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명분과 실리 사이 ‘법외노조’ 전교조 고민

정부 강경드라이브에 조퇴투쟁 및 대정부 투쟁으로 맞불…

침체된 조합분위기 쇄신ㆍ기존 단협안 고수ㆍ교육현장 개선 등 강ㆍ온 목소리 혼재

“공안대책이라니, 교사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고 이제는 빨갱이로 대하겠다는 말이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의 한 조합원은 분을 감추지 못했다. “법원의 (법외노조) 판결이야 백 번 양보해서 법에 따라 그런 결론도 나올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조퇴하는 걸 검찰이 나서서 공안대책협의회에서 막겠다고 하면 정권 차원에서 전교조 빨갱이들을 다 때려잡자고 나섰다는 얘기 아니냐.”

‘법외노조’ 철회를 촉구하고 나선 전교조의 첫 대규모 행보는 조퇴투쟁이었다. 6월 27일 광화문과 서울역 일대에서는 전교조 전국 각 지부에서 조퇴원을 내고 상경한 조합원 15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와 선전전이 열렸다. 2006년 교원평가제 반대 이후 8년 만에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온 대규모 시위였다. 발단은 법외노조 판결이었지만 전교조가 전면에 내건 구호는 법외노조 조치 철회에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퇴진’ 구호가 터져나왔다.

법외노조 판결에 항의하며 조퇴투쟁에 나선 전교조 조합원들이 6월 27일 서울역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정지윤기자

“세월호 참사 후 눈물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기껏 나오는 후속조치가 전교조 죽이기잖아요.” 조퇴투쟁을 하루 앞둔 26일 각 지부의 분위기는 격앙돼 있었다. 대구지부 소속 한 조합원의 날선 비판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했다. “내일 조퇴투쟁은 말하자면 맛뵈기 정도지, 정부가 먼저 공격해온 게 뻔한데 대통령이랑 바로 한판 붙어야 하지 않겠나.” 최근의 집회현장에서는 비교적 점잖은 축이던 전교조 조합원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조퇴투쟁 이후로도 조합원들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대정부 투쟁 일정은 이어진다. 7월 2일 시국선언 발표에 이어 12일 열릴 전국교사대회는 전교조가 정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의 강경투쟁 분위기는 6월 21일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고강도의 대정부 투쟁 결의문을 채택한 데서도 엿보인다. 그간 대의원대회 평균 참석률(53%)을 크게 웃도는 참석률(64%) 속에 이날 토론은 자정까지 이어졌다.

교육부 선공ㆍ교총 가세 극한대결 우려
정부가 1999년 교원노조법 제정 후 15년간 사문화됐던 ‘해직자 조합원 규정’을 꺼낸 것에 대해 조합원들은 정치적인 탄압으로 간주해 상당히 격앙돼 있다.

이에 맞서는 교육부의 대응방침도 강경모드다. 법외노조 판결에 따라 노조 전임자들에게 학교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린 교육부는 복귀를 거부하는 전임자에게는 직권면직을, 불법으로 규정한 조퇴집회에 대해선 대량 징계 카드를 꺼내들 태세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 교육국장 회의에서 단협 효력 상실 통보와 사무실 지원 중단 등 후속조치를 내놓은 데 이어, 당초 규정상 30일 내 하도록 돼 있는 노조 전임자 복귀 시한을 15일로 잡으며 후속조치를 빠르게 밀어붙이려는 뜻을 내비쳤다.

양쪽은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좀처럼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계 내 진보진영에서는 극한대결을 막아야 한다는 신중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전교조와 동지적 관계에 있지만 그렇다고 전교조를 전면적으로 지원할 수만은 없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전교조와의 단협에서 진보교육감들은 사용자 위치에 있는 만큼 권한을 최대한 행사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교육부와의 크고 작은 갈등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전교조를 교원단체로도 보지 않으려는 데 비해 진보교육감들은 법원의 법외노조에 대한 최종 확정 판결까지는 정책 협의 파트너로 전교조를 인정한다는 선에서 온건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을 바라보는 전교조 안팎에서는 ‘실리’를 우선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법외노조 투쟁과는 별개로 진보교육감 다수 당선이라는 ‘기회’만큼은 활용하기 위해 기존의 단협안은 고수하는 쪽으로 양면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중 전교조와 단협을 체결한 곳은 모두 12곳으로 전교조는 각 교육청과 지역별로 단협을 맺어 왔다. 전교조가 단협을 통해 확보한 정책 가운데는 순회교사·기간제교사의 처우개선과 교육재정 투명성 확보, 도서관 및 학급운영비 확대 등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교육여건을 개선시키는 효과적인 정책들이 자리잡고 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교육감이 단협 조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노동위원회에 고발할 수가 없다. 단협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시일이 걸리는 법외노조 문제 대신 현실적인 단협안 확보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박진보 전교조 정책교섭국장은 “단협 위축으로 강제 이행의무가 있는 교육청과 학교는 좋아할지 모르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의 손해가 클 것”이라며 “단협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도서관 시설 확충은 교사의 노동조건도 되지만 혜택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단체 등 “교육문제에 더 관심을”
전교조 내부에서는 법외노조 철회 투쟁을 침체된 조합 분위기를 쇄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때 10만명에 육박했던 조합원 수가 점차 감소해 6만명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상황을 타개하려면 외부의 위협에 맞서 단결하는 분위기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징계를 요구해도 교육청이 자체 법률 검토를 통해 징계 여부를 결정하게 돼 있어 이번 조퇴투쟁의 최종 징계권 역시 교육감이 가지고 있다. 모처럼 장외투쟁에 나서는 전교조 입장에서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학부모단체들을 비롯한 교육계와 노동계 여론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전교조가 자신들의 문제 이외에 교육·노동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나서줄 것을 주문한다. 고진광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 공동대표는 “전교조가 조직과 구성원들의 이해가 걸린 연가투쟁이나 교원평가제에는 적극 나섰지만 그밖의 학교 현장 문제들에 대해선 성명만 내고 넘어가는 등 대응이 불균형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도 교원노조법 개정에 나서는 전교조가 정규직 교사로만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현행 규정을 개정하는 데도 힘을 보태라고 주문했다. 박 위원은 “전교조가 교원노조법에 매인 탓에 노조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에 한계도 있었는데, 청소·경비·급식요원 등 학교 비정규직 처우개선에도 공동으로 나서는 것이 조합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