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남자 구경하는 재미

지하철 승차의 재미는 사람 구경에 있다. 뒤통수만 보이는 버스와 달리, 지하철은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된다. 앞 좌석에 앉은 7명의 생동감 있는 표정이 메인 메뉴고, 주변 승객들의 얼굴까지 구경할 수 있는 보너스도 지급된다. 제일 재밌는 구경은 역시 사람 구경이다. 생생한 연기 재료를 길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을 탄다는 배우들도 여럿이다.

KBS2 새 예능프로그램 <나는 남자다>는 사람 구경의 재미를 살렸다. 그것도 평범한 남자들을 구경하는 재미다.

<나는 남자다>는 정규편성 전 시범으로 9일 첫 방송됐다. 유재석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새 예능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됐으나,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방송’이라는 콘셉트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첫 방송 시청률 4.1%(동시간대 방송된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가 4.9%, 닐슨코리아 기준)로 선전했고, 방송 직후부터 다음날까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화제의 중심이 됐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원형 객석이다. 무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져 계단식으로 설치된 방청객석 덕분에 넓은 시야가 확보된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 방청객이 어느 지점에서 웃음이 터지고 박수를 치는지 다 볼 수 있다. 탁 트인 무대를 통해 진행자 유재석, 노홍철, 장동민, 임원희의 작은 움직임까지 포착된다. 이런 객석 구조를 통해 다른 방청객을, 또 진행자들의 움직임을 구경하고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 <나는 남자다>의 핵심이다.

KBS <나는 남자다> / KBS 제공

시작은 남자다. 남자중학교, 남자고등학교, 공대를 나온 남자 250명의 방청객은 남자라는 공통점으로 금세 하나가 됐다. 여성들의 하이톤 환호와 달리 낮은 음성의 탄성은 묘한 동질감을 형성한다. “대전지하상가에서 옷을 사 입고 왔다”는 말만으로 웃음이 터지는 지경이다.

남자들끼리 있으면 문화의 소통도 빠르다. ‘19금’ 공급책, 포경수술 같은 주제로 단숨에 오랜 친구가 된다. “여자들은 안 보니까 다 벗죠”라고 말하는 호기도 이런 데서 나온다.

물론 여자가 아예 배제된 건 아니다. 이들은 여자친구나 아내가 있는지 같은 질문으로 편을 나눴다. 하지만 더 내밀하게 유대감을 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애인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뭉친 남자들 사이에선 인기스타 수지도 들러리에 불과하다. 그저 박수치며 앉아 있다가 기념사진 한 장 찍고 퇴장하는 수밖에 없다. 체육대회 할 때 경기를 뛴 남자들이나 응원하던 여자들이 하나가 됐다가, 남자들이 웃통 벗고 세리머니하는 바람에 갑자기 소외돼버리는 여자들 같다.

KBS <나는 남자다> / KBS 제공

이 프로그램은 흘끔흘끔 서로 훔쳐보던 남자들이 남자들만의 주제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고, 나중엔 어깨동무하고 한데 어울려 노래 부르면서 흘러갔다. 1차 탐색전 밥자리, 2차 진한 술자리, 3차 노래방 회포로 이어지는 남자들의 친목 도모를 고스란히 따라간 예능이다. 중간에서 이들을 접착제처럼 연결해주는 유재석의 노련한 진행, 장동민의 빠르게 치고 빠지는 개그가 더해지면서 더욱 힘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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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자다>는 호응에 힘입어 정규편성이 확실시된다. 문제는 3차까지 끝낸 남자들이 더 보여줄 게 있느냐다. 250명이라는 방청객들을 매회 모으기는 힘들 것이다. 또 야동, 포경수술, 군대, 연애, 노래방까지 할 만한 얘기는 이미 다 했다. <나는 남자다>의 한 진행자가 말했다. “남자들만 있으면 정말 재밌거나 정말 빨리 끝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