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아빠는 언제 쌍용차에 다시 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지난 5년은 악몽의 시간이었다.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달라지는 것도 없다. 쌍용차 사측이 즉각 상고 방침을 밝혀 대법원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 복직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사측과 경찰이 노조에 청구한 4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도 살아 있다. 그렇지만 가족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영원히 잃어버린 줄 알았던 희망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권지영씨(40)는 15세 된 딸과 9세 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남편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 서진군은 학교가 끝나면 와락(해고노동자와 그 가족을 위한 심리치유공간)에서 다른 해고자 자녀들과 어울리곤 한다.

서진군이 요즘 들어 생각날 때마다 엄마에게 묻는 말이 생겼다. “아빠는 언제 다시 쌍용차에 가는 거야?”

서진이도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게 분명하다. 서진군이 이 말을 할 때마다 엄마 눈에선 눈물이 글썽거린다.

14일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정리해고 무효 소송에서 승소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해고 통지서를 찢어 공중에 날리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승소 순간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벌렁
권지영씨는 서울고등법원에서 2009년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를 무효라고 판결한 지난 2월 7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한다. 재판이 끝나자마자 권씨는 남편 이금주씨(41)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반응이 희한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전화기 너머로 ‘으아~’ 하는 소리밖에 안 들리는 거예요. 근데 그게 정말 괴물같이 큰 소리여서 깜짝 놀라서 전화를 끊을 정도였어요.”

권씨와 동료들은 평택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각자의 부모들에게 재판 승소를 알렸다. 권씨의 시부모는 “당장 복직이 되는 거냐. 언제부터 출근하냐”며 기뻐했다. 권씨만이 아니라 동료들 모두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는데 얼마 뒤 말들이 사라졌다. 권씨는 “버스 안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만 계속 이어졌다”고 말했다.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쌍용차 사측이 즉각 상고 방침을 밝힌 만큼 대법원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 복직 여부가 최종 결정될 터이다. 사측과 경찰이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 청구한 4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도 그대로 살아 있다.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을 뿐
그렇지만 권씨에겐 달라진 게 있다. 영원히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희망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희망이 생기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와 자신감도 생겼다.

“2008년 겨울에 대량해고가 있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고, 몇 달 뒤에 해고 통지서를 받았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특별히 기쁜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긴 거예요. 판사님이 판결문을 읽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으면서 파업 때부터 지난 5년의 시간이 머릿속에 마치 영화처럼 지나가는 거예요.”

그 영화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다.

권씨를 비롯한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들은 2009년 파업 이후 5년간 경제적·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아내들은 대부분 백화점 판매원이나 계산대 직원(캐셔), 어린이집 보조교사 등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해고자 가족의 85% 이상이 5000만원가량의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말도 있다.

14일 경기도 평택시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권지영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무엇보다 이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살하는 동료들을 지켜보는 것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숨결보고서에서 한 해고자의 아내는 “어느날 자다가 꿈을 꿨는데 꿈에서 제가 자살을 하는 거예요. 그게 꿈인데 제가 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권씨의 처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쌍용차노조 대의원이었던 남편은 파업 이후 두 달 정도 구치소 생활을 했다. 출소한 뒤에는 1년여를 우울증에 시달리며 보냈다. 툭하면 가족들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나서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남편이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뭘 하려고 해도 다 안 되니까 짜증을 되게 많이 냈어요. ‘당신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아’라고 말을 해도 조금 듣는 것 같다가 다시 저한테 막 화를 내기도 했죠.

술을 많이 먹고 와서 가족들에게 한탄하고 화풀이를 한 적도 있었고요. 그러면 저도 똑같이 대응하게 되고 그게 싸움이 됐죠.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들어선 가정들은 아이들이 아빠에게 불만을 터뜨리기도 하고, 아예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씨는 석방 이후 찾아온 우울증으로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다가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보험설계사 등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현재 이씨는 일용직으로 살며 2주에 한 번 정도 집에 들어온다. 일명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는 현대제철소에서도 일했다고 한다.

가족들도 힘이 됐던 것은 아니었다. 명절 때만 되면 친척들이 저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해 한마디씩 거들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해고자들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와락을 하면서 가족들로부터 위로와 지지를 받기보다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아내들 중에도 ‘내 남편이 답답한 사람이어서’ ‘노조 지도부가 잘못해서’ 정리해고가 됐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자기 남편에게 쌍용차에 목매지 말고 붕어빵 장사라도 해도 좋으니 아예 이곳을 떠나자는 분들도 계세요. 저희 시댁도 비슷했죠.

2009년 파업할 때 시댁에서 계속 전화가 와서 위험하니까 당장 나오라는 이야길 들었어요. 파업이 끝난 뒤에는 쌍용차에 미련을 갖지 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파업 이후 동료들이 죽고, 본인도 무섭고 공포스러운데 부모님, 누나, 형 이런 사람들이 전화해서 그만두라고 하니까 시달림을 많이 받는 거죠. 명절 때 구석에서 혼자 있다가 오는 때도 있었죠.”

2011년 10월 정혜신 박사의 주도로 와락이 세워졌고, 2012년 3월부터는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농성이 시작됐다. 대한문 앞 농성이 시작된 결정적인 계기는 정리해고자 이윤형씨의 자살사건이었다.

2012년 1월 해고무효소송 1심에서 패한 뒤 이씨는 항소를 포기하고 평택을 떠나 경기도 김포로 이사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세상을 뜬 것이다. 가족도 없이 살던 이씨가 외로움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은 극심한 고립감에 시달렸다.

권씨는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에게만 무슨 전염병이 들어서 죽고 싶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많았다”고 말했다.
“파업 기간 중 노동자 가족들끼리 친자매 이상으로 정이 많이 들었는데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우리 잘못이라고 하니까, 너무 힘든 시간이 계속되니까, 우리끼리도 얼굴 보기가 싫어졌어요. 우리는 풀지 못한 게 있는데 세상은 쌍용차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을 했죠.”

징계해고자ㆍ희망퇴직자 마음은 어떨까

2012년 대선 때는 유력 대선후보들이 앞다퉈 쌍용차 문제 해결을 외쳤고,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의 철탑농성장을 찾은 후보도 있었다.

지난해 3월에는 무급휴직자들의 복직도 이뤄졌다.
“무척 기뻤어요. 복직을 축하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정리해고자 문제는 언제쯤 해결이 될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죠. 다 들어가고 우리만 남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곧이어 대한문 농성장이 강제철거되고 회사나 국회에서도 해고자들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재판 전망도 밝지 않았다. 권씨는 재판에서 승소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법원에서 4차례에 걸친 조정기간이 있었지만 노사 양측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재판의 쟁점이었던 쌍용차의 회계조작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선임한 감정인인 최종학 서울대 회계학과 교수가 해고자들에게 불리한 감정 결과를 발표했다. 가라앉은 마음이 대답 없는 절망으로 변해가는가 싶었을 때 재판 결과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이번 재판 결과가 잘 나와서 기분이 좋지만 징계해고자와 희망퇴직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할까, 그동안 잡았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권씨가 바라는 것은 크지 않다. 지난 5년간 임금과 위로금을 다 받아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리해고자, 징계해고자들이 원래 있었던 자리에 가서 다시 주야간 맞교대 근무를 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처럼.

“저희 보고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이번에 처음으로 법원이라는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너희 잘못이 아니다’라는 걸 인정받았잖아요. 당장 복직은 안 되더라도 그동안 서러움과 억울함이 조금은 이해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남편도 괴성을 질렀던 게 아닐까요.”

서러운 세월의 억울함을 이해받았다는 생각만으로도 권씨는 힘이 난다. “아빠는 언제 다시 쌍용차에 가는 거야?”라는 아들의 질문에도 답을 해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응, 아빠 내일부터 쌍용차 다시 나가. 서진이도 좋지?”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