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최저임금 ‘370원 인상’ 생계비에 기별이나 갈까

주 40시간 일해도 6만5120원 인상 그쳐… 29세 이하 평균 생계비의 58%밖에 못 벌어

늦었다. 취업스터디 자리가 생각보다 늘어져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 빠듯하다. 대학교에서 출발해 일하는 편의점까지 택시를 타면 택시비는 5000원 남짓. 한 시간 시급이 그대로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택시는 탈 수 없다. 교대해줘야 할 앞 시간대 근무자한테 미안할 뿐이고, 타야 할 버스는 오지 않아 속만 탈 뿐이다. 그러고 보니 교통카드 잔액이 남아 있는지도 불안하다. 월급날이 가까워올수록 가벼워지는 지갑을 보면 다시금 아르바이트 시급에 한숨이 나온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대학생 변형민씨(가명·26)의 이야기다. 오후 10시부터 야간조로 일하는 변씨는 손님이 뜸한 새벽 시간이 되면 스마트폰 가계부 앱에 그날의 지출내역을 정리하는 것이 매일의 일과다. 그날은 지출이 적지 않았다. 더워진 날씨에 스터디원들과 함께 향했던 냉면집의 냉면 한 그릇은 1만원이었고, 입사지원서에 붙일 증명사진을 새로 찍는 데 1만5000원이 나갔다. “쌀이나 라면, 휴지처럼 일상적으로 사는 품목들은 그렇지 않지만, 간혹 부득이하게 밥을 사먹거나 차를 마실 때는 ‘아, 이게 몇 시간치 시급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죠.” 그가 받는 시급 5600원으로 따지면 한 끼 밥값에 약 1시간47분치 노동이 투입된 셈이다.

올해 1월부터 편의점 야간근무를 시작한 변씨는 야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보다는 400원 정도 시급을 더 받는다. 그러나 법대로라면 주간 임금의 1.5배인 7815원을 받아야 맞다. 다만 야간 가산수당을 적용받으려면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상시고용하는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올라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모집공고의 대부분이 최저임금인 시간당 5210원으로 통일돼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변씨의 가게처럼 그나마 야간이라고 몇백원 더 챙겨주는 곳도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점원이 손님이 가져온 물건을 계산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내년부터 시간당 5580원으로 결정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시간당 370원이 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6월 27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의 시간당 5210원에서 7.1% 오른 5580원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최임위는 법정시한을 넘기지 않으려 26일부터 밤샘 회의를 거친 끝에 새벽 5시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정작 이 회의에서 한 해의 임금수준이 사실상 결정되는 노동자들의 바람은 최저임금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변씨처럼 5인 미만 사업장 비율이 높은 서비스업종에서는 애당초 야간근무나 초과근무 할증은 물론 법으로 보장되는 주휴수당마저도 받기 힘들다.

“당연히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오르면 좋겠어요. 대략 느낌으로는 그래도 500원 정도는 올라야 조금이나마 실감이 날 것 같은데, 솔직히 내년에는 취직해서 최저임금 받는 이런 알바 대신 다른 일 하고 있어야겠죠.”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전선영씨(24)는 “최저임금이 실제로는 ‘최고임금’이 되는 이 바닥을 벗어나는 수밖에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하루 8시간, 일주일에 5일 일하는 전씨에게 이번에 결정된 인상분인 시간당 370원을 적용해 임금인상폭을 계산하면 내년도 한 달 월급은 6만5120원(월 22일 근무 기준) 오른다. 그래 봐야 월급은 98만2080원으로 100만원에도 못 미친다. 최임위가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참고한 ‘미혼 단신근로자’의 월평균 생계비는 올해 기준으로 151만원이다. 특히 변씨와 전씨처럼 미혼 단신근로자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29세 이하 연령대의 월평균 생계비는 그보다도 높은 187만원으로, 올해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해봐야 생계비의 58%밖에 벌지 못하는 셈이다. 최임위는 매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해 생계비 통계를 작성했으면서도 정작 결정과정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전씨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낸 학자금 대출액을 갚아나가며 줄이기는커녕 졸업까지 빚이 늘어날 것이 걱정이다. “처음에는 원금과 이자를 같이 갚아나가던 게 이제는 이자만 제때 내기도 힘들 정도까지 왔다”는 전씨는 아무리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사정이 누구의 탓인지 의아하다. 대학을 그만둘 생각까지 한 뒤 최저임금보다 월급을 더 주는 일자리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고졸일 뿐인 전씨가 갈 곳은 보험 영업이나 콜센터, 백화점이나 마트 판매직 정도였다. 그나마 좀 더 높은 월급도 근무시간을 따지고 보면 최저임금보다 크게 높은 것도 아니었다. “이름 있는 대학도 못들어갔으니 졸업해도 이 생활이 그대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 애들은 편입이라도 하려고 하죠. 저도 그렇고요.” 대학은 휴학했지만 그 등록금만큼이 편입학원에 들어간다. 학원비와 교재비를 대려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미달자 증가
유럽연합 저임금고용연구네트워크의 정의에 따라 임금노동자 중위임금의 3분의 2에 못 미치는 임금수준을 저임금으로 보면, 월 임금총액 기준 127만원 미만을 받으면 저임금 계층으로 분류된다.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는 계층까지 포함해 전체 저임금 계층의 규모를 계산해보면 461만명,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25.0%)이 저임금 계층이다. 이 가운데서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은 올해 3월 기준으로 232만명이다. 저임금 계층의 절반, 전체 노동자 8명 중 1명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일하는 것이다.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 수치는 현 정부 들어와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기준 232만명을 넘어선 최저임금 미달자 수는 역대 최대 규모다. 2009년 222만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접어들어 2012년 8월 기준 170만명(9.6%)까지 줄었던 미달자 수는 현 정부가 들어선 2013년부터 다시 지속적인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 가운데는 정부부문인 공공행정분야 미달자도 14만명이나 돼 ‘선량한 사용자’로서의 정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 임원들 연봉도 최저임금 오르는 폭만큼 오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회의원 월급(세비)도 그렇고요. 최저임금은 10% 올라봐야 월급 10만원 오르는 건데 억대 연봉 받는 사람들은 10%면 월 100만원 가까이 오르는 거잖아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삼성전자의 등기임원 보수를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의 604배, 시간당 300만원을 훌쩍 넘긴다. 변씨의 말대로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의 인상도 중요하지만 사회 내부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수정 알바노조 사무국장은 “스위스는 지난해 11월 국민투표에서 최저임금 대비 최고임금액의 비율을 1대 12로 제한하는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비록 부결됐지만 사회적 차원에서 임금수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냈다”며 “최저임금의 문제를 적정임금의 문제로 바꾸기 위해서 최저임금위원회보다는 임금격차해소위원회로 기구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