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시장의 가치에 종속된 한국 미술

근래 한국 미술계에서는 시대정신을 아우르는 작가와 작품을 보기 어렵다. 수준 높은 사유와 여백의 단초를 읽을 수 있음은 고사하고, 불타는 인간정신이 조형이라는 유기적 질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사례와도 조우하기 쉽지 않다. 대신 그 자리엔 온갖 서구미술의 외형을 비판 없이 모방하거나 상업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된 ‘상품’들이 들어서 있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의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점차 심화됐다. 아트페어가 무분별하게 범람하면서 시장의 역할에 무게가 실리자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실험적인 전시 형태는 부재를 드러냈고, 미술이 기획의 형태로 생산되며 소통 및 소비되는 일까지 비일비재해졌다. 이젠 아예 미술 자체가 기획화되거나 미술문화구조의 한낱 일부에 지나지 않는 좌판에서의 성과가 미적인 기준으로까지 작용하는 기묘한 상황마저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예술의 궁극적 가치인 미학적 담론 생성과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당위성이 희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계 구성원 그 누구도 저항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항거는커녕 작가는 작가대로 시장에서의 영화가 훗날 미술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황망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으며, 무능한 평론가들은 직무유기에 가까운 행태를 넘어 유구무언을 마치 철학이나 신념처럼 포장한 채 시대에 기생하고 있다. 심지어 “팔리지 않는 그림은 쓰레기보다 못한 공해나 다름없다”는 편협한 발언이 공공연하게 적시되어도 얼간이처럼 그저 두 눈만 껌뻑거릴 뿐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아트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사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의 자본은 차갑고 이기적이며 그것의 적손인 시장은 매우 냉정하다. 이윤의 정도에 따라 조변석개할 뿐만 아니라 인내력도 부족하다. 속성상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 어제의 온화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바로 자본의 맨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작가들이 추구해야 할 지점은 시대의 상황이나 고민을 담은 작품에의 주력이지 시장의 욕망에 부합하는 상품 생산이 아니다. 한낱 장터에서의 성과가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는 착각을 확신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며, 시장의 가치에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술이 시장성에 부응하거나 종속될수록 생명력은 단축되기 십상이고, 투자가치에 의해 예술작품이 재단되거나 계량되는 현상이 가중될수록 예술가의 재능마저 시장에서의 능력과 가능성으로 마름질될 확률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계 일원들은 지금부터라도 예술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작가들은 작가들대로 예술이 지닌 의미와 본질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아트페어와 같은 시장에서의 판매율과 컬렉터들, 화랑들의 점지와 간택을 최선으로 간주하는 그릇된 습성에서 벗어나야 함은 물론, 언제부터인가 방치해버린 인문학적·철학적 소양, 자존감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소환해야 한다.

문화내시경

돈 몇 푼에 정처 없이 부유하면서도 자각하지 못하는 현실, 동시대 미의식이 상업주의와 같은 선상에 놓인다는 가치관의 팽배만큼 불완전하고 위험한 미래는 없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