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아’로 찍혀 대학서 쫓겨나는 학생들

대학 운영에 비판적 행동 보이면 퇴학·출교 등 조치로 학교 밖으로 내몰아

중앙대 철학과 3학년에 다니던 김창인씨(24)는 5월 7일 학교를 떠났다. 그날 김씨는 중앙대 영신관에서 “대학은 기업이 아니고 나 또한 상품이 아니다”라며 자퇴를 선언했다. 4년 전 ‘김예슬 선언’과 비슷해 보이지만 김창인씨는 대학에서 ‘쫓겨난 것’에 더 가깝다. 김씨 본인도 “형식은 자퇴지만 반은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퇴학당한 적도 있고, 자퇴를 하지 않았으면 결국은 쫓겨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스스로를 ‘두산 1세대’라고 불렀다. 김씨가 중앙대에 입학하기 1년 전인 2008년,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했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중앙대 이사장에 선임됐다. 이후 중앙대는 학과 통폐합을 거론하고,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축소하겠다는 안도 내놓았다.

김씨는 5년 전에 비하면 학교 내 학생 자치가 크게 후퇴했다고 말했다. 2009년 중앙대는 총장을 비판한 교지 <중앙문화> 전량을 강제로 수거했고, 이듬해에는 예산을 삭감했다. 2010년 초에는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새내기 새로배움터’(새터) 행사를 불허하려고 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학생 자치활동인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 역시 학교가 주도하는 ‘팜스테이’로 바꿔버렸다.

김씨는 “1학년 때만 해도 동아리 등에서 붙인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학교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요새는 기업 광고 포스터만 곳곳에 붙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5년간 중앙대학교가 “학생에 대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의 이력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5월 7일 중앙대 철학과 김창인 학생이 동국대에서 자퇴선언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학생에 대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
2010년 4월, 김씨 등 학생들은 한강대교에서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걸고 고공농성을 벌였다. 중앙대는 곧바로 이들에게 퇴학조치를 했다. 학생들은 소송 끝에 2011년 1월 퇴학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학교는 바로 무기·유기정학 조치를 내렸다.

정학 기간이 끝나자 김씨는 2013년 11월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에 단독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김씨가 후보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징계 전과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학생회장 선거는 두 번이나 파행된 끝에 무산됐다.

김씨에 대한 학교 측의 압박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학생회장 출마를 막았던 것과 똑같은 이유를 내세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받고 있었던 김씨의 장학금을 환수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김씨는 “제정신으로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함께 활동하던 노영수씨는 두산 직원의 미행까지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동국대 대학원생 최장훈씨(28)는 김창인씨의 자퇴 기자회견을 보며 학부생 시절을 떠올렸다. 2011년 12월, 최씨 등 동국대생 3명은 학과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농성을 벌였다. 학교 측은 이듬해 1월, 총학생회장 당선자였던 최씨 등 3명에게 퇴학처분을 내렸다. 몇 달 후 퇴학 결정은 철회됐지만, 그 기간 중 정상적인 총학생회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최씨는 “당시 총학생회장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징계를 받았다”며 “솔직히 징계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총학생회장 직함에 책임을 지고 버티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2006년 동국대에 입학했다. 그해 4월, 인근 고려대에서 학생 7명이 ‘출교’(퇴학과 달리 재입학 불가)당했다. 고려대의 출교조치는 다른 대학들에 ‘귀감’이 될 만한 성과를 남겼다. 비록 법정다툼 끝에 7명에 대한 징계는 철회됐지만, 고려대 내의 운동권 세력은 상당히 위축됐다. 출교생들은 ‘패륜아’로 낙인찍혔고, 운동권 총학생회가 들어서는 일은 드물어졌다.

최씨는 “실제 대학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벌어지면 지지해주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교 이미지가 실추되면 취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상당히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2006년 당시 고려대 출교생이었던 서범진씨(31)는 “기업이 노동조합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비판적인 노동자들을 해고하듯, 대학에서도 일단 퇴학과 무기정학으로 ‘자르고 보자’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2006년 출교조치 이후 고려대 학생들이 학교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법정싸움에서 승리했기 망정이지, 그때 출교조치가 그대로 시행됐다면 훨씬 더 많은 대학들에서 비판적인 학생들이 쫓겨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 등 출교생들은 2년 만인 2008년 3월에 복학할 수 있었다. 1년 뒤 고려대 측은 법원이 출교에 대해서만 무효를 판결한 것이라며 7명의 학생들에게 다시 무기정학을 내렸다. 서씨는 “그때 난 이미 졸업을 하고 다른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한마디로 부관참시를 당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나는 학교를 떠났는데 언론과 학교 커뮤니티에서는 내 이름이 오르내렸다. 법원에서 부르면 출석해야 하는 등 대학원 생활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1년 12월, 동국대 학생들이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총장실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비판적 노동자 해고 행태와 비슷”
대학의 기업화와 함께 비판적인 학생들에 대한 학교 측의 대응도 기업화하고 있다.

동국대 최장훈씨는 “조용히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잘해야지 굳이 운동권과 엮일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가 분명 있다”며 “투쟁을 불편해하는 학생들도 마음놓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을 학생운동가들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씨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니면서도 꾸준히 학부생들의 운동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대학생들이 ‘생각 없는 세대’가 됐다는 진단이 이따금 나오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에서도 볼 수 있듯 사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불만은 예나 지금이나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중앙대 김창인씨도 “대학의 기업화 흐름을 막을 뾰족한 수가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다”며 “2010년만 해도 대학의 기업식 구조조정에 대한 찬반이 팽팽했지만, 지금은 부정적인 여론이 더 많은 방향으로 바뀌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쫓겨난 경험을 한 학생들도 대학 구조조정 자체는 피하기 어려운 점은 인정했다. 예비 대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구조조정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돈이 안 되는 과들을 없앤다’는 식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것이다. 정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소통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라고 반문했다. “지난해 없어진 과 중에 비교민속학과가 있는데 취업률이 굉장히 높은데도 폐지됐다. 구조조정의 기준이 무엇인지, 학교와 이 사회가 학생들을 ‘애들’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중앙대 자퇴생 김창인씨는 이제 학생에서 ‘백수’가 됐다. 그가 대학의 자성을 요구하며 붙인 ‘자퇴 대자보’는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제거됐다. “이미 군입대 날짜가 정해졌다”는 김씨는 “중앙대에서 좋은 친구들, 선후배와 교수님을 만나서 좋았고, 나는 아직도 중앙대를 모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