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거리 응원은 자제되어야 한다

이번 월드컵의 거리와 광장은 스포츠 국가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어김없이 달라붙게 될 ‘세월호 유가족 심심한 위로’라는 알리바이의 기묘한 결합으로 유례없이 그로테스크해질 것이다. 스포츠 국가주의로 위장한 자본의 말들과 거대한 현수막들이 나붙을 것이다. 그 아래서 외치는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란 얼마나 공허하며 심지어 가증스러운 것인가.

다시, 6월이다. 이렇게 말하면 연세 지긋한 분들은 ‘6·25 사변’을 떠올릴 것이고, 386 세대는 ‘6월 항쟁’을 떠올릴 것이다. 여느 해라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월드컵의 6월이다. 그 주기가 같은 지방선거의 6월이기도 한데, 일단 선거는 끝났으니 그렇다면 4년마다 다가오는 메가 이벤트, 월드컵이 남았다.

벌써부터 방송에서는 “하나 되는 대~한민국” 소리가 들려오긴 하지만 과거에 비해 모두가 조금씩 주춤거리는 양상이다.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화려한 무대와 요란한 음악을 틀면서 대규모 응원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조심스런 마음들이 있다. 이 마음은 아주 귀하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이야 필설로 묘사할 수도 없는 것이거니와 그 밖의 사람 모두가 침통한 마음의 조문객이다. 그 때문에 월드컵 응원에 대하여 조심스러운 것이다.

2006년 월드컵 당시 서울 광화문 일대의 모습 | 정윤수

붉은악마 응원 자연스러움 잃은 지 오래
어떤 입장이냐 하면, 나는 붉은악마가 주도하는 거리 응원이 자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더 짙어지긴 했지만 그 비극과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것이다.

응원이란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워야 하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무엇에 대응하여 자연스러워야 하는가. 그것은 응원하고자 하는 종목 그 자체의 팀 분위기, 경기 흐름, 성적 등과 응원이 맞물려 형성되어야 한다.

90년대 초반에 K리그 경기장에서 단체로 응원을 나온 회사원들을 본 적이 있다. 대오를 맞춰 스탠드에 앉은 그들은 그라운드보다는 자기들을 보면서 지휘하는 응원단장의 쉴 새 없는 지시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카드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90분 동안 ‘응원’했다. ‘아리랑 목동’ 같은 응원가가 끊이지 않았다. 득점했을 때도 부르고 실점했을 때도 불렀다. 이는 응원이 아니라 사내 단합대회일 뿐이다. 자연스럽지도 않고 자발적이지도 않다.

축구대표팀 공식 응원단 ‘붉은악마’가 주도하는 21세기의 응원문화는 이런 ‘전통’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90년대 중반 프로축구 경기장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이후 1997년 가을, 브라질 대표팀의 내한 친선경기 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붉은악마’는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 축구문화를 세련되고 역동적인 지평으로 견인하는 주역이었다. 그 모든 열정의 파란이 2002년의 거리와 광장에서 펼쳐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9년 6월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의 응원 모습. | 정윤수

그러나 그 이후, 거리 응원은 부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과잉되었고, 억지스럽게 넘쳐났으며 그에 따른 잡음도 들려왔다. 넘쳐나는 국가주의 구호 아래 자본과 미디어의 정교한 패스플레이가 작동하면서 2002년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응원의 기세는 잦아들고, 무슨 까닭인지 특정 기업이나 방송사가 정교하게 연출한 응원 공간 안에 들어가는 듯한 거북감이 느껴졌다. 촘촘한 조직과 막대한 비용과 정교한 마케팅이 광장의 응원문화에 개입하게 되면서, 나는 그 광장을 서둘러 빠져나와 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2006 독일 월드컵 때부터 피파(FIFA·국제축구연맹)는 ‘공공장소에서 2인 이상이 단체로 경기를 관람하거나 응원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공공 전시권’ 개념을 작동시켰다. 우리가 2002 월드컵 광장에서 뜨거운 열정 및 일종의 공화적 시민의 기운마저 느꼈을 때, 피파는 그 광장의 ‘환금성’을 파악한 것이다. 이 ‘공공 전시권’은 기차역이나 동네 목욕탕에서 우연히 삼삼오오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을 규제한다는 게 아니다. 개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드넓은 광장을 응원 장소로 삼게 되는데, 피파와 유관한 대기업과 미디어가 이를 거의 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주권이나 경제상황이나 축구문화에 따라 이 공공 전시권이 엄격히 관철되는 것은 아니지만, 문자 그대로 준수한다면, 피파에 막대한 후원금이나 중계권료를 낸 대기업과 미디어가 ‘응원 광장’을 전적으로 장악한다. 예컨대 피파를 후원하는 대기업의 로고가 찍힌 티셔츠나 음료수나 깃발을 흔들어야만 하는 광장이 되는 것이다. 이런 대기업이나 미디어와 경쟁관계 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광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수도 있었다.

이런 풍경, 그러니까 자연스럽고 자발적이었던 거리와 광장의 응원문화가 스포츠 국가주의에 의하여 정교하고 조직적인 행사가 되고, 엄청난 환금성에 의하여 피파와 자본과 미디어들 그리고 그들에 맞서 마케팅 혈전을 벌이는 기업들의 격전장이 되고 있는 풍경은, 그나마 한 줌의 의미를 부여했던 2002년의 거리도 아니고, 그 뜨거운 시민적 열정의 광장도 아니다. 그저 국가주의 전시장이자 자본의 격전장으로 변질되는 중이다.

이 같은 까닭에 나는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의 6월’, 그 거리와 광장이 좀 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문화로 돌아가기를 희망해왔다. 앞서 말했듯이, 이는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게 해온 오래된 생각이지만, 우리 모두가 유가족이며 조문객인 세월호 이후 상황에서 요란하고 화려한 무대는 무시무시한 집단적 횡포가 될 수도 있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세월호’에 대한 집단적 횡포 될 수도
대표팀 평가전이 치러진 5월 28일 저녁, MBC는 ‘월드컵 응원쇼 뜨거운 함성! 가자 브라질로!’를 특별 방송했다. 무대는 너무나 화려했고 태극기는 끝없이 펄럭였다. 진행자나 출연자들은 틈이 나면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다. 그들 개인의 마음이야 틀림없이 진실이다. 그러나 월드컵 마케팅 전쟁이라는 거대한 맥락에서 그 말들은 한 줌의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다. 스포츠 국가주의와 상업주의 그리고 어김없이 달라붙게 될 ‘세월호 유가족 심심한 위로’라는 알리바이의 기묘한 결합으로 인하여 이번 월드컵의 거리와 광장은 유례없이 그로테스크해질 것이다. 스포츠 국가주의와 자본이 결합한, 혹은 스포츠 국가주의로 위장한 자본의 말들이 거대한 현수막들로 나붙을 것이다. 그 아래에서 외치는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란 얼마나 공허하며 심지어 가증스러운 것인가. 그러니, 차분하고 자연스러져워야 한다.

<정윤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