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피아’ 재난공제회, 연구비 흥청망청

과제 제대로 진행 않고 수천만원 낭비로 4300여만원 환수조치 당해

지난해 정부 예산이 들어간 연구사업을 부실하게 수행하고도 올해도 사업을 따낸 기관이 있다. 바로 교육시설재난공제회(이하 재난공제회)다. 재난공제회는 세월호 참사 무렵 교피아(교육 마피아)의 온상으로 지적받았던 기관 중 하나다.

재난공제회는 지난해 3월부터 미래창조과학부의 위탁을 받은 한국연구재단과 함께 연구실 안전환경구축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이 사업에 21억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1년여의 사업을 마칠 무렵인 올해 2월, 재난공제회의 유관기관인 교육부는 재난공제회에 대한 종합감사를 시작했다. 교육부 감사관실 관계자는 “그동안 재난공제회가 감사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있어 올해부터는 종합감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의원실이나 외부 지적 때문에 감사를 시작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난공제회 퇴직자 등의 제보로 감사가 시작됐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교육시설재난공제회 건물의 모습. | 구글맵스 densha

기존 연구 거의 그대로 베낀 수준
교육부 감사가 시작되자 한국연구재단은 미래부의 요청을 받아 안전환경구축지원사업의 2차연도인 2014년 협약을 일단 뒤로 미루고 해당 사업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4월 22일과 6월 10일에 현장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연구재단의 현장점검에 따르면, 재난공제회는 사업의 핵심 사안인 ‘연구실 안전환경 관련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와 ‘실험실 안전 관련 특허 활용 가능성 연구’라는 두 가지 연구과제를 제대로 진행하지도 않고 연구비를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난공제회는 2개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총 40회에 걸쳐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며 자문료로 약 1400만원을 지급했다. 보고서 원고료로는 약 1300만원이 집행됐다. 한 전문가는 "나는 자문만 해줬는데 필자로 이름이 올라가서 당혹스럽다. 게다가 공제회 직원들은 회의 시간에 내가 지적해준 내용을 시정하지도 않았다"며 엉터리 보고서가 작성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나 연구재단은 현장점검에서 “2건의 정책연구 결과물은 기존의 연구성과, 관련 입문서 등을 단순 복제했다”며 연구비 전액을 환수조치했다.

이처럼 연구재단 현장조사에서 환수조치 대상이 된 금액은 직접비와 간접비를 포함해 총 4300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난공제회 관계자는 한국연구재단 현장조사에서 언급된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 대해 “연구 내용을 확인해 보니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낸 연구보고서를 거의 그대로 베껴 제출해 본인들의 이름으로 월 수백만원의 원고료를 챙겼다”며 “이는 정부에서 지급한 연구비를 횡령한 비리”라고 말했다.

연구재단의 조사에 대해 재난공제회 측은 “작성과정에서 다소 많은 부분을 인용하거나 편집한 부분은 있으나, 사업계획서의 범위 및 내용에 맞게 재구성했다”며 “100% 단순 복사·편집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난공제회 내부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 ㄱ씨는 “연구재단에서 비리사실을 적발하긴 했지만 좀 더 철저한 감사를 할 여지가 없었는지 의문”이라며 “하지도 않은 회의를 했다고 꾸미거나 회의 장소로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회의를 한 일도 많다”고 말했다.

재난공제회의 2013년 사업비 집행내역서에 따르면 재난공제회는 지난해 9월, 사흘에 걸쳐 창립 65주년 행사를 벌였다. 행사비 160여만원은 연구환경구축지원사업비의 간접비 항목에서 전액 지출됐다.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간접비는 사업단의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와 비품 구입비 등에서만 지출을 하게 되어 있을 뿐, 사업을 위탁받은 단체의 내부 행사에 지출해도 괜찮다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연구재단은 노래주점에서 사용한 40만원만을 환수조치했다.

ㄱ씨는 “교육부건 미래부건 철저한 감사를 통해 부적절하게 사용된 세금을 더 찾아내 전액 환수해야 한다”며 본인이 알고 있는 ‘엉터리 영수증’ 사례를 알렸다. ㄱ씨는 올해 4월 초 재난공제회 건물에서 열린 한 회의의 회의록을 보여줬다.

세금 2000만원 밥값으로 사용
ㄱ씨는 “참가자를 보면 참여하지도 않은 사람 이름이 올라와 있다. 게다가 회의비로 20만원 가까운 돈을 썼는데 사실은 외부의 한 식당에서 직원들끼리 밥을 먹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난공제회의 사업비 집행내역서를 검토하면 호텔이나 한정식집에서 ‘회의’를 여러 차례 가진 것으로 나온다. 지난 1년간 최소 2000만원에 달하는 세금이 ‘회의’를 명목으로 한 밥값에 쓰였지만 연구재단 측은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미래부와 연구재단은 현장조사를 통해 재난공제회의 내부 비리와 부적절한 연구비 사용을 일부나마 밝혀냈다. 재난공제회가 미래부의 연구비를 분리해서 관리하지 않았고, 연구비 사용에 대한 일상감사도 실시하지 않은 점도 지적해 ‘엄중 기관경고 조치’도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현장조사를 마친 미래부와 한국연구재단은 2014년도 연구실안전환경구축지원사업도 재난공제회와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연구 내용을 베낀 것이라면 핵심적인 부분에서 과실을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미래부 연구환경안전팀 관계자는 “만약에 정말로 큰 문제가 있었다면 당연히 우리가 조치를 했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며 “전체적인 틀에서 봤을 때 충분히 안고 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사업을 수행하는 측면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올해에도 협약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직원은 세금 낭비보다는 재난공제회 측의 입장을 더욱 고려하는 듯한 말도 남겼다. 그는 “이미 공제회 측과 3년으로 계약이 되어 있고 공제회에서도 3년 계약을 감안하고 직원을 뽑았다”며 “사업의 주요 내용이 시설 안전에 대한 현장점검인데 공제회 말고는 이 부분을 대체할 마땅한 기관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과 재난공제회의 2차연도 안전환경구축지원사업에는 18억1500만원의 세금이 추가로 들어갈 예정이다.

재난공제회는 교육부 유관기관인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엄밀히 따지면 정부 기관이 아니다. 하지만 1년에 150억원에 달하는 회비 수입은 일선 학교로부터 나온다. 사실상 국가예산을 통해 운영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기관이 아니라는 미명 하에 오랫동안 외부 감사를 받지 않았다. 국회 국정감사나 감사원의 감사 대상도 아니었다.

이렇게 외부 감사가 없다 보니 재난공제회가 사실상 교피아의 온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4월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재난공제회가 교육부 공무원과 대학 과장급 이상 직원들이 참가한 해외 연수에 1억5000만원이 넘는 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부 출신 인사가 낙하산으로 채용되는 등 특혜채용 시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측은 “장기적으로는 재난공제회를 법적 공공기관으로 재설립하는 등의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