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부자 되세요’ 주문을 걷어차라

우리 안의 물신주의와 한탕 욕망이‘위험’키워… ‘부자 아니어도 행복한’사회가 안전한 사회

한국 사회에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보다 더 원초적인 욕망은 없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려고 안달하고 달려간다. 돈이 신분을 정하고, 돈이 목숨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한 욕망이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한마디로 보여준 게 있다. 2001년 12월 BC카드의 연말 광고에 나온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였다.

‘부자 되세요’는 너도 나도 부자되려고 일로매진하고, 돈만 떠받드는 사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카피였다.

아파트 공화국 수직증축 등 당연시
‘부자 되세요’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들었고, 아무도 그 어두운 면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부자 되세요’는 한국 사회의 물신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인 동시에 한국인들의 경제적 불안감이 압축된 말이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부동산대책 이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단지에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대신 언제 구조조정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IMF 이후 경쟁이 심화된 한국 사회에서 부자 되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 부에 대한 욕망은 현실의 불안감과 떼어놓을 수 없다.

부자가 되고 싶은 한국인들의 욕망으로 굴러가는 것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인 4월 25일, 국토교통부는 지은 지 15년이 지난 아파트의 경우 ‘수직증축’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대상으로 꼽히는 지역은 서울 강남 일대와 고양시 일산, 성남시 분당, 안양시 평촌 등 ‘1기 신도시’ 지역이다. 오랫동안 리모델링이 허용되지 않아 사실상 해체 상태였던 조합들도 즉시 재결성 단계를 밟고 있다. 대표적인 수직증축 리모델링 지역으로 꼽히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다음과 같이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이미 작년부터 동네 곳곳에서 ‘수직증축 리모델링 적극 환영’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조금 찝찝한 감이 없진 않지만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만 하겠나.”

최근 주식시장도 상승장을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KRX)의 주식통계에 의하면 2012년 말 기준으로 주식시장에 참여한 사람은 500만4000여명이다. 한국인 전체의 10.31%, 경제활동인구의 19.95%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만 해도 전 인구의 7.03%만이 주식투자를 했지만, 12년 사이에 이 수치는 꾸준히 늘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상승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주식시장에 진입하는 사람 자체는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개미투자자들이 대박의 꿈을 이루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외대 무역학과 김민혁씨가 지난해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개미투자자(지분율 1% 미만의 소액주주)의 투자행태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개미투자자들의 지분율 총합이 높은 종목일수록 수익률이 떨어졌다. 즉, 주식시장은 구조적으로 큰 손이나 기관투자가만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논문은 “개인투자자들은 시장 상승기에 우월한 투자 성과를 얻지 못하고, 시장 하락기에 상대적으로 더 큰 손실을 본다”고 지적했다.

미래세대 위해 덜 풍요로운 삶 고민을
경제평론가 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장은 “주식과 부동산 열풍은 한국인의 중심에 돈, 소득, 경제, 이런 것들이 자리잡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5월 22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 코스피 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모습이 나왔다. | 연합뉴스

이미 여러 경제전문가들이 빚으로 투자하고 소비하는 경제구조에 대해 의문을 표시해 왔다. 몇 년간 계속된 부동산 부양책은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를 여는 데 한몫 했다. 송 소장은 “그동안 한국의 성장 위주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국민경제 전체에서 산출한 소득을 가계가 아닌 기업으로 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개인은 빚에 허덕이고 부동산이나 주식에서 돈을 벌길 원하는 것이다. 한국처럼 양극화가 겹친 빚 경제는 사상누각이라는 점을 오래 전부터 경계해 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일관되게 대출을 통해 집을 사라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송 소장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다른 선진국들은 다들 가계부채를 줄이고 있는데, 한국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OECD 최고”라며 “부동산정책으로 잠깐 경제상황을 떠받치는 건 벌써 5~6년간 해봤지만 안 된 거 아니냐”고 말했다.

‘부자 되세요’의 주문에 사로잡혀 있는 건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후보들은 ‘지역 개발’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다시 불거졌고, 한 번 죽었던 용산개발의 욕망이 선거 바람을 타고 다시 숨을 쉬고 있다. GTX 등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공약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은 “성장주의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된 규제 완화도 결국 성장 제일주의의 폐해 아니었나. 경제성장과 기업 이윤을 위해서 안전은 뒤로 밀려 왔던 것이 그동안 한국 사회의 모습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도 성장사회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도 ‘4대 성장전략’을 이야기했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복지나 탈원전 등을 강조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성장을 목표로 한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관철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 위원장은 “수십년간 성장 제일주의에 매몰된 결과 농촌이 황폐화되고 도시에만 사람이 몰리게 된 것이다. 성장을 통해 ‘부자가 되자’가 아닌 ‘부자가 안 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자’는 방향으로 정치 자체가 크게 변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는 유한… ‘탈성장’으로 가야”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한국에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많지만 대체로는 성장의 속도를 늦추자는 쪽이지 성장 자체를 중단하자는 말까지는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지구의 장래와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덜 풍요롭게, 검소하게 사는 삶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서 한 남성이 가격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 몇년 전에 피크 오일(석유 생산 정점)이 지났다는 분석도 있고, 지금 떠오르는 셰일가스도 생산 정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20년간 ‘탈성장’을 외롭게 이야기해 왔는데 최근 몇년간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생겼다.”

김 발행인은 “지구는 유한하다”고 했다. 성장 제일주의도 언젠가 종언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낙오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부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왔다. 강박감은 어느새 당연한 욕망으로 자리잡았다.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탄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가 다른 삶을 꿈꿀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선 ‘부자 되세요’의 주문에서부터 빠져나와야 할 것 같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성장담론의 허구성

경제성장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이 신자유주의 사회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특징으로는 경제 개방, 민영화, 규제 철폐, 자유시장경제 등이 꼽힌다. 이후 민주·보수 계열의 정당이 번갈아 집권했지만 국가 정책의 초점은 ‘경제성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 중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높은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 첫손으로 꼽힐 정도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핵심 이론 중 하나가 바로 낙수효과다. 2013년 IMF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명목 GDP는 약 2만4000달러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엷어지는 등 과연 ‘커진 파이’를 고르게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큰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아직도 낙수효과가 실재한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올해 초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명지대 조동근·빈기범 교수는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일수록 매출 성장률이 빠르다며 낙수효과는 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 21일 자유경제원은 ‘다시 성장담론이 필요하다’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 토론회 참가자들은 규제 철폐, 자유주의 강화를 통해 저성장의 그늘을 벗어나자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계속된 규제 완화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정책이 모든 국민들에게 혜택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발표한 공정거래위 자료를 보면, 지난 10년 사이 재벌의 독식구조는 강해졌지만 고용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2003년 GDP 대비 50% 수준이었던 10대 재벌의 매출액은 2012년에는 GDP 대비 84%까지 상승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기간 중 10대 재벌은 국가 전체 성장률의 몇 배가 넘는 연간 10%대의 매출액 증가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10대 재벌의 고용은 2.5% 수준에 그쳤다. 4월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대 그룹의 상장사 91곳의 직원은 약 61만명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취업자 수는 약 2496만명이었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탈성장론자들은 정부가 GDP 목표량을 설정하는 등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GDP와 삶의 질, 행복도가 전혀 관련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GDP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명목 지수보다 실질적인 척도인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3000달러로 세계 27위다. 하지만 유엔이 올해 2월 발간한 ‘세계행복보고서 2013’에 의하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41위에 불과하다. GDP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부패에 대한 인식’이나 ‘너그러움’ 등의 분야에서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1인당 GDP는 낮지만 파나마, 베네수엘라, 칠레 등 일부 중남미 국가 사람들이 오히려 한국보다 행복한 것으로 나온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탈성장은 성장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라며 “지구가 유한한데 경제성장이 무한히 이뤄질 순 없다. 긴 인류역사에서 보면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지금이 비정상적인 시기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