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참여정부서 만든 위기관리 매뉴얼 발전은커녕 어디 있는지도 몰라”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MBㆍ박근혜 정부가 계속 업그레이드 했다면 이 지경 안 됐을 것”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우리나라는 한 정권에서 만들어놓은 좋은 시스템을 정권이 바뀌면 곧바로 없애버린다”며 “참여정부 당시 만들어놨던 각종 위기관리 매뉴얼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계속 발전시켰으면 세월호 사고 위기관리를 지금보다 훨씬 더 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는 전문가들로부터 역대 정부 중 가장 위기관리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김 전 실장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부터 대통령 직속 지방분권위원장을 맡아 범국가적인 위기관리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도했다. 김 전 실장은 “참여정부 때 만든 각종 위기관리 매뉴얼이 지금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며 “그때 만든 위기관리 매뉴얼을 기본으로 다음 정부에서도 계속 보완하고 업데이트시켰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국민대 교수로 재직 중인 김병준 전 실장은 참여정부 때 지방분권위원장에 이어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표지이야기]“참여정부서 만든 위기관리 매뉴얼 발전은커녕 어디 있는지도 몰라”

참여정부가 그 전 정부와 달리 국가적 위기관리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이유는.
“사실 참여정부 이전까지는 위기관리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매뉴얼도 없었다. 유일하게 매뉴얼이 있던 곳은 당시 철도청(현재 코레일)이었는데, 철도 관련 대형 사고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정부 부처는 위기가 발생하면 개인의 임기응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위기관리와 관련해 유형별로 33가지의 표준 매뉴얼이 완성됐고, 이를 세부화해 276권의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도 만들어졌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위기관리 매뉴얼은 모든 부처가 다 만들었다. 각 부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위기상황을 상정해서 매뉴얼을 만들도록 했다. 현장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매뉴얼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했다. 위기는 이미 경험해서 예측할 수 있는 위기도 있지만, 과거에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래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위기도 있다.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위기상황도 가정해 매뉴얼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각 부처에서 만든 매뉴얼은 청와대에 모두 보고됐다. 당시 청와대 지하 벙커의 벽에 각종 위기관리 매뉴얼이 빼곡히 붙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참여정부는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처 산하에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만들었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는 태풍, 집중호우, 산사태 등 자연재난과 각종 사고와 관련한 인적 재난, 그리고 통신·금융시스템 마비에 대비한 국가핵심기반 재난에 대한 상황관리를 했다. 이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해당 부처에서 청와대에 즉각 보고토록 했고, 청와대는 사고가 수습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대통령께도 신속히 보고했다.”

참여정부 때 만들어놓은 각종 매뉴얼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세월호 사고를 보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각종 사고와 관련해 위험 징후가 있으면 이를 예고해주고, 즉각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조기경보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대형 교통수단의 경우 불시의 사고에 대비한 조기경보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도 선박을 개조해 객실을 늘리는 등 위험 징후가 있었지만 이를 감지하고 정부가 사전에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물론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관련 업체와 이익단체 등이 정부와 정치권에 로비를 하는 등 많은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안전과 관련해 관심이 있었다면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다.”

세월호 사고의 경우 청와대 등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모든 사고에 대한 대응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곳에서 대응해야 한다. 참여정부 같았으면 청와대에서 현장 지휘자를 신속히 임명하고, 모든 기관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지휘자에게 모든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이빙 벨을 투입하고, 바지선을 이용하는 문제도 현장 지휘자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도록 했을 것이다. 물론 임명권을 행사한 청와대가 사후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와 관련한 지휘부는 중구난방이었다. 총리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등이 현장에서 혼란만 가중시켰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참여정부와는 달리 안전행정부 장관이 지휘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국가 재난사태에 대해 지휘소 역할을 하고 있는데.
“현 정부가 안전을 강조했지만 정작 위기관리시스템을 갖추는 것과 관련해서는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기존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만 바꾼 것 같다. 안행부로 바꿨으면 그 이름에 걸맞게 안전문제와 관련한 후속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재난에 대비해 안전체계를 갖추는 시스템을 구축하지도 않았고, 이와 관련한 입법도 없었다. 안행부는 사고에 대한 주무부처가 아니라 간사부처일 수밖에 없다. 사고가 일어나면 수습하는 기능을 할 수는 있어도, 사고에 대한 예방작업은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예방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범정부적으로 했어야 했다.”

정홍원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혔다. 대대적인 개각 예상도 나오고 있다.
“총리가 사퇴를 밝힌 시점이 적절치 않았다. 당연히 총리는 도덕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표를 내야 하지만 그 시점이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본인이 사표를 내고 싶어도 이 사고를 수습하고 구조활동을 마무리한 후에 내야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를 비롯해 장관을 몇 명 바꾼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순히 사람만 바꾼다고 국정의 난맥상과 안전관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우선 모든 안전사고 발생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나하나 시스템을 갖춰 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른바 ‘국가개조론’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국가개조를 말한다고 해서 개조가 되나. 한마디로 말장난에 불과하다. 안전문제 하나도 해결 못하는데 무슨 수로 국가를 개조하나. 물론 총론적으로는 국가개조를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를 개조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말고, 국민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 하나부터 바꿔 나가는 범국민운동을 전개하는 게 차라리 더 실현성이 있을 것이다.”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