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이제는 인간안보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른바 ‘세월호 모멘텀’이다. 성급한 전망일까. 대형 재난은 과거에도 벌어졌다. 앞으로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참극이 던지는 파장이 이토록 큰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남 진도 앞바다에는 아직도 5월 23일 현재 16명의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구조·구난 과정에서 정부의 무능력이 드러났다. 5월 17일과 18일, 서울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참여한 일부 시민들은 대통령의 책임을 묻겠다며 청와대 쪽으로 행진했다. 행진대열은 종로3가, 안국동에서 막혔다.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5월 19일 담화는 해체당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참사다.

5월 11일 오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 조성된 ‘노란리본의 정원’에서 한 어린이가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 정지윤기자

국민이 묻기 시작했다, 국가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인생에서 나라가 뭔가, 국가가 뭔가 스스로 물어본 적이 세 번 있었다. 하나는 어렸을 때 성당 가서 광주 5·18 비디오를 봤을 때이고, 두 번째가 김선일씨 피랍사건 때였다. 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나는 살고 싶다’고 외치던 김씨를 끝내 국가가 살려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세 번 중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받은 아픔과 충격이 가장 컸다.” 5월 19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고장 난 나라와 세월호, 다시 국가를 묻는다’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여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개인 소회다.

세월호 사건에서 ‘80년 광주’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문재인 의원은 5월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라는 말을 썼다. 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광주시민들이 죽음으로 내몰렸으며, 세월호는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의해 아깝고 어린 목숨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고 말했다.

‘80년 광주’는 1980년 5월 전라남도 광주 일원에서 끝난 사건이 아니다. 이후 80년대와 90년대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고 추동력이었다. 거리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도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갔다. 학살로 집권한 정부는 사실을 은폐했다. ‘80년 광주’를 상징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을 두고 지금도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건 후 많은 사람들은 “잊지 않겠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죄 없는 아이들이 희생된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다.

안보, 안전보장은 이번 참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5월 22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전격 경질됐다. 언론들은 그의 경질사유에 대해 “국가안보실은 재난 관련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했던 한 달 전 발언을 들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재난사건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가 정확한 정보를 걸러내는 데 실패한 것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여론의 비판에 대해 아예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안보실은 통일·안보·정보·국방의 컨트롤타워이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김 실장의 경질은 이런 기존 청와대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까.

국가안보와 재난을 분리하려는 정부
참여연대 토론에서 이대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은 ‘국가안보’에 집착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 비유해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던 정부의 무능은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광화문 세종대왕상에 올라간 학생들의 시위는 10분 만에 진압하는 유능함에 대비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국가의 총체적 무능력함과 파렴치함은 준비부족이나 무엇인가가 고장 나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 국가가 설국열차이기 때문이다.

고속으로 유능하게 질주하는 설국열차 대한민국의 경우 그 ‘설국’은 안보위협으로, 기관차는 안보국가로 설정되어 있다. 그 기관차에 들어가 보면 국가는 없고 기관사만 보인다. 국가안보는 기관차의 이름일 뿐이고, 안보는 기관사를 위해 존재한다. 사실 ‘국가안보’라는 호칭은 기관사의 안보를 가리키는 것이다.” 결국 국가안보는 정권안보와 등치되며, 시민안전은 국가안보 시스템에 종속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5월 14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전교조 서울지부 선생님들이 ‘세월호 희생자 추모 서울교사 결의대회’를 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정지윤기자

“중요한 것은 대통령 자신의 안보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같은 사건을 다룰 능력이 정말 없다면 물러나야 한다. 만약 청와대의 해명이 대통령의 소신이라면 더 심각한 문제다.” 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의 말이다. 초대 국가위기관리학회 회장이었기도 한 그는 2009년부터 4년간 대통령실 국가위기상황센터 정책자문위원을 맡았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열리는 각종 토론회에서 이 교수가 반드시 언급하는 말이 있다. “국민 한 사람의 생명과 재산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 과연 그 정부가 휴전선과 독도를 지킬 수 있는가.” 나라의 영토와 주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가안보와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안전은 뗄 수 없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안보’에 대한 이런 인식은 이미 참여정부 때 확립되었다. 2007년 6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왜 위기관리를 청와대에서 하느냐’고 질의한 데 대해 당시 NSC에서 했던 답변이라는 것이다. 보수정권으로 바뀌면서 안보 개념은 다시 전통적인 군사안보 개념으로 회귀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 당시 자신의 국가위기상황센터 자문위원 경험을 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래도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위기상황센터를 만들고 청와대 벙커에서 경제를 주제로 논의를 하는 등 아주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국가안보실을 만들면서는 전통적 안보로 완전히 회귀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관료조직의 시즌2가 되지 않을까.”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이다.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담화에서 내놓은 ‘컨트롤타워로서 국가안전처 신설’이라는 해법이 과연 작동하겠느냐는 회의다. “세월호 사태에서 문제의 핵심을 관료주의와 관피아라고 본다면, 새로운 관료조직을 만든다고 관료적 관성을 해소하거나 안전이라는 개념이 보장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번 사태의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컨트롤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전통안보 개념을 지키기 위해 안보와 안전을 인위적으로 분리하고 인간안보적 상황을 도외시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기존에 주창해 오던 안보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와 군사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인 안보’ 개념을 국가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생명과 재산, 삶의 방식을 보호하는 ‘포괄적인 안보’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포괄적 안보의 핵심은 ‘인간안보’(human security)다.

국가안보를 넘어서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인간안보’는 국제사회에서 낯선 개념이 아니다.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보고서에서 처음 언급된 이래, 관련된 논의와 적용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반기문 총장도 지난 2010년과 2012년 낸 보고서를 통해 인간안보 문제에 회원국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기를 촉구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과 학생들이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청와대 쪽으로 향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뉴시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는 인간안보적 관점에서 대통령 담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정부가 주도하는 국가안보의 시각에서 재난문제를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조직 개편을 중심으로 대책을 내놓는 박 대통령의 시각은 결국 국가권력이 결정하고 거기에 따라오라는 것인데, 사회재난 정보의 투명성이나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협력적·수평적 관계 설정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시각은 결국 시민사회의 높아진 요구 수준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안전·기후·빈곤 등 ‘인간안보’ 개념확장
최종건 교수는 인간안보를 비롯한 ‘포괄적 안보’ 개념이 중요하게 떠오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냉전 종식 이후 지구적 차원에서 소위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외부의 주적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사람은 더 많이 죽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주권의 범위가 미치는 영토의 내외부에서 안전사고, 인신매매, 기후변화 등을 이유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생활방식이 침해되는 일이 일어난다. 이전에는 안보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던 비전통적인 부분에서 안보문제가 오히려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국제사회에서 안보문제를 일으키는 두 가지 형태는 불량국가와 파산국가였다. 핵개발로 주변국가의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한이 전자라면, 내치에 실패해 해적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소말리아가 두 번째다. 인간안보와 관련해 유엔의 처방도 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문제에 맞춰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간안보’의 개념을 더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UNDP가 인간안보가 달성해야 할 목표로 제시한 것은 ‘빈곤이나 기아로부터의 자유’와 ‘물리적 폭력이나 군사력 위협으로부터의 자유’ 두 가지였다. 여기에 반기문 총장이 새롭게 강조한 부분은 ‘인간답게 살 자유’(freedom to live in dignity)였다. 김성철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는 “단순히 생명을 보전한다는 의미를 떠나서 위협과 공포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지만, 재난이 발생할 경우 기존의 불평등과 사회균열이 보다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없다”고 말했다. 흔히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곳으로 인식되는 나라라고 해서 재난의 불평등성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태풍 카트리나의 피해를 입었던 미국 사회의 경우다. 김 교수에 다르면 카트리나 후 실업률은 유색인종이 백인의 4배나 높았다. “백인이나 잘 사는 사람들은 사건 전 여러 가지 사회적 활동을 통해 다층적인 사회적 연계망을 가졌기 때문에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었는 데 비해, 흑인들은 그런 사회적 자산이 없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 가중되었던 것이다.”

국가안전처보다 시급한 원전문제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김윤철 교수는 “세월호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진 충격은 국가사회를 횡단하여 기업, 언론, 지식인, 시민 자신에게도 연계·연쇄효과로 빚어낸 참사였다는 것이고, 참사 자체가 한국 사회 구성체의 역사와 현실, 균열을 다 드러낸 결과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사실 언론으로부터 국가안전처를 어디에 둬야 하느냐를 묻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하는 이야기인데 그 논쟁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 이재은 교수의 말이다. 가까운 시일 내 세월호 사건보다 더 큰 안보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 있다는 것이다. 고리원전 1호기다. “외부에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지난해 원전 폭발 직전 상황까지 갔었다. 보수·보강을 했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각종 시설은 30년에 맞춰져 설계되어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원전 고장의 20%가 고리원전에서 일어났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관피아니 해피아 같은 말이 나오는데, 원전마피아 문제는 진작부터 지적되어온 문제였다.” 반경 30㎞ 내에 300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최악의 원전사고라고 말하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보다 더 큰 사고가 예견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시스템의 실패가 드러났다면, 고리원전은 국가의 생사 존망이 걸린 문제라는 게 이 교수의 생각이다.

문제는 박근혜 정권의 인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정부조직 개편 논의에서 국민의 안전을 중시한다며 지난 정부 행정안전부의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 밑으로 이관할 것을 계획하다 반발 여론이 빗발치자 총리실 산하기구로 급을 낮췄다.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박근혜 정부는 과연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5월 19일 대통령 담화만 놓고 보면 아직 안전문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