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비정규직에 떠넘긴 ‘안전’

세월호 승무원뿐만 아니라 일용직 만연한 건설현장 등에서도 신분 불안한 계약직에게 안전관리 맡겨

세월호 침몰사고의 배후에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비정규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세월호의 안전을 책임질 핵심 위치인 갑판부, 기관부 선원 17명 중 12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선장인 이준석씨도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심지어 출항 당일 구두계약을 통해 승무원이 된 사람도 있었다.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근무하지 못하고,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직에게 안전관리를 떠맡기는 것은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일용직이 만연한 건설현장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인천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포크레인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안전관리자 ‘마지못해 쓰는’ 계약직
올해 3월 말에 발표된 2013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건설업의 산재 사망 노동자의 숫자는 516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 1090명의 절반가량에 달했다. 다른 직종에서는 모두 산재 사망이 줄어들고 있는데 유독 건설업만 사망률이 상승했다.

건설업에서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자주 지적되는 게 건설현장의 안전관리자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건설사업주는 안전관리자를 선정해야 한다. 그리고 안전관리자는 현장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노동자들이 안전한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지, 건강상의 문제는 없는지 등 산업재해와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현장소장에게 현장의 불안전한 부분을 시정하도록 조언하는 역할도 안전관리자의 몫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안전관리자 대다수는 계약직 신분인 데다가 현장에서도 ‘마지못해 쓰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17년째 건설현장에서 안전관리 일을 맡아왔다는 정종수씨(가명)는 계약직 안전관리자 신분으로는 제대로 안전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공기 단축을 재촉하는 건설사에 안전관리자가 이의제기를 할 경우 재계약은커녕 중도에 계약해지를 당할 수도 있다.

정씨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제약을 당하는 것들도 많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안전관리자가 바로바로 지적하고 고치게끔 해야 하는데 계약직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말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있는 게 현실이다. 계약직이 정규직 과장, 대리에게 싫은 소리 했다가 과연 자리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까? 좋게 좋게 넘어가야 정규직들 사이에서 그나마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다.”

또한 정씨는 안전관리자이면서도 안전이 필요한 자리에서 배제되는 일도 여러 차례 겪었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환경미화, 보안 등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파업 돌입 기자회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강윤중 기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정씨가 일하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15층 위로 무거운 장비를 올릴 일이 있었다. 크레인이나 장비가 떨어질 경우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안전관리자가 작업계획을 짜는 데 투입됐어야 했다. 하지만 정씨는 “당시 회의에 참석하라는 말도 전혀 없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작업을 다 해버렸더라”고 말했다. 다행히 작업은 아무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만약에 사고가 났더라면 “왜 안전관리자가 아무런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냐”며 비난을 온몸에 받을 뻔했다.

14년째 현장 안전관리자로 일하는 전수홍씨(가명)는 전담 안전관리자를 두지 않는 관행을 지적했다.

의사결정 땐 배제, 일 터지면 마녀사냥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따르면,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이 800억원 미만까지는 1명, 800억원 이상으로는 2명의 안전관리자를 두게 돼 있다. 이후 공사금액이 700억원 상승할 때마다 1명의 안전관리자를 추가로 둬야 한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추가 안전관리자를 선임하지 않고 건설사 직원 중 적당한 사람을 겸직시키는 일들이 있었다.

“안전관리자는 전담으로 활동하도록 되어 있는데, 건설사 사무직 직원이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겸직을 시킨다. 서류상으론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현장 단속을 나오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이런 겸직 관리자들은 원래 사무직 일만 열심히 하고 현장의 안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종수씨는 건설사가 안전관리자를 고용하는 것 자체가 안전과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안전관리자가 독립적인 위상을 가질 수 있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가낙찰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건설사가 이윤을 남기려면 조기 준공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건설사가 고용하는 안전관리자가 제 역할을 못하는 거다. 차라리 건설을 발주한 사람이나 제3의 협회에서 안전관리자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법이 바뀌면 안전관리자가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산업재해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한기운 안전관리협회 회장은 “세월호 승무원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안전관리사들과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요한 업무에 고작 6개월~1년만 있다가 가버릴 수밖에 없는 계약직을 고용해놓고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건설현장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국립공원에서도 비정규직이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게다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의 일환으로 구조활동에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을 ‘재난구조대’로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산업재해 사망자 추모의 날’(4월 28일)을 앞두고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4월 25일 춘천 고용지원센터 앞에서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20개 국립공원에는 44명의 안전관리반과 103명의 재난구조반이 상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곳에 7명 꼴이지만 사고가 잦은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에 많은 인원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국립공원 한 곳당 안전관리자는 3명 정도에 불과하다.

무기계약직인 안전관리반의 경우 비정규직이기는 하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03명의 재난구조대는 응급구조 자격증 등이 필수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절반 이상을 채우고 있다.

국립공원 구조대조차 비전문가 배치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채용공고에 따르면 재난구조대 채용은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것이다. 구조와 관련한 자격 여부보다는 공원이 있는 지역의 주민인지,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인지가 채용에 더 중요한 요소다.

일부 국립공원은 재난구조대조차도 없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나 태안해안 국립공원에는 7~8월에만 한시적으로 안전관리반이 운영될 뿐 평소엔 상주 인력이 아예 없다. 경주, 계룡산, 속리산, 내장산 등 10여개 국립공원에는 비전문가인 재난구조대만 상주할 뿐 안전관리반은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재난구조대도 전문 자격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정부의 일자리 창출사업에 맞추려다 보니 자격증보다는 지역 주민인지 여부 등을 먼저 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전문적인 인력이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맞고, 우리도 궁극적으로는 재난구조대 인원을 모두 전문지식이 있는 안전관리사로 대체하고, 상주인력이 없는 곳에도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안전이 직결된 장소에 비정규직을 쓰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인천공항이나 킨텍스에서 보안경비업무를 하는 인력도 비정규직이다. 국가 주요시설인 인천공항 보안요원의 경우 업체를 선정할 때 보안 관련 전문성보다는 응찰가격을 더 중시해서 뽑는다. 킨텍스 역시 외주업체를 통해 보안요원을 선발하고 있다.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임금 계약직들에게 큰 책임감을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 한 해만 해도 일주일에 2~3차례는 굵직한 사고들이 터져 나온다.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노동자가 죽는 일들은 뉴스거리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기운 안전관리협회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크고 작은 안전사고들을 모두 모았다. 다 모아보니 4달 동안 언론에 알려진 것만 해도 60건에 가까운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있었다.

한 회장은 “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면 정규직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고, 거기서부터 안전관리가 소홀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잘못된 사람만 마녀사냥할 것이 아니라 안전이 도외시되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