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설계]유명병원의 ‘그림자 의사’

얼마 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눈, 코 성형수술을 받은 여고생이 수술 후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환자는 해당 병원이 국내에서 제일 큰 성형외과 중 하나인데다 방송에도 여러 차례 나왔고, 연예인 홍보대사를 쓰는 ‘유명한 병원’이라 믿고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 결과도 좋지 못했고, 환자의 동의도 없이 전신마취를 시행했다. 수술 후 문제가 생겨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 환자 보호자에게 적절한 설명도 없었으며, 담당 의사가 수술 직후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하는 등 결코 적절하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 많다.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점은 바로 의사가 사라졌다는 부분이다. 자기가 수술한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잠적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병원과 환자 관계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엔 대형 성형외과의 큰 문제 중 하나인 ‘그림자 의사’(shadow surgeon)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대형 병원을 찾는 환자는 유명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 원장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표 원장은 방송과 상담, 경영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실제 수술은 대표 원장이 고용한 ‘페이닥터’ 원장이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 원장은 상담만 하고 실제 수술은 이들 그림자 의사들(페이닥터 원장)이 맡는다.

그림자 의사들은 수술실에서만 환자를 보다 보니 환자에게 당연히 가져야 할 책임감이나, 환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약해지기 쉽다.

심한 경우 한 번도 만나서 얘기해본 적 없는 환자를 X-레이나 사진만 보고 수술 계획을 세우고, 마취가 다 된 상태에서 들어가 기계적으로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

양악 수술에서 그림자 의사 문제는 더 심각하다. 양악 수술은 눈, 코 수술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수술인 동시에 개개인의 개성이 반영돼야 하는 수술이다.

상담 과정에서 환자의 생각이나 요구를 충분히 파악하고, 수술 후에도 세밀한 관찰을 통해 미세한 오차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반드시 한 명의 의사가 상담, 수술, 소독을 도맡아야 한다.

건강설계

병원의 대형화·상업화 추세에 따라 그림자 의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해도, 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한다는 병원의 본래 의미를 생각하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순 없다.

<황종민 앵글치과 구강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