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박근혜 대통령 캐릭터는 아직 비밀”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삼국지 인물전> 펴낸 한문학자 김재욱씨

“안철수는 원소다. 머리가 좋고 주변에 괜찮은 모사꾼도 많았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머뭇거리거나 냉정한 판단을 하지 못해서 망했다.”

지난해 11월, 한문학자 김재욱 박사(41)는 갑자기 자신의 페이스북에 야권 주요 인사들을 삼국지 인물에 빗댄 인물평을 올리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스트레스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야권의 무기력한 대응에 화가 나 술 한 잔을 걸친 직후였다.

즉흥적이었다. 그런데 조운과 마초에 비견된 조국 서울대 교수와 표창원 박사가 김 박사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페친)들에게 소개하면서 일이 커졌다. 수십명이 김 박사에게 페친을 신청했고, 공유만 해도 수백건이 넘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김 박사는 고려·조선시대의 한시나 논어, 맹자 등을 연구했던 한문학자일 뿐이었다. 김 박사는 자신을 “정치에 조금 관심은 있는 생활인”이라고 묘사했다.

몇 줄로 시작했던 즉흥적 인물평은 긴 버전의 인물전으로 발전했다. 석 달여 동안이나 삼국지와 현실 인물 32쌍에 대한 인물전이 연재됐다. 그의 글을 널리 알려준 조 교수, 표 박사 등의 도움으로 <삼국지 인물전>이 나왔다.

다른 한문 고전도 많은데 왜 하필 삼국지인가.
“삼국지를 몰라도 삼국지 인물들을 아는 사람은 많다. 유비, 관우 등에 대한 이미지도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삼국지 인물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 전부터 지금의 시대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점도 있다. 개인적으로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 시리즈를 즐긴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웃음)

현실 인물은 거의 야권 인물인데.
“애초에 페이스북에 썼던 글이었고, 나와 비슷한 야권 성향 페친들을 위해 쓴 글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야권 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점도 있다.”

어쩌다가 <삼국지 인물전>을 쓰게 됐나.
“처음 글을 쓸 때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약속된 논문 마감시한이 다가와 심리적 압박이 강했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껴 어느날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다 보니 무기력한 야권에 대한 분노가 생겼다. 휴대폰을 열고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썼다. 127석 거대 야당의 당대표가 이렇게 무능할 수가 있나. 김한길은 원술이다. 뜬구름 잡는 말만 하고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게 없는 안철수는 원소다. 이 정도로 짧게 썼는데 뜻하지 않게 인기를 얻었다. 갑자기 수십명이 친구추가를 하고, 수백명이 공유를 해서 놀랐다.”

정치인도 아닌 조국 교수, 표창원 박사를 촉나라의 핵심 인물인 조운, 마초에 비유했다.
“조국 교수는 예전부터 눈여겨 본 사람이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사회적 파급력이 있는 발언을 자주 해 왔다. 정치인을 제외하면 야권에서 군계일학처럼 두드러진 사람이 조국 아닐까, 해서 조자룡에 비유했다. 표창원 박사는 야당 정치인들이 침묵할 때 홀로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에 목소리를 내고 자기 힘만으로 싸워 왔다. 근거지를 잃고 홀로 조조에 맞서 온 마초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

그럼 조조는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인가. 책에선 조조뿐만 아니라 손권, 제갈량, 사마의 등 삼국지의 주요 인물들 상당수가 빠져 있는데.
“왜 인물전에 조조가 없냐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사실 조조처럼 출신을 따지기보다 능력으로 인물을 쓰고, 부하의 실수에도 관대한 정치인이 아직 우리 사회에 없다고 생각해서 쓰지 않았다. 거론하신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경우 정해둔 캐릭터가 있지만 영업 비밀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다.”

페이스북 연재 당시 인물 비유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나.
“그런 반응 많았다. 안철수를 원소에, 문재인을 유표에 비유했는데 그들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선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문 의원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일이라면 앞장서서 나서는 모습이 유표의 ‘영역 지키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과거와 현재 인물이 100% 맞을 수는 없다. 삼국지 인물의 특징적인 부분과 현재 인물의 두드러진 점을 비교해서 쓴 것이다. 일례로 손학규 새정치연합 고문은 강유와 비슷하다. 물론 강유가 도전과 좌절을 반복해온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손 고문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손 고문이 상대 진영에서 넘어온 뒤에 야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점을 본다면 강유에 비유할 수 있지 않나. 그 외에 삼국지 정사를 기준으로 반박하는 분들도 있는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삼국지연의를 기준으로 쓴 것이라는 점도 꼭 말씀드리고 싶다.”

32편의 글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은 무엇인가.
“홍세화 노동당 전 대표 부분이다. 홍 전 대표를 유비에 비유했는데, 연결이 어설프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도 꼭 다루고 싶었던 인물이다. 홍 전 대표에 대한 팬심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연의에서 유비는 민중을 사랑하고 아끼는 군주라는 이미지가 있다. 비록 홍 대표가 유비처럼 황제가 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민중을 아끼던 마음은 유비에 비유할 수 있지 않나. 삼국지 인물 중 유비를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책에 나오는 32명의 현대 인물 중에는 홍 전 대표에게 제일 애착이 있다.”

원래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김대중 대통령 때는 조금 관심이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는 정치 무관심층이 됐다. 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이나 재벌과의 관계에서 실망을 많이 했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도 안 나갔다. 그러다가 나꼼수 열풍이 불면서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책은 ‘정치에 조금 관심이 있는 생활인이 쓴 삼국지 인물전’으로 봐주시면 고맙겠다. 지금은 굳이 따지자면 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다.”

후속편을 쓰라는 주위의 권유가 많다던데.
“아직 2권 계획은 없다. 전공인 맹자와 관련한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어렵다. 하지만 ‘윤여준=가후, 김종인=노숙’ 식으로 어느 정도 구상은 해둔 상태다. 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던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의 경우 기발한 참모였던 유엽에 비유하고 싶다. 본인들의 신념을 믿고 밀어붙였지만 계속 좌절하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은 맹획에 빗대고 싶다. 그 외에도 20명 가까이 생각을 해뒀다. 지금 시국을 ‘황건적의 난 직전’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당시 한나라 황제였던 영제라든지 동탁, 이유, 황건적의 수장이었던 장각 3형제와 어울리는 현대 인물에 대해서도 대략적인 상은 그려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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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준비한 연재는 아니었는데 아쉬운 점은 없나.
“후속편을 쓰게 되면 좀 더 준비를 하고 쓰고 싶다. 내가 정치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현대 인물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그리고 정치는 생물이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뜨는 사람, 지는 사람이 나올 거다. 후속편에선 이번에 다루지 않은 위나라 쪽 곽가, 장요, 하후돈 등의 장수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억지로 인물을 지어낼 순 없고, 시대가 삼국지 인물들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글·사진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