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GGGI 스캔들과 의혹 “MB 청와대 때문에…”

덴마크 언론, 라스무센 의장의 ‘밤의 친구’ 보도… GGGI 내부인사 “청 명령 탓 추문 막을 수 없었다”

“덴마크 정부는 GGGI를 지원하는 데 남기로 했다.”
2월 19일 오후 3시(현지시간) 모운스 옌슨 덴마크 무역개발장관이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GGGI의 문제점이 해소되는 과정이 계속되는 한 덴마크의 지원은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GGGI가 조언하고 있는 나라에 나가 있는 사무실의 재정관리 문제도 해결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감사보고서를 받았다.”

옌슨 장관의 언급은 덴마크 언론을 비롯해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 나라들의 언론들이 지난 수개월간 제기해온 ‘의혹’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었다. 이날 덴마크는 앞으로 3년 동안 9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새로운 계획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덴마크에서 연일 불거지고 있는 ‘GGGI 스캔들’의 중심지인 한국의 GGGI 본부. 서울 중구 정동에 자리잡고 있다. | 김석구 기자

글로벌녹색성장기구(Global Green Growth Institute·GGGI). 한국이 주도해 만들어낸 국제기구로 서울에 본부가 있다. 2008년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을 천명한 뒤 추진돼 만들어진 기구다.

2012년 6월에 한국, 덴마크, 영국, 호주, UAE 등의 나라들이 설립협정을 맺고, 그해 10월 비준을 거쳐 설립이 공식화됐다. 재단법인의 형태로 있다가 지난해 6월 정부 비준을 받아 정식 국제기구가 되었다. ‘녹색성장’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어젠다였다.

GGGI는 개발도상국의 ‘발전’의 길이 녹색성장에 있다는 비전 아래, 주로 아시아·아프리카 정부들에 녹색성장 어젠다를 조언하는 역할을 해왔다. 국내에서 관련 보도를 검색해 보면 지난해 12월 유엔총회에서 옵서버 자격을 획득했다는 보도가 가장 최근 소식이다. 순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덴마크에서 ‘GGGI 스캔들’이 벌어지면서 북유럽쪽 상황은 전혀 달랐다. ‘GGGI 스캔들’은 일부 인터넷매체를 통해 간략하게 소개되었지만, 그 후 소식은 거의 국내에 전해지지 않았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스캔들’
지난 2012년 11월, 감사원은 ‘GGGI에 대한 정부 지원예산의 회계집행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서를 냈다. 국회 요구에 따른 것이다. 대선 한 달을 앞둔 시점이었다.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의외로 이 사안은 묻혔다.

GGGI는 4대강 사업이나 원전 수주와 같은 ‘끝물’ 정부인 이명박 정부의 일로 치부되었다. 북유럽에서는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한국 감사원의 감사보고서가 다시 핫이슈로 떠올랐다. 북유럽 언론들은 한국 감사원 감사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전무이사였던 리처드 셔먼스는 GGGI의 상임집행이사였다. 감사원에 따르면 그는 한국으로 들어와 집행이사를 맡으면서 집을 구할 때까지 44일을 출장 명목으로 호텔에 체류했다.

실제 주거비용을 확인하지도 않고 최대 집행한도에 맞춰 주택보조금으로 4033만원을 타갔다. 감사원은 주택을 빌리지 않은 채 호텔에 체류한 그에게 3948만원이 과다하게 지급됐다고 밝혔다.

자녀 학비 수당도 약 6400만원이 지급됐다. 2590만원이 초과된 비용이었다. 기타 감사원이 지적한 사항은 많지만 MB정권 시기라 철저하게 파헤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간경향>과 감사원 감사보고서 및 국세청에 제출한 재단법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재무제표 감사보고서 등의 자료를 검토한 김경율 회계사는 “대부분의 업무를 외부용역으로 처리하는 점, 복리후생비가 터무니없이 적은 점 등을 보면 실제 GGGI에 근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직원들이 과연 재단의 목적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을 갖춘 인사들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민주당 우상호 의원을 통해 정권이 바뀐 지난 2013년 GGGI 내부 관계자가 작성한 의혹문건을 입수했다. 외부 회계감사 보고서에 기초해 의문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이 문건에는 김 회계사가 지적한 과도한 외부위탁 의존 문제와 아울러 외부 위탁사업의 감독부실 문제가 지적되어 있다.

“약 80명의 직원 중 GGGI가 정식 채용한 박사급 연구원은 소수이며, 국제기구나 기후변화정책 지원분야의 경험 있는 직원 역시 소수이고, 매킨지 등 외부 위탁사업 업체에 의뢰해 대부분 사업을 사행하고 있음.”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다음이다. “대부분 하위직 직원들은 MB정권 당시 청와대 인턴, 도피성 조기유학 후 무 경력자, 기타 정치적·사회적 연줄로 취직하여 연구나 개발사업 참여 역량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위직(경력 5년 미만) 직원 평균연봉이 5000만~6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보수체계를 유지하여, 심한 예산 낭비 요소가 되고 있음.” 사실일까.

문건 작성 시점은 정권이 바뀐 지난해 5월 말로 추정된다. 당시 야권은 2010년에서 12년까지 GGGI 지원액 169억원 중 약 22억1200만원이 사용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환수를 요구하는 한편, 민간전문인 자격으로 재직하고 있던 김상협 전 청와대 녹색성장환경 수석의 퇴진을 요구했다.

야권은 GGGI의 국회 비준 동의의 조건으로 이 두 가지 사항을 내걸었고, 마침내 관철시킨다. 요구사항은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 장짜리 ‘GGGI 본부협정 국회 비준 동의 추진’ 문서와 김 전 수석이 자필 서명한 사퇴서를 통해 확인된다.

내부관계자 “직원 중 부적격자 태반”
2월 19일(현지시간), 덴마크 언론 <엑스트라 블라젯>은 라스무센 의장과 김상협 전 수석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 감사원의 2012년 감사를 통해 김 전 수석의 ‘비위’ 사실이 밝혀지고 난 다음에도 라스무센이 그를 적극적으로 비호했다는 것이다.

김 전 수석은 123회의 용처를 밝히지 않은 신용카드 사용, 자체 규정을 어기고 민간 비상임 이사가 차량 운전사를 고용했다는 등의 의혹은 감사원 보고서에도 나와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이 매체가 보도한 내용 중에는 감사원 보고서 이후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김 전 수석에 대한 소개와 의혹은 ‘뢰케(라스무센)의 밤의 친구’라는 소제목을 단 별도 기사를 통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었다.

인상적인 대목은 ‘왜 규정에 어긋나는 것을 알고도 막지 못했나’라고 매체가 던진 의문에 대해 GGGI 내부 인사가 전한 말이다. “청와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불가항력이었다.”

MB정부 녹색성장위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던 관계자는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인턴 한두 명을 제외하고 내부 제보자가 문건을 통해 주장한 내용과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근무는 청와대에서 하면서 GGGI에 오간 직원은 있었지만 이 경우도 녹색성장위원회에서 월급이 지급되었지 GGGI에서 지급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부적절 사용 논란과 관련해 그는 김 수석을 보좌했던 청와대 행정관을 지목했다. 이 인사는 국내 유력 사립대학 설립자의 손자다. “그 행정관이 신용카드 영수증 처리를 담당했는데, 도련님 대접을 받고 살아와서인지 업무처리가 미흡했다. 그냥 받아 챙기기만 했지 증빙서류를 만들지 않아 나중에 문제가 된 것일 뿐이다.” 단순 실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도덕적 하자는 없었다는 것이다.

2월 21일, 김상협 전 수석과 연락이 닿았다. 지난해 6월 민간이사직을 사퇴한 이래 GGGI와 관련해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덴마크가 총선 정국이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너무 미안하다고 한다.

라스무센이 유력한 차기 총리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정치적 공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1시간여 동안 자신의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다음은 그와의 대화 중 일부다.

-라스무센의 경우 본인뿐 아니라 공금으로 딸을 1등석에 태워 브라질 리우에 출장 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었는데요.

“사실 당시 딸을 데리고 온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아 보니 이쪽 매니지먼트팀의 요청이었다. 리우 협약 협정식에서 한승수 전 총리가 물러나고 후임으로 들어올 때 차기 의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오면 좋겠다고 초청했다. ‘딸과 일정이 있어 곤란하다’고 해서 이쪽에서 ‘딸과 같이 오라. 경비는 공적인 일이니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정치문화의 차이다.

덴마크는 현직 총리라도 1등석을 못타게 되어 있다. 우리의 경우 차관만 하더라도 1등석을 탄다. 전 의장이었던 한승수 전 총리에게 걸맞은 예우를 하다 보니 1등석이 되었다. 하지만 북유럽은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게 그쪽에서는 국민적 거부감을 준 모양이었다.”

-‘밤의 친구’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내용을 보면 라스무센과 김 전 수석이 밤에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건 감사원 감사보고서에도 안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라스무센에게 개인적으로 미안하다.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상황에서 이 번잡한 일을 겪게 되었다. 의장 일을 하는 것이 무급이다. 비행기값 등 체류경비를 내주는 것 외에 지급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는 현역 정치인이다.

당에서는 불평을 한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로 치면 야당 당수인데, 다른 나라가 주도하는 국제기구의 장을 맡아서 헌신하는 것이다. 순전한 개인적 열의로 참여하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

-카드의 부적절한 사용 등은 실제 감사원 보고서에서도 지적된 내용 아닌가요.

“잘못은 인정한다. GGGI 카드를 쓴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만의 일이 아니고 GGGI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야당이 사퇴하라고 해서 물러났지만 솔직히 죄명을 모르겠다. 모두 GGGI를 위해 쓴 것이지 개인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

처음에 국제기구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2~3년 만에 국제기구가 만들어진 것은 외교사에 처음 있는 일로 안다. 물론 그 과정에 시행착오는 있었다. 부정은 않겠다. 하지만 지금 북유럽 언론이 제기하는 도덕적 이슈 등과는 무관하다.”

“연 100억 내는 한국, 주도권 뺏겨”
2월 19일, GGGI는 노르웨이 정부가 의뢰한 딜로이트 감사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했다. GGGI가 제출한 답변서는 의외로 세세하다. 한국 감사원 보고서의 경우 세 파트로 나눠 각각 정교한 이행계획을 내놨다.

딜로이트 감사의 경우에도 각 항목별로 GGGI가 취한 조치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 지난해 4월 또는 9월에 개선계획을 만들어 이미 실행하고 있으며, 아직 대책이 만들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시한을 정해 지적사항을 이행하는 계획표를 제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덴마크에 이어 노르웨이도 지원 중단을 해제했다. 이것으로 일단락된 것일까.

“이미 한국이 주도권을 뺏긴 것 같다. 그것이 제일 안타깝다.” 앞서 접촉한 GGGI 설립을 주도한 전 녹색성장위원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GGGI의 산파역을 한 김 전 수석에 이어 정태영 부소장까지 물러난 지금 GGGI를 컨트롤할 수 있는 한국 관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매해 국민 세금으로 100억여원씩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다른 공여국에 넘겨줬다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김 전 수석의 후임으로 민간 전문가 이사로 들어간 고려대 정서용 교수는 2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민간이사 자격으로 들어갔을 뿐 GGGI의 주요 정책과 관련한 내용을 알 위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외교부 GGGI 담당자에 문의해봤다. 이 담당자는 기자가 문의하기 전까지 북유럽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팔로업조차 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이 담당자는 “이미 국제기구가 설립된 상황에서 외교부가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관련 내용은 GGGI 측에 문의해보라”고 답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GGGI는 설립 당시부터 준비가 덜 된 상태로 급조된 조직이었고, 국제기구화하기 위한 비준동의안 심사과정에서 감사원 감사까지 받는 등 방만한 조직 운영 모습을 보였다”며 “매년 우리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공여금을 주는 만큼 외교부가 조직 설립 당시의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철저히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외국 언론에서 이미 의혹 제기가 된 만큼 잡음이 있다면 당사자들이 명확하게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설립과정 당시부터 있었던 문제가 지금 제기되고 있는 것인데, 지금부터라도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