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일본 넷우익 보면 일베 앞날 보인다

어디로 튈지 점치기 어렵지만 ‘기성 보수우익세력과의 차별화’와 ‘극단적 국가주의’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 높아

“마루야마 마사오를 때리고 싶다. 31살 아르바이트생. 전쟁을 희망한다.”
2007년 일본의 월간지 <론자(論座)>에 실린 한 아르바이트생 청년의 글 제목이다. 그의 이름은 아카기 도모히로. 그가 때려주고 싶다는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다.

마루야마는 군대와 침략행위를 불허하는 ‘평화헌법’ 수호 활동으로 유명한 지식인이다. 아카기는 마루야마로 대표되는 일본의 전후 지식인 계층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며, 그동안 우익세력에서도 금기시됐던 전쟁이란 단어를 논쟁의 장으로 이끌어냈다.

배척ㆍ조롱하는 일본 우경화 닮아
우익 성향의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추천과 비추천을 표현하는 문구로도 등장하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구도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오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와 비슷한 대립구도가 개헌과 호헌의 갈등구도로 자리잡았다.

“일본의 ‘전후체제’가 한편에 있는 호헌과 평화주의 세력에 의해 지탱돼 왔다면 전후체제가 붕괴된 이후의 세대에게는 이러한 호헌·평화주의 세력 역시 타도의 대상일 뿐이었다.”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일본학)는 <일본 전후의 붕괴>에서 아카기의 등장을 언급하며 일본의 청년층에서 나타난 우경화가 전후체제와 버블경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청년층의 하위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넷우익의 행보를 보면 ‘일베’로 대표되는 한국의 온라인 우익세력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분석은 냉전 이후 양국 국민들의 사회·문화적 경험이 비슷하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에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신청사태가 대응된다. 일본의 넷우익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는 조선인의 자리에다 한국의 온라인 우익세력은 ‘전라도’, ‘여자’, ‘외국인 노동자’를 대입하는 식이다.

권 교수는 “새로운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을 내건 청년층은 전후 민주주의라는 말로 표현되는 ‘좌측’의 언어를 기득권층의 언어로 받아들이면서 거부감을 보였는데, 여기에는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 탈정치적인 문화양식이 결합됐다”고 지적했다. 민주화 세력을 자임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는 일베의 행태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권 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는 청년층의 경제적 특성이 문화적인 측면에서 기성체제를 부정하는 하위문화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한다. 앞서 전쟁을 옹호하는 아카기의 모습이나 ‘옴 진리교 사건’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아마미야 가린의 예에서 하위문화적인 속성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일베 현상 역시 기성체제에서는 배척되는 조롱과 비난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표방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우경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향후 ‘일베’의 움직임은 일본 넷우익의 전철을 밟을까. 관련 전문가와 연구자들 모두 ‘일베 현상’이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경화 움직임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면서도 단순히 정치적·이념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춰서 볼 경우 복잡한 면모를 포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바꿔 말하면 일베 역시 어디로 튈지 쉽게 점칠 수 없고, 일본의 예를 그대로 따라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여러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대체로 일치하는 부분은 ‘기성 보수우익 세력과의 차별화’와 이에 수반되는 ‘극단적 국가주의’의 모습이다.

한국의 일베 역시 일본의 넷우익과 마찬가지로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오프라인으로 튀어나올 것으로 보는 대표적인 사람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다.

야스다가 넷우익이 온라인상의 활동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에서의 조직적 활동에 나선 사례로 지목한 ‘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의 경우 2007년 설립 이래 5년 만에 회원수 1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급속도로 성장한 단체다.

야스다는 “재특회의 과격시위에 반감을 가지고 탈퇴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비슷한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내부 혹은 외부에 적을 상정하는 국가주의적 정서가 한국에서도 인터넷 상에서뿐 아니라 조직적인 측면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베의 조직적 세력화 가능성의 대표적인 근거로는 한·일 양국의 문화적 유사성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국가주의가 발흥한다는 점 역시 거론된다. 일베에서 유래한 극우 정치세력이 정치권으로 진입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을 중심으로 결성된 일본 유신회가 자민당과는 다른 정치적 입지를 내세워 자리잡았다. 야스다는 “한 나라 안에서 경제계층이 양극화되면서 이민 노동자들에게 비난을 돌리는 극우세력이 정당과 같은 정치조직으로 발전하는 것은 유럽과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애국심을 내세우는 세력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경향 역시 보편적”이라고 밝혔다.

조직적인 결합 가능성은 낮아
그러나 일베가 일본의 넷우익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지만 일본에서도 기성우익과 넷우익의 대조된 행태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한국의 일베가 조직적인 세력으로 집결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고려대 일본연구센터의 김효진 교수는 “넷우익은 혐한과 혐중 정서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결과인데,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국가의례 도입에 동의하는 등의 우익적 성향은 띠고 있지만 확성기를 들고 도심에서 선전활동을 벌이는 모습의 기성우익과는 이질적인 세력”이라며 “기성우익과 넷우익의 가장 대표적인 차이가 천황제를 신성시하는 기성우익에 비해 넷우익은 천황제라는 이념적 요소 대신 국가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베 사이트 이용자가 ‘일밍아웃’이란 이름처럼 자신이 일베 회원임을 밝히기 꺼리는 정서가 일본에서도 유사한 점을 보면 일베의 조직적 오프라인 활동도 일부에만 국한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경희사이버대 NGO학과 민경배 교수 역시 일베를 포함한 온라인 우익세력의 발흥은 온라인이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인터넷 상에서 나타나는 우경화는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각국들이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불거지게 되는 현실적인 민족 갈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온라인에서의 논의는 현실에서의 갈등을 반영해 번져간 것이기 때문에 역으로 현실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