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자루 쥔 김무성, 눈치 보는 박근혜

여권 권력 집권 1년 4개월 만에 ‘힘 있는 당 대표와 힘 빠진 대통령’ 구도로…

성격 강한 김·박 ‘오월동주’ 짧은 허니문 지나면 갈등관계로 바뀔 가능성 높아

“이제부터 김무성 대표가 칼자루를 쥐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무성 대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의 말이다. ‘힘 있는 당 대표와 힘 빠진 대통령’이라는 여권의 권력구도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7월 14일 비박(박근혜)계의 김무성 의원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당 대표가 되면서 당과 청(청와대) 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집중됐던 권력이 분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7월 15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갖기에 앞서 김무성 신임 대표(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 뒤쪽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 연합뉴스

총선 공천권 위력, 벌써 ‘친무성계’ 나돌아
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지 불과 1년 4개월여 만에 주류가 이렇게 맥없이 무너진 것은 보수여당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때도 없었고, 그 전의 신한국당 때도 없었다.

전문가들과 새누리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권 권력의 두 축인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당분간은 협조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허니문 기간을 갖는 것이다. 김 대표도 전당대회 기간 내내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 국정운영을 돕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허니문 기간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밀월기간이 지나면 결국 정국은 김무성 대표 페이스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행정부의 수장인 박 대통령은 여당의 도움 없이는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국회가 입법권과 예산심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의 도움 없이는 박근혜 정부의 주요 사업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박 대통령은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을 골자로 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고, 기초연금 지급에 따른 복지예산도 증액해야 한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도 국회에 달려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여당의 협조가 절실하다.

아무래도 아쉬운 쪽은 김 대표보다 박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격이 워낙 강해 국정운영 방향을 놓고 긴장과 갈등 관계로 바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두 사람 간의 관계가 틀어질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를 상대하지 않고, 친박계인 이완구 원내대표 채널을 통해 당의 협조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14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최고위원 당선자(오른쪽)와 서청원 최고위원 당선자가 수락연설을 마친 후 어색한 모습으로 연단에 함께 서 있다. | 정지윤 기자

7월 14일 전당대회 때도 박 대통령은 이완구 원내대표와 나란히 앉아 자주 얘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자는 스타일”이라며 “하지만 박 대통령도 굉장히 강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잘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친박계 의원들이 김무성 대표 쪽으로 가려는 원심력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는 2016년 4월 총선 이후인 7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재 권력이라면 김 대표는 미래 권력이다. 현역의원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당으로부터 공천장을 받는 것이다. 김 대표로의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벌써부터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친김무성계가 생기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국회의원들은 당선한 후 1년만 지나면 차기 공천을 받을 걱정부터 한다”며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도 친박계 중 일부 의원은 김무성 대표를 위해 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친박계 “임기 채우기 어려울 것” 별러
친박계는 당 대표 선거에서 완패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두 눈이 퉁퉁 붓고, 목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주류로서의 권력의지까지 잃어버린 건 아닌 듯하다. 권토중래를 노리는 친박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김 대표가 임기 2년을 채우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잊어버릴 만하면 툭툭 터져나오는 여당의 부패 스캔들이 발생할 수도 있고, 김무성 대표의 스타일상 돌발적인 행동을 하거나 말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누리당과 한나라당의 당 대표 중 황우여·강재섭 대표 이외에 임기를 다 채운 당 대표는 지금까지 없었다. 김 대표의 독주를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친박계의 견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청원 당 대표 후보 캠프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김무성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공격하면 서 최고위원도 김 대표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며 “당 지도체제가 집단지도체제인 만큼 김 대표도 혼자서 당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 임기 2년을 채울 경우 대권후보까지 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최근 각종 인터뷰에서 대권 도전 여부에 관해 즉답을 피했다. 이는 상황에 따라서는 대권 도전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그가 “보수혁신의 아이콘”이 되겠다고 강조한 것도 대권 도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단순히 당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수대통합을 통해 대권에 나서겠다는 의지 표명이라는 것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김무성 대표가 말한 보수혁신이란 기존의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외부의 보수를 모두 통합하는 보수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의미”라며 “김 대표의 목표는 범보수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해석에 대해 김 대표 측은 “억측”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김무성 대표 측 관계자는 “김 대표가 당 개혁에 앞장서겠다는 것 이외에는 모른다”며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치권에서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오월동주’(吳越同舟)가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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