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TV]안 보여주는 베드신, ‘상상 수위’ 높여

한복을 입은 장혁과 장나라가 절구통을 가운데 두고 번갈아 떡방아를 찧는다.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어졌지만 좋아하는 기색은 역력히 드러난다. ‘쿵덕쿵덕’ 서로 한 번씩 번갈아 나눴던 떡방아 행위는 장혁이 박력 있게 ‘쾅쾅쾅’ 연달아 찧으면서 절정으로 나아간다. ‘콩떡이냐 팥떡이냐’라는 가사의 떡타령 민요가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지난 3일 방송된 MBC 수목극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후세를 이어야 하는 재벌 3세가 계약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여성과 뜻하지 않게 하룻밤을 보내고 임신이라는 후폭풍을 치르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코미디물이다. 이를테면 ‘선 임신 후 사랑’을 다룬 드라마인데, 이 때문에 임신의 계기가 되는 베드신은 중요한 핵심 장면이었다. 제작진은 ‘남자주인공의 상반신 근육 노출→여주인공의 어깨→들썩이는 하얀 이불’로 마무리되는 드라마 베드신 공식에서 벗어나 떡방아라는 해학을 끌어와 베드신을 묘사했다. 노출은커녕 되레 한복으로 맨살을 꽁꽁 가렸지만, 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19금’ 로맨틱코미디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 | MBC 제공

드라마 베드신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수위가 센 동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임에도 가족 안방극장으로서의 TV 드라마 성역은 지켜져야 한다는 관념이 굳건하다. ‘드라마에서만큼은 노출 금지’의 관념 속에서 탄생한 새로운 고육지책이다.

케이블드라마에서는 키스의 수위를 높여 그만큼 진한 베드신을 상상하게 한다. 지난달 종영된 tvN <마녀의 연애>가 대표적인 예다. 연상녀와 연하남의 로맨스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엄정화와 박서준의 키스신은 무시로 등장했다. 1회부터 회사 동료들 앞에서 공개키스를 한 두 사람은 맥주거품 키스 같은 새로운 키스신까지 만들어냈다. 키스신을 최대한 진하고 로맨틱하게 그리면서, 뒤에 이어진 베드신도 그 정도의 수위가 될 것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박서준은 제작발표회에서 “5시간 벗고 베드신을 찍으니 점점 편해져 촬영장이 내 집 같았다”는 소감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베드신은 ‘5시간 벗고’에서 상상하게 되는 정도의 수위에는 못미쳤다.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 | MBC 제공

‘상상하는 베드신의 신세계’는 종영된 JTBC 드라마 <밀회>가 열어제쳤다. 김희애와 유아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은밀한 대화만 들렸다. “저 잘 못할 수도 있어요”, “너 진짜 처음이야?”, “내가 너보다 못할지도 몰라”, “그건 내가 판단해요” 같은 은밀한 대사가 흘러나오는 동안 카메라는 방바닥, 양념통, 피아노, 부엌, 가스레인지, 책장을 비췄다. 노출 하나 없이도 오감을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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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에 있어서만큼은 드라마가 영화에 비해 약자다. <인간중독> <황제를 위하여>처럼 여배우의 파격 노출이 화제가 된 영화는 IPTV를 통해 안방극장으로 재빨리 유입된다. <젊은 엄마> 시리즈, <전망 좋은 방> 같은 성인용 영화는 극장 수입보다 IPTV 등 2차 판권에서 거둬들이는 수입이 더 크다. 이 같은 콘텐츠의 안방극장 ‘진공’으로 드라마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시청자들의 눈은 높아졌는데, 이를 맞출 상황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방법이 일부러 안 보여주는 베드신이다. 꿀릴 바에야 안 보여주고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화 같은 수위의 베드신을 구현 못할 바에야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머릿속 수위’를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비즈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