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군대내 사고 숨기고 보는 군, 원인은 무조건 ‘관심병’ 탓

철저한 비밀주의에 부실한 수사 되풀이…

자료 요구하면 “발표 믿으라”는 말만, 억울한 유가족들이 수년씩 진상규명 나서

“그때도 이번 사건하고 마찬가지였어요. 국방부는 총을 쏜 김 일병이 이상한 사람이었다, 갈굼과 폭행을 당한 끝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식으로만 말을 했죠. 유가족이 궁금해 하는 부분, 정확히 당시 내무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설명을 해주질 않았어요. 지금 임 병장 사건도 지휘관들에게 돌아갈 책임을 최소화하면서 임 병장과 피해자들에게만 사고의 원인이 있는 것처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봐요.”

조두하 한국폴리텍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임 병장 사건을 보면서 9년 전 악몽 같은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조 교수는 2005년 연천 530GP 총격사건의 유가족이다. 이 사고로 조 교수는 외아들을 잃었다.

6월 25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에서 군 장병들이 22사단 GOP 총기난사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건재조사·명예회복 요구 200가족 넘어
매년 군대에서는 100명이 넘는 장병들이 안전사고, 자살 등의 이유로 세상을 뜬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군의 비밀주의와 부실한 수사 결과 발표에 분노하며 군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 특히 자살로 처리된 군인은 순직 처리도 받기가 어렵다. 군의문사 유가족들에 따르면 여전히 200가족 이상이 국방부에 사건 재조사와 숨진 장병의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조두하 교수의 아들은 2005년 경기도 연천군 제28보병사단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연천 530GP 사건은 전방에서 근무하던 병사가 동료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이번 임 병장 사건과 유사하다. 당시 국방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사건의 가해자 김모 일병은 내무실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기관단총을 난사해 총 8명을 죽이고 2명을 다치게 했다.

하지만 530GP 유가족들 중 이런 발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건 당시 군에서 유가족들이 원하는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발표를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수류탄이 국군 것이 아니라는 제보가 있어서 아이들의 엑스레이 결과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그게 없대요. 자료를 달라고 자꾸 요청을 하니까 군에서는 자기들이 발표한 내용을 믿어달라고만 하는 거예요. 결국 2명의 엑스레이를 받아서 확인을 했더니 정말로 아이들 몸 속에 박힌 수류탄 파편이 국군 것과 달랐어요.”

조 교수는 “530GP 사건과 관련된 부대 근무기록 등의 사본을 요청했더니 원본을 복사한 게 아니라 그걸 타이핑을 쳐서 보내줬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기록은 절대로 그냥 노출되지 않게 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530GP 유가족들은 이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냐는 생각까지 갖고 있다. 수류탄 파편의 모양이 국군 것(쇠구슬 모양)과 다른 모양(정육면체)이라는 점, 인근 GP의 근무일지에 실제 상황이 발생했고, 530GP가 공격을 당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점 등이 그 근거다. 유가족 사이에선 당시 국방부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에 누를 끼칠까봐 진실을 덮은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들어와서도 국방부는 2005년의 결과 발표를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조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또한 조 교수는 군대 내 사고가 났을 때 사고의 당사자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모습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전방 근무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는 2005년에도 지적이 있었지만 9년이 지난 지금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9년 전에도 GP 현장을 가봤지만 굉장히 지저분하고 어떻게 이런 데서 생활을 하나 싶었어요. 사병들이 잠 부족과 잦은 노역에 시달리는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고가 발발할 수 있는 건데, 이런 건 따지지 않고 온전히 소대원의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정말 그렇게 전방을 지킬 자원이 없다면 GP는 관측장비로 대체하고 그 인원을 GOP로 투입해서 인원 부족을 해소할 수도 있을텐데, 왜 해결책을 오랫동안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국군사상자 유가족연대 이정호 대표는 2000년부터 각종 군의문사 사건에 대해 시간이 허락하는 한 현장을 가며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다고 한다. 그는 “지난 10년간 군에서 자살하는 아이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변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라면서도 “사고가 터지면 문제를 은폐부터 하려는 모습이 과연 바뀌었는지, 유가족 활동을 하며 직접 보고 느낀 바로는 국방부가 장족의 발전을 거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 놔둔 채 개인에게 책임전가
지금도 그는 14년 전의 사건을 생각하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이 대표의 아들인 이모 이병은 훈련병 시절 세상을 떴다. 간염으로 한 차례 재입영을 한 이 이병은 훈련소에서 신체적인 고통을 호소했지만 꾀병으로 몰려 군병원에서 정신과 진단을 받다가 호흡곤란 증세로 사망했다. 군은 의료사고였다고 발표했다.

이 대표는 “나중에 수사자료 등을 받아 보니 의사들이 침대에 우리 애를 묶어놨더라. 치료 중에 의식을 잃으니까 군의관이 애 얼굴에 물도 부었다고 한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몇 초 뒤 그는 “망할 놈의 새끼들”이라며 “지금도 아들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격해지고 저절로 욕설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임 병장 사건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우리 애가 죽은 뒤에 부대에서 아이가 사용했다는 노트나 수첩을 받아봤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병원을 갈 때 즈음의 기록만 군에서 뜯어갔는지 없는 거죠. 이번에도 임 병장 메모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때 생각이 났어요.”

‘관심사병’을 거론하며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모습도 익숙한 장면이었다고 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기도 했다.

“관심사병 이야기도 마찬가지예요. 분명히 민간병원에서 우리 아이가 신체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애가 훈련기간에 꾀병을 부린다고 병원에 데려갔다가 일이 터진 거예요. 국가인권위에 군대문제만 전담하는 상설부서가 생겨서 군 밖에서도 군대문제를 언제나 감시할 수 있다면 사병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2002년에 사망한 곽모 상병의 모친인 김운자씨는 군으로부터 아들의 자살을 통보받은 뒤 12년째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는 “우리 막내도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사고를 일으킨 것처럼 몰렸다”고 말했다.

12년 전, 곽 상병은 부대 건물 1층 포대장실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군은 곽 상병의 집안에 2000만원의 빚이 있었고, 곽 상병의 성격이 내성적이었으며, 여자를 짝사랑했다는 것 등을 이유로 곽 상병이 자살했다고 밝혔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빚이 있긴 했지만 2억원도 아니고 2000만원이 못 갚을 빚도 아니잖아요. 막내 위에 자식이 3명이나 있는데 막내가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을 생각했을까요? 게다가 우리 아들이 내무실 최고참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스스로 군에서 말뚝을 박고 싶다며 부사관을 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던 아이가 과연 군대 내 부적응자였을까요?”

김씨도 다른 유가족들처럼 진상규명을 위해 본인이 수사관처럼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10년 넘게 국방부에 탄원서도 넣고, 정보공개 청구도 하고, 국회의원들을 찾아가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때는 늦둥이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생각에 ‘내가 너무 과잉대응한 것 아니냐’며 국방부의 발표를 믿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고 4년 만에 일부 확보한 수사기록을 보고 나서 의문은 더욱 커졌다.

부적격자 대체복무제 등 대책 세워야
“처음 아들이 죽었을 때 아이 아빠와 형 둘이 현장을 갔어요. 그런데 사진도 못 찍게 하고 메모도 못하게 하고 눈으로만 보고 오라는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2층에 있던 사람들이 ‘1층 포대장실에 또 다른 사람 소리가 났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자살이 아니라 총기사고일 가능성이 기록에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헌병대가 이쪽의 가능성을 두고 조사할 의지 자체를 읽을 수가 없었어요.”

아침에는 건물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오후에는 국방부와 국회를 오간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김씨는 “22사단 유가족들은 나처럼 10년 넘게 진상규명 활동을 하느라 돌아다닐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 병장 사건의 유가족들도 국방부의 비밀주의와 부실한 대응을 성토하고 있다.

고 이범한 상병의 외삼촌 노봉국씨는 6월 25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사망한 이 상병이 사실은 사건이 터진 뒤 한동안은 살아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노씨는 미군에서 군의관을 지내고 지금은 미국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다. 6월 25일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있었던 이 상병에 대한 부검절차에 참여했던 노씨는 인터뷰에서 “총격을 받은 이후 사망 판정을 받은 시점까지 1시간40분이 흘렀다. 이것은 2차 사고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군의 초기대응을 질타했다.

국방부는 임 병장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장면에서 대역을 사용해 논란을 자초했다. 임 병장이 자살 시도 직전 남겼다는 메모지도 유가족이 원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말은 다르다. 한 유가족은 “메모를 공개해서 사건의 전말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요구를 했지만 지금 군에서 수사 중이기 때문에 그걸 공개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조두하 교수는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들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천 사건이나 이번 임 병장 사건이나 여러 가지 군대 내 의문사 사건이 사람 목숨과 관계된 문제인데 이것이 기밀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전시작전계획처럼 엄청난 비밀이 있다면 모를까 군대 내 사고에 관한 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억울한 사병과 유가족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린·비전캠프 입소자 치유율 15% 불과

군은 2003년부터 부대 내 자살 우려자와 군 복무 부적응자를 관리할 목적으로 비전캠프를 설치했다. 육군 군종실에서 직접 운영하던 비전캠프는 관심병사 20~30명을 대상으로 2박3일간 심리치료를 실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첫해 811명을 시작으로 매년 평균 6000여명의 병사들이 비전캠프를 통해 치료를 받았다.

2009년에는 일선 사단 차원에서 그린캠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군단에서 그린캠프, 사단에서 비전캠프, 여단에서 선진병영캠프 등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관심병사 관리가 이어져오고 있다.

보통 관심병사 교육프로그램은 2주 과정으로 실시된다. 강원도 홍천의 모 사단에서 2011년 실시된 비전캠프의 경우 심리치료와 군대 정신교육이 병행되어 실시되고 있었다.

입소식을 진행한 뒤부터는 본격적인 심리치료가 시작된다. 첫날은 다면적인성검사(MMPI) 등을 통해 입소자들의 심리 현황을 파악한다. 심리치료의 경우 전문 상담관과의 상담과 더불어 다른 입소자들과 함께 각자의 처지를 공유하고 위로를 받는 식으로 짜여져 있다.

프로그램 중간에 장애인 복지시설이나 노인요양원 등에서의 봉사활동도 들어 있다. 자신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일깨워주자는 게 목적이다.

군내 조직이다 보니 정신교육도 함께 진행된다. 입소식을 마친 직후에는 교관이 나와 4시간가량 군인 복무규율 등 군대 내에서 지켜야 할 기본자세를 강의한다. 2주차에는 최전방 부대와 북한에서 과거에 파놓은 땅굴 등을 방문한다. 다른 병사들의 복무 현장을 보면서 군인으로서의 마음자세를 새롭게 하겠다는 뜻이다.

비전캠프 막바지에는 일명 ‘기분 좋은 의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명의 입소자가 가운데에 앉고, 그를 둘러싼 다른 입소자들이 의자에 앉은 병사의 장점을 한 가지씩 칭찬해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다.

다른 비전·그린캠프의 경우 명상의 시간, 음악치료,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비전·그린캠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비전캠프에 입소하는 연인원은 2008년 6990명에서 매년 줄어 2013년 6월 기준으로 2073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캠프를 다녀온 뒤 입소사유가 해소된 사람은 2008년 49.9%에서 2013년 6월에는 15.1%로 그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비전·그린캠프를 다녀온 병사가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2010년 모 이병은 그린캠프에서 치유가 아닌 괴롭힘을 당한 뒤 정신과 치료를 목적으로 국군수도병원에 들렀다가 6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2011년에도 그린캠프를 다녀온 병사가 자살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