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유유히 흐르는 한반도의 강, 압록강에서

압록강은 우리 민족 근원의 강이자, 시간의 강이며, 역사의 강이었다.
하지만 압록강은 역사의 부침을 겪으면서 시련의 강, 통한의 강이 되고 만다.

압록강(鴨綠江). 그 강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저 너머를 떠올릴 수 없었고, 그 경계의 강가에 다다랐을 때에는 저 너머가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 저 강 너머는 세상에서 가장 빈곤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위정자들의 허울뿐인 신념 따위가 삶의 기갈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강의 경계 너머로 마주하는 북녘의 산하는 권태롭고 무기력하다.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전’에 “물빛이 오리 머리의 색과 같아 압록수라 불린다”는 압록강의 유래가 나온다. 강은 길이만 해도 803㎞, 유역면적은 6만3160㎢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발 아래로 오래 전 한반도 역사의 한 줄기였던 압록강이 유유히 흐른다.

압록강은 우리 민족 근원의 강이자, 시간의 강이며, 역사의 강이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최고봉인 병사봉 부근에서 발원한 이 강은 압록강 중류인 북한과 중국 둥베이 지방(東北地方·滿洲)을 관통하며 자유파행하여 서해로 나아가는 장장 2000리의 거대한 물줄기다.

우리 민족 시원의 강, 압록강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적시던 생명의 강
압록강은 우리 민족의 옛 영토인 고구려와 발해의 드넓은 대지를 적시던 생명의 강이었다.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집안시(Ji‘an·集安)로 길을 잡는다. 집안은 중국 지린성(吉林省)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20만 정도의 소도시로 한족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조선족, 만족, 후이족 등의 소수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다. 집안의 본래 명칭은 지안(輯安)이다. 퉁거우라고도 불리는데, 1965년부터 지안현이라 불린다. 북쪽으로 장백산맥의 지맥인 노령산맥의 준봉들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고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온대계절풍을 실어다 주어서 ‘새외의 소강남’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압록강’이란 표지석 앞에서 그려지지 않는 고구려 옛 신화의 땅과 강 건너 북한의 산하를 마주한다. 이 땅은 본래 우리 민족의 옛 땅, 고구려의 땅이다. BC 37년 건국된 고구려는 AD 668년까지 705년 동안 수도를 네 곳으로 정하고 세 번 천도를 한다. 고주몽이 맨 처음 수도를 정한 곳은 홀본지역, 즉 환인(현 중국 요녕성 환인현 오녀산성)이었고, 2대 유리왕 21년에 이르러서 고구려는 이곳 집안으로 천도하며 두 번째 수도로 정한다. 이는 이 지역이 북방임에도 불구하고 온난한 기후조건과 앞으로 흐르는 압록강의 중심에 위치해 온갖 산물과 문화가 집결하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북편의 산지 지형을 이용한 방어적 입지가 도읍을 구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에 고구려는 2대 유리왕부터 20대 장수왕(427년)까지 400여년간 이곳을 중심으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이룬다. 때문에 아직도 집안에는 국내성과 환도산성 등 수도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옛 고구려의 성터가 남아 있고, 장군총, 광개토왕릉, 광개토왕비를 비롯해 모두 약 1만2000기에 이르는 고구려 양식의 거대한 무덤군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은 지난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압록강을 관광사업지구로 개발하고 있는 중국.

시간의 단절과 소통의 경계로 멈추어
하지만 압록강은 역사의 부침을 겪으면서 시련의 강, 통한의 강이 되고 만다. 특히 일제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남북이 분단되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결국 아무도 건너지 못하는 경계의 강이 되고 만다. 그나마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간도로 가기 위해 조선의 배고픈 백성들이 이 강을 넘었고, 일제 치하에는 애국지사들이 민족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차가운 강물을 넘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의 압록강은 멈춰버린 시간처럼 공백의 강으로 존재한다. 자유로 흐르며 귀속되어지지 않는 강의 속성을 거스르고, 경계를 지움은 유유히 흐르는 강과 시간의 역사를 거스르는 부자유이며 모순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강은 삶과 역사와 유리된 채 자유로 흐르지 못하며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는 고착된 강이 되어버렸다.

그 경계의 강 너머 보이는 북녘의 산하는 비어진 시간의 공백만큼, 그대로 멈추어 있는 풍경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의 풍경은 명확하게 대비되어진다.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함이다. 그런데 중국은 이제 자유경제의 도입 이후, 도시뿐 아니라 시골 역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압록강변 역시 이미 인근 백두산과 더불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유원지가 되었다. 특히 압록강 지구를 1급 관광지구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신압록강 대교를 만들고 단동 등에는 신시가지를 조성하고 있다.

집안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편에는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90% 이상이 고구려 유적과 북한 땅을 바라보기 위해 찾는 한국인이다. 남쪽 한국 관광객들과 중국인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식당과 노점상에서는 “맛있어요! 싸요! 한국 돈 받아요!”라는 말로 호객을 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중국 측 강변에 따라 이어진 철조망의 경계.

강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압록강에는 항상 강 위로 드러나 있는 ‘진짜 섬’이 40여개 있고, 강물의 유량에 따라 사라지고 나타나는 하중도(河中島)가 205개 있다. 1962년 김일성-주은래는 조·중 변계조약에 따라 압록강 수역을 공유지화하여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하면서, 대부분의 섬들이 북조선의 땅으로 공인되었다. 하지만 양안을 접하고 있는 두 나라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북으로는 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남으로는 또 다른 경계로 고립되어진 북녘땅. 바라보이는 북녘의 산풍경은 헐벗고 힘이 빠진 풍경으로 다 망가졌다. 압록강변의 산들은 마치 군데군데를 기워놓은 누더기 옷처럼 볼썽이 사나우면서 헛헛하다. 강줄기를 따라 넓게 펼쳐진 북쪽의 산들은 한여름의 청정하고 깊은 산 숲이 아니다. 산은 머리를 깎아올린 북녘 사내아이들의 머리통처럼 바틋하게 쳐올려진 민둥머리 그대로다. 경사가 급하게 치받아 오른 높은 산세와 뜨거운 여름 땡볕에도 불구하고 산 밑에서 꼭두정상까지 온통 헛뙈기밭이 조성되어 있다. 산밭은 거의 마른 벌거숭이처럼 선명하게 뼈대를 드러내고 있는 풍경이다. 헛밭은 근근이 초근목피를 이어가던 옛 우리 60~70년대의 삶 풍경과 다르지 않게 허기진 그대로다. 70년대까지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안정되어 있던 북한의 경제와 민중의 삶은 이제 더욱 궁핍하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그 강으로 모터보트가 날 듯이 질주하고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빈 산에 부딪혀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이명처럼 멀어져 간다.

산중턱까지 조성되어 있는 북한의 뙈기밭.

길에서 만난 사람

해질 무렵, 압록강변 북쪽의 중국땅은 반짝이는 유원지의 불빛으로 더욱 화려해진다. 강변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에서는 맥주파티가 벌어지고, 4륜 자전거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북한땅은 해가 지면서 더욱 어둠이 짙어간다. 저 너머 점점 어두워지는 그 경계의 땅. 누구도 오갈 수 없는 땅. 아무도 넘어설 수 없는 그 경계의 땅에 삶은 희미한 불빛으로 흔들릴 뿐이다. 가파른 삶의 헛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북녘 사람들이 산에 올라 바라보는 강으로 시간은 멈추어 서버린 듯하다. 흐르는 강변에 철조망이 강을 따라 이어진다. 경계의 강에서 한반도의 미래는 더 멀어져 하나 된 한반도는 그려지지 않는다.

<글·사진 이강 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