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민의 문화의 발견]‘서점의 불황시대’서 각광받는 책방들

독서 인구의 감소와 온라인서점의 약진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서점들도 불황에 허덕이는 중이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려면 남들이 하는 거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때는 말이야, 출판사 영업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한 달에 한 번씩 지방 출장을 다니곤 했어.” 이런 에피소드를 듣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출판사 영업자가 자사의 책을 홍보 및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직거래가 있는 지방 서점들을 돌아보는 일을 말하는 거다. 교통비를 아끼려고 친한 영업자들끼리 함께 움직이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수금이다. 지금이야 지방 서점과의 직거래가 예전만큼 많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은행으로 송금해 주니까 딱히 수금만을 위해 지방 서점을 돌 일이 없지만 당시에는 지방 서점에서의 수금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영업자의 능력이 판가름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부산 영광도서에 가면 이미 영업자들이 쭉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거든. 한 명씩 결제를 받아서 나오는데 이때 싱글벙글한 얼굴로 서점을 나오는 영업자는 그달 결제를 잘 받은 거고 울상으로 나오는 영업자는 그달 결제를 못 받은 거지.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어떻게 했느냐 하면 말이지” 하는 식의 무용담 비슷한 일화들을 들었던 기억도 난다. 어떤 이들은 본인이 잘나가는 출판사의 영업자였을 때 지방을 돌며 받았던 ‘환대’를, 어떤 이들은 지방 서점을 같이 돌며 다졌던 ‘관계’를 얘기했다. 이 지방 서점 ‘순례’에 대해서라면 구력 있는 영업자들은 대부분 어지간한 코미디 프로보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단행본 한 권만큼의 분량쯤은 보유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다 보면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영업자로서의 통과제의라고 표현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홍대앞 출판물 전문서점 <유어마인드> | 서성일 기자

서점마다 차별성이 없는 디스플레이
하지만 나는 영업자로서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출판계에 발을 디딘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방 서점을 돌아다녀본 적이 없다. 자랑 삼아 하는 얘기는 아닌데 창업을 한 이후에도 어차피 교보나 영풍 같은 대형 소매점과 인터넷 서점들이 도매 역할을 하는 마당이니 굳이 지방에는 직거래처를 만들지 않았다. 관리할 인원도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다. 게다가 출판 강의를 할 때도 굳이 따지자면 거래처는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많은 서점 거래처를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돌이켜보면 출판사들의 이러한 패턴이 결국 지방 중소 서점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은 듯하여 말해 놓고도 씁쓸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여 그 실상을 내 두 눈으로 살펴보고자 전국의 주요 서점 몇 군데를 돌아본 적이 있다. 아울러 몇 군데 서점과는 직거래를 맺고, 들른 김에 지금까지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가 발행한 책들이 지방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도 확인해두고 싶었다. 그리하여 일주일가량에 걸쳐 지방서점들을 돌아보았던 감상을 적어보면―.

① 어디를 방문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각 도를 대표할 만한 서점이 겨우 한 군데이거나 아예 없었다. ② 그 ‘겨우 한 군데’인 서점들도 직접 방문해보니 과거에 있던 공간이 현저히 줄었거나 줄이고 있거나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③ 미안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들른 대부분의 서점들이 여전히 ‘적당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머릿속으로는 서점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매장의 디스플레이는 ‘지금 그런 거에 신경 쓰고 있을 여유가 어디 있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점마다 차별점이 전혀 없어서 그 서점이 그 서점인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특색 있는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④ 그리하여 “소매업종 중에서 서점만큼 외관에 신경 쓰지 않는 소매업종은 없을 것이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진열된 물품들을 본 적이 있는가? 전시된 상품이 고객의 눈을 끌려면 무궁무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매장이 작으면 작은 대로 어떻게 전시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부분의 서점인들은 책 한 권 둘 공간도 없는데 전시공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서점 천장 끝까지 꽉 찬 책, 매대 책더미 밑에 숨겨져 있는 책은 책의 내용과 좋고 나쁨을 떠나서, 시장에 나온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의심하게 한다”는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티 라이츠 서점 | 경향신문사

자신만의 색깔로 틈새시장 공략
한때 6000개에 육박했던 우리나라 서점은 현재 1700개 정도만 남은 상태다. 이것은 독서 인구의 감소와 온라인서점의 약진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에 기인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서점들도 비슷한 이유로 불황에 허덕이는 중이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도 눈에 띄게 활약하는 서점들이 있다. “희귀 판본과 화제의 신간을 함께 진열대에 갖추고, 심도 있는 아트 북섹션과 직접 개발한 기념품”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한 미국의 독립서점 스트랜드, 모든 도서를 죽 늘어놓고 판매하는 방식 대신 “시, 전기, 여행, 동화만을 특화하여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판매하는 서점”으로 알려진 영국의 돈트북스, “일반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분야를 취급하지 않는 대신 인문학, 아트, 디자인, 자동차, 요리” 분야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 등이 그렇다.(이상은 <페이퍼 B>에서 인용)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땡스북스와 유어마인드처럼 특색 있는 서점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 서점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독자로 하여금 그 서점에 가면 그 서점만의 독특한 향취가 있어서 좋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전략으로 독자들의 방문을 유도한다.

김홍민의 문화의 발견

일본의 어느 편집자가 얘기했다시피 독서도 습관이라 한 번 떠난 독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도서구매 역시 습관이기 때문에 한 번 발길이 뜸해진 독자는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려면 남들이 하는 거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서 미스터리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오토 펜즐러는 한때 계속되는 재정적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다. 어느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스터리 소설가들에게 “그들이 쓰는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의 전기나 프로파일을 써달라고 하면 어떨까”(<라인업>)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고는 그 이야기들을 팸플릿에 인쇄하여 ‘오직 자신의 서점에서만’ 정기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가 떠올린 작은 아이디어에 독자들은 호기심을 가졌고. 결과적으로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은 경영난을 멋지게 극복했다고 한다. 이런 근사한 미스터리 전문 서점을 차리는 것이 나의 오랜 꿈 가운데 하나다. 그러려면 출판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텐데, 서점 운영이 어떻다는 둥 하기 전에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북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