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길게 줄 선 마리오 세대의 씁쓸함

어린 시절 환상의 나라로 되돌아가고자 맥도날드 앞에 늘어선 ‘어른이’

나는 슈퍼마리오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겠다. 지금 당장 내 집에는 슈퍼마리오와 관련된 어떤 캐릭터 상품도 없고, 요즘 나온 슈퍼마리오 게임들을 플레이하기 위한 콘솔 혹은 휴대용 게임기 하나 구비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대단히 열정적인 게이머였고, 게임기에 연결된 어댑터가 뜨끈뜨끈해지다 못해 타는 냄새가 날 때까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1과 2, 그리고 3을 플레이하곤 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법이지만, 굳이 뭔가 완벽에 가까운 것을 꼽아야만 한다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가 그렇다. 그 중에서도 3편이 최고다. 그것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유네스코는 미래의 어린이들이 플레이할 수 있도록 다수의 패미컴과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편의 카트리지를 유엔본부에 구비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고 있듯이, 이것은 결코 호들갑이 아니다.

아직도 게임이 무엇인지, 어떤 요소들과 그것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재미 있는 게임과 재미 없는 게임, 작품으로서 유의미하게 기억될 만한 게임과 그렇지 않은 게임이 나누어지는지에 대해 뚜렷한 정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 걸작들이 그렇듯, 훌륭한 게임은 플레이하는 순간 바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흔적을 남긴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 그 중에서도 1편과 3편, 둘 중 꼽으라면 3편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게임기도 굿즈(관련 상품)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조차도 휴대폰 벨소리만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3편의 OST 중 하나를 구하여 집어넣어 놓았다.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마리오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패스트푸드 업체 맥도날드가 해피밀 메뉴와 함께 판매한 슈퍼마리오 세트. | 맥도날드

두 차례 걸쳐 벌어진 ‘마리오 대란’
나는 슈퍼마리오를 좋아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굳이 과거형으로 이야기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슈퍼마리오에 대한 나의 애호가 과거형이라고 말하려 한다. 5월 30일과 6월 14일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이른바 ‘마리오 대란’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큰 깨달음을 얻고 기존의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일컬어 ‘현자타임’이라고 하는데, 대충 그 비슷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맥도날드 매장에 줄줄이 늘어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을 보며 내게 ‘현자타임’이 왔다는 말이다.

사람의 성격은 비교적 어린 시절에 결정되는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했다. 앉아서 책 읽고 게임하고 뒹굴거리고 몽상하는 게 좋았다. 공놀이는 애초에 흥미도 없었고, 남들이 다 할 때 안 하고 있다보니 당연히 실력도 형편없는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제 몸으로 운동하기 싫어한다고 해서 움직임이 주는 청량한 쾌감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축구는 안 하지만 축구경기는 열심히 보는 여성들, 야구 배트를 손에 쥐어본 적도 없지만 야구경기를 보며 흥분하는 중년남성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움직임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이입하고 열광하며 흥분한다. 그에 비하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대단히 주도적이며 적극적인 일이다. 나는 게임 속 세계를 눈과 귀로 확인하며, 손가락을 적극적으로 움직여 그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관람하는 것이지만 게임은 플레이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린 시절 운동은 안 하고 게임만 하던 나 스스로를 잠시 변호하면서 논의를 진행해보자.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시리즈는, 앞서 말했듯 모든 면에서 완벽했지만, 특히 그 게임이 만들어낸 세계와 마리오라는 캐릭터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훌륭했다. 캐릭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진하는 만큼 프레임이 따라서 움직인다. 물음표가 그려진 박스를 점프하면서 주먹으로 치면 마리오의 키가 두 배로 커지게 만드는 버섯이 나오기도 하고, 그 마리오가 불덩이를 던질 수 있게 해주는 꽃이 나오기도 한다. 발판 노릇을 하는 벽돌 역시 그렇게 주먹으로 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부서져버리지만, 때로는 그 속에 감춰진 비밀 박스에서 아이템이 나오기도 한다.

맥도날드에서 해피밀 세트로 판매하는 마리오 피규어에 대한 사람들의, 정확히 말하자면 내 또래의 새삼스러운 열광을 보며 착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그래서이다. 한정판 상품을 사재기하여 되파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 왔고, 그들은 뭔가 ‘떴다’ 싶으면 종류를 불문하고 달려드니,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그저 슈퍼마리오를 보고, 혹은 플레이하며 자랐던 나의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게임 속 마리오와는 다른 우리들
자정이 되기도 전에 맥도날드 매장 앞에 줄을 서서, 다 먹지도 못할 해피밀 세트를 몇 개씩 주문해가며 마리오 장난감을 손에 넣고 기뻐하는 모습. 이 광경은 소박하고, 어찌보면 동심을 유지하고 있는 ‘어른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초라하다. SNS를 둘러보니, 어린 시절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을 사고 스티커만 모은 후 버렸던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어른이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렇다. 바로 그런 행동이고, 그것은 그리 심하게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슬픈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어른의 세계에서 일상의 모험을 떠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의 환상의 나라로 잠시나마 되돌아가고자, 패스트푸드점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우리들’의 모습이 말이다.

게임 속의 마리오와 달리 ‘우리들’은 버섯을 먹고 키가 두 배로 크지 못했다. 잎사귀를 손에 넣어 너구리 꼬리를 달고 하늘을 날고 있지도 못하다. 그저 하루하루 다가오는 일상의 무게 앞에서 그 조그만 마리오처럼 간신히 폴짝폴짝 뛰고 있을 뿐이다. 현실 속에 나타난 이 완벽한 알레고리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나는 슈퍼마리오를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 같다.

<노정태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