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제 나를 놓아주라

해사 국사교관 김 중위는 지금 경계인이다. 의무복무기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3년째 제대를 기다리고 있다. 군인 신분이라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없다. 월급 49만8000원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물구나무를 서도 간다는 그의 국방시계는 2011년 멈췄다. 군검찰이 그를 기소했다. 강의노트가 국보법을 위반했다는 게 기소이유다. 1심 유죄, 2심 무죄. 군검찰은 대법에 상고했다. 재판일정은 21개월째 잡히지 않고 있다.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 그는 월 49만8000원짜리 대한민국 해군 장교로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해군사관학교 교관 김모 중위(33). 그는 사람이 많은 곳에는 잘 가지 않는다. 사람이 적은 곳에 있어야 누가 미행하는지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양복 입은 남자들만 보면 괜히 경계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행당하고 있다는 강박증을 떨쳐버릴 수 없다.

‘기소휴직’ 때문에 3년 동안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면서 생긴 변화였다.

그의 한 달 봉급은 49만8000원. 기소휴직과 함께 월급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군인 신분이어서 겸직이 금지된다. 3년 가까이 50만원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돈 아끼려고 집과 도서관만 오가는 생활을 계속했다.

그도 한때 전도 유망한 군인이었다. 2009년 6월 학사장교로 입대해 해군사관학교의 국사 교관으로 부임했다.

돈 아끼려 집과 도서관만 오가는 생활
김 중위가 해군 장교가 된 이유는 나이 때문이었다. 2000년 대구가톨릭대에 입학한 김 중위는 민족해방(NL) 계열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2005년에 졸업했다. 이후 대구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2008년 9월에는 연세대 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나이는 이미 ‘군입대 적령기’를 한참 지난 27세였다.

“해군 모병관이 서울권 학교를 돌면서 ‘해사 국사 교관이 결원인데 석사 소지자면서 미필자가 없느냐’는 말을 하고 다닌 모양이에요. 그 소식이 대학원 동기를 통해 저한테 들어왔고, 마침 석사 동기들 중 미필자가 저뿐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지원을 하게 됐죠.”

해사 교관 경력이 자신의 인생 목표(교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해사 교관이 된 김 중위는 불필요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교관이 되자마자 남들은 굳이 만들지 않는다는 국사 강의노트를 만들었다. 이 노트가 그에게 어떤 시련을 안길지 그는 전혀 짐작도 못했다.

2010년 강의 평가에선 학사장교 출신 교관 13명 중 2위를 기록했다. 김 중위의 과거 학생운동 경력을 알고 있는 듯 기무사 요원이 이따금 사무실에 들렀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거꾸로 놔도 흘러간다는 국방부 시계가 2011년 6월 27일 갑자기 멈췄다. 해군 검찰부가 김 중위를 국가보안법과 집회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그의 인생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2011년 6월 기소될 당시 김 중위는 30세였다. 기소와 함께 김 중위는 말 그대로 ‘기소휴직’ 상태에 놓였다. 그렇게 34개월이 흘렀다. 재판 진행 기간만으로 의무복무 기간(36개월)을 거의 다 채운 셈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김 중위는 2012년 5월에 제대한 후 현재는 연세대학원 석사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었을 터였다.

해군 검찰의 기소는 그의 인생을 뒤틀어버렸다. 원래 어렵던 가정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김 중위는 교관 시절 적은 월급을 아끼고 아껴 제주도의 고향집에 보냈다. 기소휴직으로 반토막이 된 월급 갖고는 아들 역할을 전혀 할 수 없었다.

2010년 5월 혈액암 판정을 받은 모친은 아들의 재판 사실을 알고서부터 병세가 악화됐다. 2012년 말 김 중위의 어머니는 세상을 떴다. 아들의 결백을 보지 못하고 한 많은 눈을 감았다.

“1심 때만 해도 부모님껜 숨겼어요. 전역일자가 다가오면서 결국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죠. 이건 뭐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된 느낌이에요. 어머니는 갑자기 돌아가시고, 칠순을 앞둔 늙으신 아버지는 제주도 고향집에 홀로 계시고, 장남으로서의 역할은커녕 5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고….”

혈액암 앓던 모친 충격받고 끝내 사망
2011년 11월 27일 1심에선 국보법과 집시법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2012년 7월 고등군사법원에서 국보법 무죄를 선고받았다.

해사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다행이다”, “고생했다”며 그를 격려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큰 변화가 없었다.

군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그는 여전히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김 중위는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를 한 뒤 어머니 병세가 더욱 악화됐다”면서 “분명히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마치 유죄 판결을 받은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가끔 제게 ‘네가 애초에 군대를 빨리 갔으면 이런 일 없었다’는 식으로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솔직히 말 섞기도 싫을 정도예요. 인생의 10분의 1이 이렇게 허무하게 지나갈 줄, 어머니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3월 26일 해군사관학교 통해관 대강당에서 해사 생도와 장병 1천여명이 ‘천안함 피격 응징의 날’행사를 열고 있다.(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습니다) /연합뉴스

뼈아픈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김 중위는 지금도 과거 학생운동 시절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당시의 ‘동지’들은 국가보안법 사건에 연루될 것이 부담됐는지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본 적도 거의 없는 80·90년대 학번 선배들이 김 중위의 재판비용을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알고 지낸 시간이 짧았던 연세대 등 서울시내 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동료들과 교수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군 검찰이 상고한 건 2012년 7월 31일. 하지만 대법원은 21개월째 묵묵부답이다. 판결을 내리기는커녕 선고기일조차 잡지 않고 있다. 김 중위는 대법원 선고기일이 혹시라도 잡혔을까 시간이 날 때마다 대법원 측에 문의전화를 걸지만 돌아오는 답은 매번 똑같다.

대법원 측은 “김 중위 사건은 아직 재판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구속자 사건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대법관이 정하기에 따라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중위는 “지금 2심 판결이 나고 21개월이 지났잖아요.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 많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방치하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1·2심 군 검찰관들의 이름을 수차례 거론하며 비판했다. 재판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화가 난 듯 얼굴이 벌개지기도 했다.

1·2심 재판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김 중위는 마치 오랫동안 말을 못한 사람처럼 쉬지 않고 상황을 설명했다. 얼마나 쌓인 게 많았는지 짐작이 됐다.

군 검찰 측은 해사 생도들의 진술서를 근거로 김 중위가 친북적인 국사 교육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중위가 가르친 6개 교반 220여명 중 17명만이 진술서를 썼다.

‘중요 사건’에 밀려 확정 판결 기약 없어

김 중위는 특히 2심 검찰관 김모 대위와는 “말 자체가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위는 김 중위가 생도들에게 광복운동가 김원봉에 대해 가르친 점도 문제삼았다. 광복군 제1지대장을 이끈 김원봉은 공산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공산주의자임을 부인한 인물이다. 김일성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던 그가 말년에 월북한 것 역시 이승만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김원봉의 광복운동 논문을 올렸다고 이적행위라는 거예요. 직접 검찰관한데 물었어요. 김원봉이 누군지 아시냐고. 김원봉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의 부사령관을 지낸 분이란 걸 아냐고. 이적표현물로 거론된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은 2005년에 건국훈장을 받은 분이에요. 군 검찰 말대로라면 국가보훈처도 빨갱이라는 말밖에 안 되는 거죠. 자기가 납득이 안 되면 죄가 있다는 논리죠.”

그는 지금 예전의 보통사람의 삶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는 마음이 급하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아버지도 부양해야 하고, 대학원도 졸업해야 한다.

“제 사정은 이미 검찰관들에게 다 말씀 드렸어요. 집안사정도 다 이야기를 드렸고, 제가 장남으로서 부모님께 해야 할 도리도 못하고 살고 있는 걸 그분들도 다 알아요. 그래도 제 사정은 전혀 중요하게 생각을 안 했겠죠. 왜 군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를 했을까요? 아무리 국가보안법 피고인이라고 해도 부모님 이야기를 지어내진 않잖아요. 지금도 이해가 안 돼요.”

입대 전 야간 촛불시위 참석했다고 집시법 걸어

애초 해군이 김 중위를 기소한 핵심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군 검찰의 공소장이나 군 법원 판결문 내용의 90% 이상이 국가보안법 관련 서술이다. 집시법 위반 혐의는 김 중위가 민간인이던 2008년 야간 촛불시위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군 검찰이 김 중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열심히 뒤져 찾아낸 끝에 힘겹게 발견한 혐의였다. 군입대 전 민간인 신분이었을 때 벌어진 일인데도 군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김 중위는 “자기들이 보기에도 국보법 유죄가 어려울 것 같으니까 공소장에 슬며시 끼워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중위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2심 판결대로 3심에서도 무죄가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2심에서 벌금 20만원이 선고된 집시법 혐의가 발목을 잡고 있다.

해군본부 법무실은 “대법원에서 국보법과 집시법이 둘 다 무죄로 확정될 경우 바로 전역이 가능하다. 하지만 집시법 벌금 20만원이 확정된다면 군인사법에 따라 해군 장교로서 남은 의무복무기간을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군인사법 시행령 6조 4항에 따르면 기소휴직자의 경우 무죄가 확정되면 휴직기간은 의무복무기간으로 산입된다. 대법원이 두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확정하면 2012년 5월에 전역했어야 하는 김 중위는 군인 신분을 벗을 수 있다. 하지만 벌금 20만원이라 해도 유죄는 유죄이기 때문에 약 11개월에 달하는 의무복무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 해군본부 측의 설명이다. 해군본부 법무실은 “김 중위가 부대로 복귀할 경우 종전처럼 해사 교관으로 복무하게 될지는 인사과정에서 별도로 따질 문제”라고 덧붙였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해가 진 후부터 집회·시위를 금지한 현 집시법 23조에 대해 “해가 진 뒤부터 24시까지는 집회·시위를 할 수 있다”며 한정위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의 판결대로라면 김 중위의 옥외집회 혐의도 무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대법원은 한정위헌 판결의 경우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려온 바 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순 없다.

김 중위는 “재판 경과일만 따져도 3년이라는 의무복무일수를 거의 채웠음에도 벌금 20만원 때문에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기소휴직 제도 자체가 전면적으로 개혁됐으면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군 기소휴직 문제에 대해 앞으로도 문제제기를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