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업의 성금 규모가 재계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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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성금으로 본 기업 성금 변천사… 1970~1980년대 방위성금도 당시 재계순

삼성이 150억원, 현대차 100억원, SK 80억원, LG 70억원, 롯데 43억원. 세월호 참사 이후 대기업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낸 성금 규모다. 이 순서는 재계 순위와 딱 맞아떨어진다. 5위 이하인 포스코,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도 세월호 성금 액수가 재계 순위와 비례했다. 10위권 밖인 KT, 두산, 신세계, CJ, LS도 비슷했다. 포스코가 36억원, 현대중공업·GS가 40억원을 냈다. 한진·한화·두산이 각각 30억원을 냈고, 신세계와 CJ가 각각 20억원을 냈다. KT와 LS는 각각 15억원을 냈다.

지난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2014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자산총액 기준 재계서열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 GS, 한진, 한화 순이었다. 10위까지 지난해와 변동이 없었다. 10위권에서는 KT, 두산, 신세계, CJ, LS, 대우조선해양, 금호아시아나, 동부, 대림, 부영이 나란히 뒤따랐다. 세월호 성금 액수 순위를 나열하면 재계 순위를 그대로 펼치는 것과 같게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세월호 성금 같은 경우는 전경련에서 미리 세월호 성금에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언급했기 때문에 전경련 차원에서 그룹 규모에 따라 대강 금액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전경련 및 30대 그룹 사장단과 회동을 갖고 모두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 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전경련 및 30대 그룹 사장단과 회동을 갖고 모두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불우이웃돕기 삼성 500억원
지난해 말 이웃돕기 성금으로 낸 대기업의 성금 판도도 세월호 성금 서열과 비슷했다. 삼성이 50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내놓았고, 현대차가 250억원, SK와 LG가 각각 120억원을 기탁했다. 롯데는 50억원을 냈다. 6위 포스코가 100억원, 7위 현대중공업과 8위 GS가 각각 40억원을 기탁했다. 재계 서열 9위인 한진과 10위인 한화는 각각 30억원씩 냈다. 12위인 두산도 30억원을 내, 한진·한화·두산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이웃돕기 성금에서부터 올해 세월호 성금까지 나란히 30억원씩을 냈다.

이웃돕기 성금에서 가장 두드러진 액수는 재계 1위의 삼성이 지난해 11월에 낸 500억원. 삼성은 2012년에도 500억원을 냈다. 2012년 당시에는 이전해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내놔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사회봉사단에서 금액을 정하는데, 거기에서 단독으로 금액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이야기를 종합해 금액을 결정하고 있다”면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몇 년 사이 신년사에서 사회공헌 사업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금액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웃돕기 성금 같은 연말의 정기적 성금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세월호 성금의 예는 지난 2010년 천안함 침몰 때 있었다. 이때 삼성은 성금으로 30억원을 내놓았고, 현대차와 SK, LG가 각각 20억원씩을 기탁했다. 롯데와 포스코는 10억원, GS는 9억원, 두산·한화·한진은 5억씩, 현대중공업은 4억원, 효성그룹은 3억원을 각각 내놓았다. 현재의 성금 순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금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유명했던 방위성금이었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존속한 방위성금은 유신 이후 기업에는 반강제적인 ‘준조세’의 성격을 띠었다. 1974년 4월 경향신문을 보면 ‘김종필 국무총리는 22일 이은택 제일모직 사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기탁한 2억원과 산하 각사 종업원들이 갹출한 440만2504원 등 모두 2억440만2504원의 방위성금을 전달받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다른 기업도 삼성처럼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방위성금을 전달했다. 40년 전의 이야기다. 4월과 5월에 유독 이런 기사가 줄지어 등장했다. 지금과 다른 점은 당시에는 국무총리에게 기탁한 점이다. 요즘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하고 있다. 기업의 오너가 큰 단위의 돈을 내고, 직원에게서 갹출해 원 단위까지 표시된 금액을 따로 낸다는 점도 지금과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성금을 많이 낸 기업에 나중에 국방부 장관이 감사장을 수여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경제]기업의 성금 규모가 재계순위다

방위성금 당시 국무총리에 위탁
1974년 당시 김종필 총리가 받은 방위성금 기사를 쭉 훑어보면 당시 우리나라의 재계 순위를 엿볼 수 있다. 대한석유공사 유재흥 사장이 1억2000만원을 냈고, 코오롱그룹 이원만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동명목재 강석진 사장, 연합철강 권철현 대표이사, 김한수 한일합섬 사장,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 호남정유 구평회 사장, 동국제강 장상태 사장,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이 각각 1억원씩을 냈다.

중간 계열의 그룹은 5000만원을 기탁했다. 동아그룹 최준문 회장, 동양정밀 박율선 사장,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 김상홍 삼양사 사장, 동양맥주주식회사 정수창 사장, 김창원 GM코리아 자동차주식회사 사장, 럭키그룹 구자경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일신산업 주창균 사장, 대성목재 최우직 사장,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 박병권 대표가 각각 5000만원을 냈다.

이 다음 수준의 그룹은 3000만원을 냈다. 한국화약 김종희 회장, 대한전선 설원량 사장, 대우실업 김우중 회장,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최태섭 사장, 한국제지 단사천 회장, 조양상선주식회사 박남규 사장, 진로주조주식회사 장학엽 사장, 롯데그룹 유창순 회장, 풍한산업 김영구 사장, 태광산업 이임용 사장, 신동아그룹 최성모 회장이 각각 3000만원을 기탁했다. 선경그룹과 해태그룹 같은 경우는 1974년 기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1975년 방위성금으로 각각 1억원을 내, 당시 재계 서열에서 상위에 올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기업의 방위성금 액수와 비교하면 재계 서열 부침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삼성은 당시 이후에도 여전히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현대와 LG(당시 럭키그룹), 롯데, 한진, 두산(당시 동양맥주), SK(당시 선경그룹)는 1970년대와 비교하면 크게 부상했다. 반면 한일합섬, 코오롱, 효성, 대농, 동국제강, 미원, 삼양사, 해태 등은 성금 순위로 보면 재계 서열에서 다소 밀려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잘 나가다가 IMF 관리체제 이후 몰락한 기업들의 이름도 눈에 보인다. 자료를 살펴보면 1970년대 당시 10대 기업은 삼성, 락희(현재의 LG), 대한전선, 현대, 한국화약(한화), 동국, 효성, 신동아, 선경, 한일합섬이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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