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삼성 지주회사 설립? 고민되네!

공정거래법 개정안 시행,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 금지로 지배구조 변화 불가피

최근 증권가에서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갖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을 통한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언급해 주목을 끌었던 키움증권이 7월 9일 또 하나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향후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를 예상한 일종의 총정리 보고서 격이다.

시동 건 삼성, 여러 가지 시나리오
이 보고서의 첫머리에는 한국의 다수 대기업이 창업자 2세나 3세로 경영권을 승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고, 최근 최대주주의 후손이 경영권을 확보하고 이를 행사하는 방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때문에 주요 대기업이 현재의 법체계 아래에서 경영권을 승계하고 보다 체계적인 지배체제를 갖춰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당장 7월 25일부터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된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지난 1월 공포됐고 6개월 후인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해온 업계 관행이 더 이상 허용될 수 없게 됐다.

기존 순환출자는 그대로 인정된다. 하지만 정부가 15일 확정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 순환출자 현황을 기업집단 현황 등에 관한 공시사항에 추가해서 표시해야 한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앞으로 대기업 지배구조의 일대 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순환출자 고리를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 집단은 삼성·현대차·현대중공업·한진·현대·대림·부영 등이다.

지난해 8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 회장단 오찬에서 대기업 회장단이 자리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이재성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신동빈 롯데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홍기준 한화 부회장,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 청와대 사진기자단

순환출자의 대표적 기업은 삼성이다. 오너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향후 지배구조 개편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삼성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주요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 키움증권 보고서를 작성한 박중선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이 다른 대기업 그룹에 비해 지배구조가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우선 최대주주 일가 지분율이 낮다는 것이다. 또한 삼성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와 같은 금융계열사를 통해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데, 시가 기준으로 총자산의 3%를 초과하여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율이 5%를 넘는 등 향후 금산분리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은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계획을 발표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을 가장 개연성이 높은 시나리오라고 점쳤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지주회사 전환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주회사 전환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박중선 애널리스트는 삼성이 지주회사 전환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같은 금융계열사가 다수의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데, 이런 지분의 거래 시 보험계약자와의 수익 배분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아직 3세 경영인에게 지분 증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주회사 전환으로 인한 주가 상승 부담이 있고,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가 상장된 후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삼성으로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3세로의 경영권 승계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순환출자를 단순화할 것, 최후의 카드로 지주회사 전환을 꾀할 것이라는 등 무수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순환출자를 단순화하는 방식은 삼성전자 중심의 전자계열, 삼성생명 중심의 금융계열, 삼성물산 중심의 건설계열, 삼성에버랜드 중심의 소비재계열 등으로 계열사를 묶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장기적인 시나리오로는 삼성전자의 인적 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가 점쳐지고 있다.

현대차, 현대모비스 경영권이 관건
현대자동차의 순환출자 문제는 다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키움증권 보고서는 보고 있다. 하지만 변수로 존재하는 것은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와 3세 경영권 승계다. 현대자동차는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3세 정의선 부회장이 순환출자의 출발점이 되는 현대모비스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의 경영권을 어떻게 승계받는지가 지배구조 개편의 관건인 셈이다. 키움증권의 박중선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기아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투자부문 지분 가치를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가치와 맞교환하는” 방법을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예상했다. 이를 위해서 현대차그룹은 현대글로비스의 시가총액을 확대해 교환가치를 높이고, 현대모비스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분할하는 사전 정지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또 하나의 방법으로는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투자부문을 합병하는 방식을 예상했다.

한진그룹은 한진칼→정석기업→한진→한진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한진은 지난해 초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밝혔다. 지난 8월에는 대한항공을 한진칼홀딩스와 대한항공으로 인적 분할했다. 지주회사 체제로 가면서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키움증권에서는 대한항공 보유지분을 한진칼에 현물출자해 한진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한진칼과 정석기업을 합병하는 방안, 또는 한진을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분할한 후 한진칼+정식기업에 피합병하는 방안 등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됐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있다. 지금 당장 지배구조의 변화가 필요하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면 현대중공업을 인적 분할해 현대중공업 홀딩스 부문과 현대중공업사업회사로 나눌 것으로 예상됐다. 자사주 지분이 충분하기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은 쉬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키움증권 박중선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현대중공업의 지주회사 전환은 당장 필요하지도 않고 추진하면 복잡해지는 일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현대상선을 놓고 현대중공업그룹과 현대그룹 간의 경영권 분쟁이 종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하면 현대상선 지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분율을 현재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 이 보고서는 현대중공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