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국가와 개인 ‘이중 혁신’이 필요하다

김호기 교수 ‘세월호 참사와 한국사회의 과제’ 특별기고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대단히 큰 충격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런 충격을 처음 겪는 것은 아니다. 서해 페리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앞선 대형사고들과 비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세월호 참사는 그 슬픔과 분노가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세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구조를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둘째, 사전 예방을 할 수 있었고 구조 가능성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크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침몰하는 세월호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이 참사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사회 위기’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제시돼 왔다. 침몰이 청해진해운의 잘못이라면, 참사는 정부의 잘못이라는 지적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500명에 가까운 이들을 태운 대형 선박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청해진해운의 운항이 침몰의 일차적 원인이라면, 사고 전후의 안전 감독과 구조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정부의 대처는 참사의 일차적 원인이다.

세월호 참사에는 여러 요인들이 중첩돼 있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적 시간을 ‘사건사적 시간’, ‘국면사적 시간’, ‘구조사적 시간’으로 나눈 바 있는데, 세월호 참사에도 이 시간들이 공존한다.

5월 19일 오전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관련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사건사적 시간에서는 사전 예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청해진해운의 운항과 초동 대처에 미숙했던 해경을 포함한 정부의 대응을 주목할 수 있다. 세 가지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책임은 엄중하다. 첫째, 세월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경은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둘째, 안전행정부 역시 재난 총괄 컨트롤타워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셋째, 청와대 국가안보처는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신과 상처를 안겨줬다. 실종자를 단 한 명도 구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부는 무한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면사적 시간에서는 규제완화,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구조를 신자유주의로 재편해온 이른바 ‘97년체제’를 주목할 수 있다. 97년체제는 ‘경쟁을 위한, 경쟁에 의한, 경쟁의 체제’다.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적 97년체제에 귀속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지만, 무한경쟁·적자생존·약육강식의 이 체제는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이 말하는 ‘인간성의 부식’, 다시 말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서의 책임윤리의 실종을 가져 왔다.

어디에 서 있는가
나아가 구조사적 시간에서는 성장지상주의에 매진해온 결과로서 나타난 ‘이중적 위험사회’를 주목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압축적 산업화의 초기부터 위험사회였다. 산업화된 국가들을 추격하기 위해 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고, 이런 성장지상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 사회적 안전, 문화적 신뢰 등의 가치를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생태위기 등을 포함한 사회학자 울리히 백(Ulrich Beck)이 말하는 현대성이 가져온 결과로서의 위험 또한 존재했다. 오래된 위험과 새로운 위험이 함께 존재하는 이중적 위험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였다.

요컨대,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현재 서 있는 자리를 복합적으로 증거한다. 이 참사는 1997년 ‘경제위기’에 비견될 수 있는 ‘사회위기’로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위기란 ‘사회통합의 위기’다. 사회통합은 사회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스스로를 자각하게 하고 동료의식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라는 공동체를 대표하는 게 국민국가라면, 어린아이들의 고귀한 생명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국가 아닌 국가’에서 우리는 ‘국민 아닌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세월호 참사는 돌아보고 또 깨닫게 했다.

최근 한 모바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시 태어난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57%)는 응답이 ‘태어나고 싶다’(43%)는 응답을 추월했다.(두잇 서베이 조사) 이것이 바로 2014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60%에 가까운 사람들이 태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를 과연 온전한 공동체라고 볼 수 있을까?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동시에 목격한 것은 국가라는 ‘제도의 침몰’과 책임의식이라는 ‘윤리의 침몰’이었다. 제도와 윤리의 ‘이중 침몰’이 우리 사회의 정직한 자화상이다.

서울 청계광장에서 17일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5·17 범국민 촛불행동’ 참가자들이 촛불을 옮기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누구는 세월호 참사를 안전사고로 국한시켜 봐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또 누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그늘을 과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독해들은 세월호 참사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가 안전사고 이상의 함의를 갖는 것은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고 많은 국민들이 침몰하는 대한민국을 떠올렸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제대로 고려한 조직은 없었다. 운항을 담당한 청해진해운도, 안전을 감독한 관련 기관도, 구조활동을 맡은 해경도,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수행한 정부도, 그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그동안 모범적으로 일궈왔다고 자부한 산업화와 민주화가 무엇이었는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문을 품게 한다.

세월호 참사를 보고 ‘하인리히 법칙’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한 번의 큰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29번의 작은 재난이 발생하고, 그 전에 300번의 사소한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세월호 참사가 ‘1대 29대 300’으로 표현되는 하인리히 법칙에서 ‘1’이 아니라 ‘29’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상상이다.

지금 여기서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만을 부각시키려는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처한 위기상황을 생생히 증거한다면, 이 위기의 공동체를 어떻게 구출할 것인지에 대한 즉각적이면서도 심원한 해법을 요청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즉각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앞으로 이런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조치가 당장 취해져야 한다는 데 있다면, 그것이 심원해야 하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 산업화와 민주화 모델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촉구한다는 데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반성적 현대화’라는 점이다. 지난 50여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이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져온 현실에 대한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 더없이 중요하다. ‘생명 없는 이윤 추구’, ‘정의 없는 기업 지배’, ‘노동 없는 민주주의’, ‘복지 없는 사회통합’, 그리고 ‘국민 없는 정부 운영’이 우리가 추구해온 ‘돌진적 근대화’의 또 다른 민낯임을 인정해야 한다.

2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비가 내려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와 희생자를 위해 놓인 물품과 리본에 빗방울이 맺혀 있다. | 홍도은 기자

브로델의 역사이론으로 돌아가면, ‘반성적 현대화’는 사건과 국면과 구조에 대한 다층적 성찰과 새로운 대안 모색을 요청한다. 사건사의 측면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재난 대처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국면사의 측면에서는 규제완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고 시장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구조사의 측면에서 사회통합이 고갈된 공동체의 재구성이다. 다시 한 번 말하면,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는 지속불가능한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다. 사회 양극화라는 제도적 조건은 물론 생명 경시라는 문화적 현실은 우리 사회를 아주 낯설고 두려운 사회로 만들어 왔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서 우리 사회가 거듭나기 위해선 ‘생명’ ‘정의’ ‘노동’ ‘복지’, 그리고 ‘국민’의 가치를 사회 발전의 중심에 놓아두고, 정부-시장-시민사회의 새로운 판짜기를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판짜기에서 중요한 것은 국가와 개인의 ‘이중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해경 해체를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과 공직사회 혁신을 내걸었지만, 세월호 참사에 담긴 국면사적·구조사적 의미를 돌아보면 이런 해법으로 과연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효율’ ‘성과’ ‘자본’ ‘성장’ 그리고 ‘권위’만을 중시하는 프로그램은 국가와 개인의 이중적 혁신에 대한 미봉적 해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생명경시, 정경유착, 부정부패, 감시사회, 그리고 결과중심주의는 돌진적 근대화의 그늘이며, 이런 그늘을 올바로 극복하지 않고서는 인간적이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돌진적 근대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대안 모색으로서의 반성적 현대화가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자기 땅에서 유배되는 사람들’이 양산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지난 2009년 6월에 열린 용산현장 문화제의 선언문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얼마나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우리 사회는 이 무모한 근대화의 돌진을 멈출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고 경제적 가치와 인간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어떻게 일궈나갈지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고 프로그램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로 꽃다운 생명을 잃은 어린아이들에 대한, 대한민국이라는 이 공동체를 살아갈 다음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엄중한 책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