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천안함 프로젝트> 법적 분쟁 왜?

표현의 자유, 한계와 성역의 경계는

1969년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아폴로 11호 유인탐사선이 달 표면에 착륙했다. 달 표면에 성조기를 세우는 장면이 전 세계로 중계됐지만 이때부터 지구촌 곳곳에서는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1972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개신교 근본주의 단체의 주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달 착륙 조작 음모론은 냉전 시기였던 만큼 소련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조작이었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음모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정부나 NASA가 음모론을 주장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법적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2010년 서해상의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훈련 중 선체가 반으로 갈라져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선체를 인양하고 침몰 원인을 파악하는 데만도 두 달 가까운 기간이 필요했다.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를 포함해 구성된 민·군 합동조사단이 내린 결론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맞아 폭침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합동조사단의 최종 발표 이후에도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두고 좌초설, 타 함정 충돌설, 기뢰 폭발설 등을 주장하며 공식 발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군은 합동조사단에서 민간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신상철 <진실의 길>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2010년 4월 24일 백령도 남쪽 해상에서 천안함 함수가 절단면에 그물망을 덮은 상태로 인양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미국과 한국 정부의 다른 대응방식에 주목했다. 공식 보고서의 분석 내용에 의문을 품는 시각을 제한하려는 정부의 대응이 시민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막고 있진 않은지 묻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법적 분쟁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7일 해군 장교들과 천안함 유족회가 영화의 사실 왜곡과 천안함 장병 명예훼손을 이유로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영화 보지도 않고 상영금지 신청”
이 영화를 만든 영화사인 아우라픽쳐스 측은 해군과 유족 측이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영화 내용을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는 천안함이 침몰한 직접적인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공식적인 결론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의문점들을 살펴보고, 이 의문점들을 규명하길 꺼리는 사회의 경직된 단면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또 영화사 측은 천안함 장병들에 관한 내용을 다룬 것도 아니어서 천안함 장병들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장면도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영화를 만든 백승우 감독은 “반증 사례가 나오면 얼마든지 기존의 답을 뒤집을 수 있어야 하고, 이미 내려진 결론이라도 의혹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영화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며 “영화를 보지도 않고 상영을 못하게 하는 것이 나로선 더 답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합동조사단의 보고서 내용에 따라 천안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는 국방부의 발표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북한 잠수정이 서해상으로 침투한 뒤 천안함의 스크루 소리에 감응하는 중어뢰를 발사했고 피격당한 천안함은 함수와 함미가 갈라지며 46명의 장병들과 함께 가라앉았다’는 조사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혹이 묻혔다는 부분이 영화의 뒷부분을 차지한다. 천안함 선체와 북한제 어뢰의 추진체 잔해를 건져올린 후 이어졌던 관련 전문가들의 의혹이 반복된다. 의도대로 주어진 결론에 매달린 나머지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소통 부재의 현실을 지적하고 있지만, 직접적 당사자인 천안함 장병들의 이야기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영화 제작과정 유족과 소통 없었다”
해군과 유족 측은 영화가 소통을 말하면서 자신들과는 소통하지 않았다는 점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의 이유 중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을 바다에 묻은 유족의 입장에서 이 영화가 자신들에게는 불편한 의도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천안함 유족회의 이인옥 회장은 “영화를 만드는 것을 막는다든가, 관객들에게 상영되는 것을 막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설령 영화 내용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유족들을 만나 유족의 마음을 읽으려는 시도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랬더라면 소통을 말하는 이 영화가 진정으로 소통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천안함 침몰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대로 단순한 사고나 사건이 아니라 장병들과 자신들의 생사문제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제작진이 알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가처분 신청에서 변호인을 맡은 김양홍 변호사는 “(영화사 측에서)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지만 이미 확실한 결론이 나온 사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을 넘어 잘못된 사실로 왜곡하는 것까지 표현의 자유로 볼 수는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영화 내용을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영화가 명예를 훼손한다고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김 변호사는 “영화는 보지 못했어도 간접적으로도 영화의 전체 내용을 파악했기 때문에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영화가 제기하는 의혹이 좌초설을 중심에 두고 다루고 있는데 이 경우 해군과 유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어뢰가 아니라 좌초 때문에 침몰했다는 의혹은 침몰 이유를 당시 천안함 장병들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된다는 논리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아직 법정의 판단을 예측하긴 힘들다. 2011년 TV 맛집정보 프로그램 제작과정의 뒷돈 거래와 같은 이면을 폭로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 역시 문화방송사로부터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된 바 있지만, 당시 법원은 <트루맛쇼>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반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2005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는 일부 장면 삭제 후 상영이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문제에 대해 영화평론가 허지웅씨는 경향신문에 낸 기고에서 “명예를 훼손당한 당사자는 이를 법에 호소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내용에 대해 누구나 어디서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할 수는 없다”고 평했다.

영화사 측은 9월 개봉 계획을 그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군과 유족 측은 만일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이와 별개로 영화의 명예훼손 소송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 영화는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만 두 차례 상영된 뒤 아직 일반에 널리 공개되지는 않았다. 만일 영화사의 계획대로 일반인에게 영화가 개봉된다면 전주영화제 당시의 관객들과는 달리 관객들은 한 가지 문제를 더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의도처럼 천안함 사건이 과연 한국 사회의 소통문제와 연결되는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관객들은 이제 영화 상영을 두고 벌어진 논란이 표현의 자유와 소통의 문제를 반영한 것인지 아닌지도 판단해야 하는 셈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