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복지의 메신저’ 집배원

지난 2월 26일 복지업무를 담당하던 경기도 성남시의 한 여성 공무원이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일하기 힘들고 어렵다”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보아 과중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투신자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국민행복’을 국정의 최고 가치로 삼고 ‘국민 맞춤형 복지’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설정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바로 그 다음날 복지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일이다.

당장 도마에 오른 것은 복지 전달체계였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전달체계에 문제가 있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려진 것은 복지공무원의 업무 과중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죽은 성남시 공무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166가구 290명을 가정방문해 돌보고 경로당 17곳을 순회방문해서 매월 수당업무 등을 챙기며 장애인 1020명, 보육료·양육수당 대상자 2659명, 기초노령연금 신청대상자 800명 등 20여 가지 사회복지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혼자 수천명을 담당하다 보니 늦게까지 야근하기 일쑤인 데다 대민 접촉이 많은 업무 성격상 스트레스가 컸을 것은 불문가지다.

지난 2월 19일 서울중앙우체국 10층 대회의실에 열린 2013년 우정사업본부 공익사업 킥오프 행사에 참석한 어린이·집배원 등이 사랑의 하트와 지킴이 우산을 펼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뜬금없이 복지공무원 얘기를 꺼낸 까닭은 그것이 ‘우정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일의 강도와 대민 접촉이라는 업무 성격 측면에서 집배원은 복지공무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게 없다. 매일 낮에는 2000~3000통의 편지와 소포, 택배 물품을 배달한 뒤 이를 정리하고 다음날 업무를 준비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게 집배원이다. EBS의 ‘극한직업’ 시리즈에 소개될 정도로 업무와 관련한 사고사, 과로사가 어느 공무원 직종보다 많다. 매년 300명 안팎의 집배원이 업무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부상, 질병에 시달린다. 집배원 재해율은 국내 전체 업종 재해율의 2~3배에 이를 정도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대민 접촉 부분에서도 집배원은 복지공무원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크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게 기본 업무지만 매일 주민과 접촉하다 보니 개개인의 사정까지 잘 알게 되고, 그래서 온갖 대소사에 관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동네 어르신의 약 심부름을 비롯해 말벗이 되는 것은 일상사에 해당한다. 사고 목격과 구조, 응급환자의 구급, 범죄현장의 범인 검거, 화재 발견과 조기 진화 등 119구급대·소방관·경찰·산림감시원 등의 역할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집배원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를 넘어 복지를 실천하는 ‘사랑의 메신저’로 통한다. 실제로 집배원 봉사단체인 ‘365봉사단’이 전국적으로 190개팀 1만여명 활동하고 있다.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눈에 보이는 일들을 외면할 수 없다 보니까, 지역별 특성에 따라 봉사조직이 생겨난 것이다. 경기도 포천우체국의 주민 불편사항 모니터링과 독거노인 돌보미, 파주우체국의 범죄 예방을 위한 순찰, 동부산우체국의 아동 안전 수호천사 및 독거노인 사랑의 연탄 배달, 전남 구례우체국의 무료 이발 봉사 등 이름만 보더라도 지역의 특성을 알 수 있는 활동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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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부문이 업무의 특성을 잘 살려서 주민 복지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역할을 맡는다면 복지 전달과정에서 효율성과 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우정노조 등에서도 그런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꿰지 않은 구슬은 보배로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2월 19일 81억원 규모의 금년도 공익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소외 불우이웃,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조손가정, 결식아동, 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 저소득 장애인, 무의탁노인, 소아암환자, 학대피해아동 등이 대상이다. 복지는 이미 우정의 일부가 되었다. 복지공무원의 죽음이 ‘우정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신동호 경향신문 논설위원 hud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