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시집 낸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인터뷰 “진보교육감 13명 나왔다고 지금 샴페인 터뜨릴 때 아니다”

이 주제로 인터뷰하게 될지 몰랐다.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은 본지 ‘비상식의 사회’ 코너 필자다. 6월 17일, 이 고문이 본지를 방문했다. 신작 시집 <겨울나기>를 낸 인사차 방문이었다. 진보교육감 선거 결과, 갈등해결센터에서 하는 일 등을 주제로 환담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대법원 판결은 예상하지 못했다. 기자도 “에이, 설마….”라고 딱 한마디를 건넸을 뿐이다. 그리고 이틀 후. 예상 밖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 고문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창립 당시 사무처장으로, 해직교사 복직추진위 위원장이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는 전교조 제9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현재도 전교조에서 ‘지도자문위원’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지난 2012년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서울교육감에 출마했던 인사이기도 하다.

[표지이야기]시집 낸 이수호 한국갈등해결센터 상임고문 인터뷰 “진보교육감 13명 나왔다고 지금 샴페인 터뜨릴 때 아니다”

뜻밖의 결과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결국 전교조 창립 이래 유례없는 법외노조화라는 조치가 나왔는데요.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결과에서 보이는 민의(民意)와는 상반된 흐름인 것 같습니다. 먼저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렇죠. 사실 이번 앞의 선거에서도 진보교육감이 전국적으로 여섯 분이 당선되어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했습니다. 초·중등교육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인데…. 불행스럽게도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낙마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저는 이것만은 이어가야겠다, 초·중등교육을 평생 동안 현장에서 뛰며 고민했던 사람이 직접 교육현장에 들어가 근본부터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출마했습니다. 서울교육감 보궐선거가 그런데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면서 당시 새누리당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소위 종북 프레임에 걸렸어요. 선거 내내 당시 상대후보였던 문용린 전 교육감은 토론회 등의 자리에서 만나기만 하면 저의 경력을 거론하며 ‘종북 아니냐’고 공격하고….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에게도 그런 식이었죠. 결국 그 프레임과 벽을 넘지 못했던 거죠. 정권교체도 실패하고, 떨어지면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당선된 문 교육감이 곽노현 교육감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개혁적인 정책, 혁신학교, 무상급식, 학생인권, 이런 모든 것을 부정하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서울시 교육이 수렁에 빠졌죠. 학생을 위해서나 우리 교육을 위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전국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되고, 그 중에서도 전교조 조합원 출신이 8명 당선된 건,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도 교육의 변화와 진보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진보교육감의 당선은 보수의 분열 덕분 아닌가요. 보수후보가 가져간 전체 표를 더하면 60%대가 되지 않습니까. 보수후보 중에는 노골적으로 전교조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나온 후보도 있었잖아요. 일반 국민이나 학부모들 사이에도 전교조에 대한 불신과 같은 여론이 없다면, 지금 법외노조화를 밀어붙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공약을 내걸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요.
“진보교육감의 당선에서 보수의 분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민주진보진영은 후보단일화를 해왔습니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된 6인 중 낙마한 곽노현 교육감을 제외하곤 좋은 평가를 받아 모두 이번에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육에 어떤 문제는 없었나, 일대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그것 때문에 보수 후보들이 이데올로기 공세를 과거처럼 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그것도 한 원인으로 봅니다.”

이번에 내신 시집 이야기를 해보죠. 앞부분에 실린 시를 보니 지난 교육감 선거 낙선 후 일상에서 느낀 것들을 담담히 시로 적으셨던데.
“주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참세상 등 인터넷 매체에 평소에 고민하고 생각하던 것을 저 나름대로 시로 표현한 것을 올려서 공유도 하고 그랬던 것을 모은 것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학생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에 적었던 시도 있더군요.
“‘시적 화자’가 누구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대한민국의 남자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문제를 고민하는 운동가이기도 해요. 그보다 실은 저의 뿌리는 교사잖아요. 교사니까 항상 학생들이 머릿속에 있을 수밖에 없죠.”

이 고문은 27살 때 경북 울진제동중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신일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다가 전교조 운동과 관련해 해직된 전력이 있다. 이 고문이 전에 낸 산문집 <다시 학교를 생각한다>를 보면 이 고문이 교사와 전교조 위원장 시절 가졌던 고민과 일화가 정리되어 있다.

이전에 쓰신 책을 보면 수배당하고 연행될 위기였는데, 가르치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침묵시위를 하며 보호한 일화가 나옵니다. 지금 전교조는 어떨까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운동을 했던 친구가 막상 현장교사가 된 후에는 노조활동을 하지 않고 있어요. 사립학교의 경우 아예 전교조 조직이 안 된 경우도 많고…. 노조 조직률 등을 보면 교사운동이 무언가 관성화된 것은 아닐까요.
“특히 사립에서 더 조직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학교의 권력관계나 운영방침에 따라 전교조 조합원이 없는 곳도 있고, 노조활동을 보장해 잘 되는 곳도 있습니다. 제가 교사를 할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교사의 질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서울대 사대 출신 졸업생 대다수가 일반 기업에 취직해 교수가 한탄하기도 했죠. 그래서 그때 경찰이 내놓은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전단을 보면 이런 항목까지 있었어요. 돈봉투 안 받고, 성실하게 수업하고, 모든 일에 성실한 교사. 지금은 전교조 운동의 덕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이기도 한데, 교사의 질이 균등해졌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거나 성실한 데는 전교조 교사와 비전교조 교사가 거의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요.”

학부모들 일부에서 전교조에 대한 불신이 확산된 계기는 2000년대 초·중반 교원평가제 도입 논란 당시 전교조가 보였던 반대입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부모들이 보였던 태도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지식전달 수준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어진 것 등에 기인한 것으로 봅니다. 학교의 기능이 상당히 질적인 변화를 요구받았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사교육 시장의 확대와 같은 여러 문제가 있었죠. 당시 전교조는 그런 사회 변화상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입장을 가져야 하는데 교육의 원칙적인 것을 고수하고 지키려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교원평가였습니다. 제 신념도 어떤 지식, 초·중·고 교사를 기계적으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 경쟁을 시키겠다는 논리에는 반대합니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죠.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한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요구되는 현실과 잘 조화를 얻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죠. 내부에서도 여러 입장차가 있을 수 있는데, 보수언론이 그걸 침소봉대해서 공격하고 전교조 전체를 약화시키려 했죠. 이념공세 등에 대해서도 전교조가 많이 억울하더라도 그런 문제에 더욱 유연하게 대응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김의겸 한겨레 논설위원이 6월 24일자 신문에 쓴 ‘전교조 변해야 산다’는 칼럼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임기 3년 반 남은 박근혜와 싸울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내다봐야 한다’는 논지인데요, 정당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충고인 것 같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부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전교조의 역사성을 인정하면서도 명분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번에 문제가 되는 법외노조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분명하게 하고 싶습니다. 법외라고 할 때 그 법은 뭉뚱그려 말하는 통상적인 법이 아닙니다. 9명의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뒀다는 것이 교원노조법 규정을 어겼다는 것인데요, 법에는 교원노조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조법이나 일반법, 그 상위에 있는 헌법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해고조합원을 조합원으로 당연히 인정하게 되어 있고, OECD 국가들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9명 해고자의 신분을 두고 양보할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노조의 생명은 자기 조합원을 보호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죠. 게다가 지도부가 그렇게 판단한 것이 아니고 전체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한 일입니다. 우리가 법외로 쫓겨나더라도 조합원을 지켜야 한다는 총의에 따라 결정된 일이죠.”

시작은 9명이지만 결국 복귀 안 하는 노조전임자 72명의 문제로 확대될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부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저는 교육부 규정상 한 달 내에 복귀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름만인 7월 3일까지 시한을 박아 강경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조에 양보만 하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이번에 기자회견을 하는 내용도 보니 교육부가 급하게 복귀하라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교조는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응해나갈 태세가 되어 있는데, 자꾸 몰아붙이고 무조건 ‘전교조 잘못’이라는 식으로 범죄시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형 국이죠. 우리나라 교육을 위해서라도 옳지 않은 일이죠.”

정부의 대응이 문제라는 생각이네요. 이번에 내신 시집 제목이 <겨울나기>인데,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아직도 우리 사회가 ‘겨울’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입니까.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묶어 겨울로 느끼는 것이죠. 이 겨울을 어떻게 잘 날 것인가, 어떤 각오와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에 대해 담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도 충실히 해야겠고, 한편으로 사회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해나가야 한다든지. 그런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각성하고 각오를 다지면서 이 겨울을 잘 나고 새 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교육감 선거 결과와 전교조 사태를 묶어 <주간경향>에서는 ‘진보교육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주제로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이 고문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근혜 정부는 우리에게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에 진보교육감 열세 분이 당선되고 교육현장에서 ‘밑으로부터의 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 정부가 탄압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밑으로부터의 변혁’을 더 신중하고 힘차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3명의 진보교육감이 탄생했다고 좋아하면서 샴페인 터뜨릴 일이 아니라 교육현장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탄압과 공세는 계속되겠지만 열심히 노력해 그 결과로 국민들을 설득해 지지를 얻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글·정용인 기자 inqbus@kyun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