청동투구, 마라톤 신발, 기념우표 등이 관람객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 올림픽과 영욕을 함께 한 그의 드라마 같은 생애의 이면에 우취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손 선수는 청년 시절부터 스포츠 우표 수집에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스포츠 테마틱우취로 나타났는지, 반대로 그 우취로 인해 스포츠 열정이 더해졌는지 궁금하다. 아마 두 가지가 상승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 스포츠계의 거목을 키운 밑거름이 우취였다면 굉장한 일이지 않은가.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