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원전폐쇄 경험 없는데 무슨 원전강국”

김혜정 원자력안전위 위원 “진흥기관이 장관급인데 차관급 규제기관이 감독하겠나”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던 4월 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고리원전 재가동을 결정했다.” ‘세월호 사건 다음에 벌어질 대형 참사는 고리원전이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와 함께 나오는 이야기다. 4월 16일 결정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논의를 거쳐 재가동이 결정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뒤늦게 지난해 8월 출범한 2기 원안위는 회의 속기록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4월 16일 결정 전 열린 회의는 4월 11일 열린 제24차 회의다. 그런데 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여부 결정은 안건에 없었다. 2기 원안위 첫 회의 속기록인 12차 회의록에서 벌어진 토론에 답이 있었다. ‘예방 차원의 정지’ 후 재가동의 경우 위원장과 사무처 판단에 맡긴다는 것이다. 위원들의 심의대상이 아니다. 불시정지 등 신속한 판단이 필요할 때마다 회의를 소집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주장에 수긍이 가지만 의문은 남는다. 위원회가 해야 할 핵심적인 결정과정에 정작 위원들의 참여가 배제된 건 아닐까. 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비상임)을 만난 까닭이다. 세간의 ‘고리 1호기 위험론’에 대해 ‘탈핵시민운동 출신의 원안위 위원’인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회의록을 검토해 보면 4월 11일 24차 회의나 전후 회의에도 ‘고리원전 재가동’은 심의·의결 안건으로 올라와 있지 않은데요.
“안건은 아니었고, 구두로 ‘고리원전 1호기의 안전성 문제에 대해 여론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다각도로 검사를 해서 다시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1일 회의에서도 ‘16일 재가동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못 들었고요. 사실 통상적인 예비정비는 특별히 보고하진 않아요.”

결과론적 이야기가 되겠지만, 세월호 사건이 나던 날 문제 많은 원전의 재가동을 승인했다는 것 자체가 국민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정권에 만들어진 1기 원안위와 다른 점이라면 국회 추천으로 탈핵을 이야기하던 시민사회에서 김 위원을 포함해 두 분이 원안위에 들어갔다는 점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있는 걸까요.
“사실 규정상 두 사람 이상이면 안건을 제기할 수 있어요. 사안에 따라 두 사람뿐 아니라 국회 추천으로 들어온 4명, 그리고 정부 추천으로 들어온 위원까지 같이 안건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회의록을 검토해 보면, 과거 1기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때는 속기록도 공개하지 않았고, 중요한 안건을 결의하는 회의가 1시간 만에 끝나서 비판기사를 쓴 적도 있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위원들이 원자력 마피아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고….
“물론 한계는 있어요. 비상임위원으로서는 정보 접근에도 한계가 있고요. 보고된 내용, 서류를 토대로 회의를 하다 보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사실을 은폐하면 원안위도 알 수 없어요. 지난해 원안위 활동을 시작한 이래 주요 사고나 고장을 보면 대체로 은폐되었다가 원안위도 언론 보도를 보고 안 경우가 많았어요. 고군분투입니다. 위원장도 일방적으로, 이를테면 친원전 식으로 회의를 진행하지 않습니다. 안전문제에 관심이 집중된 만큼 위원들이 모두 열심입니다.”

구조적 한계도 있습니까.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장갑이 없어 소방관이 아마존에서 개인 돈으로 구입한다는 이야기가 보도되었어요. 소방방재청이 가장 하위의 부서죠. 공무원들도 피하려고 합니다. 재난과 안전 쪽이 가장 표가 나지 않는 부서이니. 원자력 규제도 마찬가지예요. 세월호 사건이 나기 전에 대통령의 “규제는 암덩어리” 발언이 나온 다음에 정부 모든 부처에 10% 이상 ‘암덩어리 규제’를 찾아내라고 구두로 목표 할당량이 떨어졌어요. 원자력안전위원회도 그것 때문에 바빴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나고 난 다음에 다시 물어보니 얼버무리더라고요.”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원래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총리실 산하로 원안위가 간 것에 대해 비판도 많았잖아요.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된 것인데. 거기서 오는 한계도 있나요.
“‘원전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면서 산업부가 원자력감독법을 추진하잖아요. 박근혜 정부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안전을 강조하면서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규제를 완화하라는 식입니다. 부처가 없어서 재난이 일어난 것도 아니잖습니까. 원자력 진흥을 담당하는 산업부는 장관급인데 규제기관이 차관급이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장관급이 아니니 국무회의 등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기회도 원천 차단돼 있고….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가 뭔지도 모르고 거꾸로 된 해법을 내놓는데, 무엇을 알아서 ‘산업부가 컨트롤타워가 돼라’ 이렇게 이야기했을까요. 결국 원자력 진흥을 주장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잘못된 판단의 이유죠. 산업부는 ‘원자력감독법을 힘센 데서 가지고 와야 한수원을 규제할 수 있다’, ‘원전마피아를 잡는 법’ 식의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아니 원전 부품비리 사건에 산업부 전 차관까지 연루되어 있었는데 규제와 관리·감독을 다 하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규제기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군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안전을 최우선하려면 규제기관을 실질적으로 규제를 하는 부서로 만들면 됩니다. 그런 시그널을 주면 공무원은 바뀌어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규제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계속 그 일을 담당해요. 심지어 정치권과도 독립되어 있습니다. 임기를 일부러 선거와 엇갈리게 만들어놨어요. 외부의 정치적 환경과 상관없이 부서가 존속되고, 우리나라의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는 최고의 부서로 되게 하면 그 구성원들도 바뀔 겁니다.”

고리원전 1호기 문제를 이야기해 보죠. 설계수명 시한 30년을 넘겨 지난 2007년에 10년 연장 결정이 나왔는데요, 말하자면 2017년까지 수명이 연장된 셈이죠. 지난 결정 후 원안위가 만들어졌는데 앞으로 원안위에서 폐로(閉爐·원자로 문을 닫는 것) 논의는 할 수 없는 것입니까.
“가동 중단이 아니라 폐로로 가는 것은 정치적 결정이라고 봅니다. 그 프로세스를 밟는다면 원안위를 거쳐야 할 것이고요. 정치적 결정이라는 건 원전 문을 닫는다면 어떤 안전기준을 적용할 것이냐는 부분에서 전체적으로는 사회적 가치가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30년 설계수명을 넘겨 현재 한국에서 발생한 전체 사고의 20%를 차지한다는 지적에 대해 한수원 측은 ‘지난 2008년 이후 벌어진 전체 원전 관련사고 중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만 사고가 많았다는 주장인데요.
“동의하기 힘듭니다. 설비가 노후화되면 고장과 사고의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원안위에서 한국형 원자로라고 하는 APR+의 설계인정 심사를 하고 있는데, 설명하시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해요. 후쿠시마 사건 이후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다 반영해 안전이 한층 강화되었다, 이를테면 항공기 충돌대비든지, 전원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냉각수가 공급될 수 있도록 했다든지, 내진설계가 훨씬 강화되었다는 겁니다. 사석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그런 지적을 했어요. ‘당신들 설명대로라면 이전에 지어져 가동 중인 원전은 그런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아무 말도 못하던데요.”

한수원은 설계수명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수명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설계수명을 넘겨 사용하는 원전도 미국이나 프랑스에 여럿 있다면서요.
“물론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폐로한 원전 129개의 평균 수명은 22년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메르켈 총리가 17개 원전 중에서 고장과 사고가 잦은 8기를 바로 폐쇄했습니다. 원래 보수정당 수장으로 원전에 찬성 입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다시 고리원전 1호기를 봅시다. 작년에도 18시간 동안 전원상실 사고가 있었어요. 핵연료는 장전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용후 핵연료는 저장되어 있었거든요. 1팀장, 2팀장이 다 스위치를 끄고 있다가 3팀장 차례가 되어서야 18시간 만에 전원이 들어온 것입니다. 사실 이게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확립된 것이거든요. 후쿠시마 사고 후 4호기, 5호기 사용후 핵연료 저장소가 폭발하면서 그 후 핵연료가 있으면 전원을 살려둬야 한다고 안전 매뉴얼이 갱신된 것입니다. 핵사고는 사고가 난 다음에야 원인이 뭔지 확인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비정규직 선장 문제가 거론되었어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개인을 욕하기 전에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죠. 원전 운영에도 그런 요소가 있나요.
“이를테면 계획예방정비 기간을 종전 60일에서 30일로 줄였습니다. 제일 만만한 것이 정비파트예요. 정비인력을 계속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축소하는 겁니다. 부품비리가 문제가 되니 순환보직을 시킨다고 하는데, 실제 비리문제를 일으키는 쪽은 운영이 아니라 구매파트거든요. 이 경우 순환보직해도 소용없어요. 예컨대 고리에서 일하는 사람이 영광으로 가면 딸린 보따리장사들이 다 같이 따라갑니다. 원자력 안전운영에 관계되는 사람은 비리에 직접 노출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발전소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강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그 조직 내에서 프라이드가 높아야 하고 보수도 높아야 합니다. 사고의 가장 큰 이유가 휴먼 에러인데, 공기업 경영효율 같은 것을 내세우면서 정비인력을 감축하니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것이죠. 그 상태가 계속되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안 지고 도망가는 세월호 선장 및 선박직 직원 같은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겠죠.”

돌이켜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원자력 강국이라는 자화자찬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아직 폐로 경험이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사람들 논리대로 하더라도 폐로 경험을 쌓아야 진정한 원자력 강국이 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원전 건설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해체기술도 축적되어야지요. 고리원전 1호기의 경우 폐로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습니다. 현재 지방선거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되어 있어요.”

원안위 법에 따르면 임기가 3년입니다. 올해 8월이면 임기 1년이 지나는 셈인데 고리원전 1호기나 월성 1호기 재연장 문제 등 큰 결정을 임기 내 다루게 되는 겁니까.
“고리원전 1호기는 2017년에 다시 수명연장을 결정하게 되는데 신청허가는 2년 전까지 내게 되어 있어요. 내년 6월까지는 원안위에 신청을 해야 할 겁니다. 결국은 임기 내에 다루게 되겠죠.”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