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동산 살리자고 조세원칙 버리나

LTV·DTI 완화하면서 전월세 임대소득 과세 포기… 추가세원은 어디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신의 한수’를 부동산에서 찾았다. 예상했던 대로지만 속도나 방법은 기대 이상으로 ‘화끈’하다. 박근혜 정부가 앞서 추구해온 공평과세와 가계부채 관리라는 원칙은 무너졌다. 일각에서는 7·30 재·보궐선거를 앞둔 ‘욕망의 정치’ 마케팅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7월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 부총리는 이날 취임식에서 “그간 수많은 대책들이 발표되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성과는 부족하다”며 “정책의 실행력과 속도를 높여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오석 전 총리는 전날 최 부총리가 ‘체감경기’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깔았다. 그는 마지막 근무를 마친 뒤 기자단과 만나 “경제회복 불씨를 살렸지만 체감을 못하게 한 것이 정책하는 입장에서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며 “제 뒤에 오시는 분이 여러 가지로 훌륭하시니 저보다 훨씬 잘하시리라 믿고 바통을 넘겨드리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전직 부총리가 ‘정책 실패’라며 인정하자 최 부총리의 행보는 가볍게 됐다. 전·현직 부총리가 주고받은 ‘체감경기 살리기’의 첫 작품이 부동산이다. 최 부총리 취임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얘기가 1보로 전해졌다. LTV는 70%(현행 수도권 50%, 비수도권 60%)로, DTI는 60%(현행 서울 50%, 인천·경기 60%)로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 부총리의 의지가 하도 강해 완화의 폭은 더 커질 수도 있다.

당정은 이어 2주택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세 임대소득을 올릴 경우 세금을 물리겠다고 했던 방침도 거둬들였다. 전세소득에 대한 과세는 지금처럼 3주택 이상자만 낸다. 연간 2000만원 월세소득자에게 과세하기로 한 방안도 세금 유예기간을 1년 더 연장해 2017년 분부터 거두기로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연합뉴스

부동산살리기 최대 수혜자는 강남 3구
부동산에 대한 집착은 최 부총리 취임 뒤 첫 대외 행보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경기도 성남시 성남대로에 있는 근로자쉼터와 산성대로의 한 인력소개사무소를 찾았다. 이곳은 위례신도시, 판교신도시 등 수도권 건설현장에서 일하려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최 부총리는 “부동산시장이 활성화돼야 건설현장 일자리가 늘고, 일자리가 늘면 여러분의 임금도 오를 수 있다. 새 경제팀이 이 점에 유념해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살리기는 곧 저소득층 살리기라는 얘기다.

하지만 최 부총리의 기대와 달리 최경환식 부동산 살리기의 과실은 강남 3구 등 고소득층이 주로 따먹을 가능성이 크다. LTV 규제를 완화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강남 3구다. 강남 3구는 투기지역으로 지정돼 LTV가 40%로 묶여 있는데 70%로 일괄 적용할 경우 30%포인트가 늘어난다. 강남, 서초, 송파에서 집값이 6억원을 초과해 LTV가 50%로 제한되는 가구는 10가구 중 6~8가구나 된다. 서초구가 86.9%(5만8000가구)로 비중이 가장 높다. 주택 수로는 강남구가 8만1000가구(82.3%)로 가장 많다. 송파구는 62.2%지만 주택 수는 6만2000가구로 서초구보다 많다.

또 빌릴 수 있는 돈도 고가 주택이 유리하다. DTI 영향을 제외하고 보면 6억원짜리 아파트 구입에 빌릴 수 있는 돈이 2억4000만원(6억원×0.4)에서 4억2000만원(6억원×0.7)으로 1억8000만원 늘어난다. 만약 3억원짜리 아파트라면 대출가능한 돈은 1억8000만원(3억원×0.6)에서 2억1000만원(3억원×0.7)으로 3000만원 늘어나는 데 그친다. 부동산 침체로 그동안 매매가 쉽지 않았던 고가 주택 소유자라면 반길 만한 제도 변화다.

최 부총리의 부동산 살리기는 과거 강남붐에 고정된 시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강남 부동산거래 폭증→서울 타지역 확대→경기 버블세븐지역 확대→수도권 확대→전국 확대’를 따라 부동산경기가 살아나면 ‘강남 재건축 등 재개→수도권 타지역 건축 인허가 증가→비수도권 건축경기 회복’으로 선순환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얘기다. 성장론자들의 전형적인 ‘낙수효과’ 기대다.

하지만 이런 모델은 2014년 한국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부동산시장이 지역별로 움직이는 경향이 심해져 강남과 비강남 간 가격 격차만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건설이 많이 기계화된 데다가 인력의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돼 국내 저소득자의 가처분소득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22조원을 4대강 사업에 풀면서 일자리 34만개를 창출하고 건설산업을 살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은 여기에 턱없이 못 미쳤고 수익을 몇 개 대형 건설사들이 독점하면서 국내 중소형 건설사들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최경환 경제팀의 부동산 집착은 박근혜 정부의 조세원칙을 흔들고 있다. 특히 2주택자를 임대소득과세에서 빼고 세금부과도 1년 미룬 것은 휴유증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세금부과를 1년 미루면 실제 세금을 내는 것은 2017년분으로 2018년 납부하게 된다. 그런데 2017년 대선이 있다. 대선을 앞두고 과연 계획대로 과세가 되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전세든 월세든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임대소득 과세 사실상 물 건너가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거부하면서 ‘세원 확대’와 ‘공평과세’를 외쳐 왔다. 그 작품이 지하경제 양성화다. 세금을 내야 하지만 그동안 내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세금을 새로 걷겠다는 것이었다. 부동산 임대소득은 ‘세금’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대표적인 지하경제였다. 현오석 경제팀이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를 밝히면서 분리과세를 도입한 것은 세원을 확대하겠다는 의미가 컸다. “근로소득자가 봉이냐”는 반발이 많았지만 “일단 세원 포착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부동산 살리기를 위해 이 원칙은 포기됐다. 이제 관심은 다음달 발표될 세제개편안이다. 불로소득에 가까운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를 포기한 만큼 어디선가 추가 세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 될 것인지가 주목된다. 만약 카드 공제 축소 등을 통해 소득세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라면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그간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심해지고 체감경기가 나빠진 것은 대기업이나 고소득자에게 흘러간 돈들이 서민들에게로 다시 흘러나오지 않아서 빚어진 일 아니냐”며 “최경환 경제팀의 낙수효과 집착은 부작용을 키운 그 모델을 또 답습하려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